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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혁신의 가격은 실패

조영필역

by 조영필 Zho YP

작동하는 기이한 생각들


며칠 전 나는 회사에서 실행하기로 계획한 혁신 프로그램에 대해 나의 충고를 요청한 대기업의 중역을 만났다.


나의 첫 번째 질문은 “왜 당신은 혁신을 하려고 합니까?”이었다.


그는 잠시 조용히 있더니, 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시인하였다.


혁신은 요즈음의 화두이다. 만약 90 년대가 “품질”의 시대이라면 (TQM을 기억하나요?), 신세기의 첫 10 년은 아마 “혁신”의 시대라고 할 것이다.


나는 혁신이 (또는 품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 둘 다 중요하다. 나는 그렇지만, 회사들은 그들이 더 혁신적이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다음 사항을 고려해야 함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1.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목적과 성공을 위한 약간의 정의된 기준이 필요하다. (반드시 “손익”기준이 아니라 – 그것은 종업원들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홍보가 더 잘 되게 하거나 또는 측정될 수 있는 어떤 것일 수 있다.)


2. 혁신은 (그리고 드물게 품질은) 회사마다 다르다. “혁신 프로그램”을 위한 단일한 공식은 없다.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하고 무시되는 점은 :


3. 가장 혁신적이 되기 위한 가격이 있다 : 더 많은 실패가 있게 될 것이다.


이 마지막 점에 관하여 나는 당신에게 내가 막 읽었던 훌륭한 책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책 제목은 로버트 서튼(Robert I. Sutton) 저, “작동하는 기이한 생각들”이다.


그 책은 “혁신을 촉진하고, 관리하고, 유지하는 실천 11 개를 (실제로는 11 ½) 나열한다.


이 책의 주제는 혁신하기 위해서라면, 그 회사는 실패를 단지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것을 요구하고, 촉진하고 보상하기조차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이한 생각 6번은 :


“성공과 실패를 보상하고, 복지부동을 벌하라”이다.


이 책의 각 장은 기이한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이 작동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여기 그 책으로부터의 몇 가지 다른 기이한 생각들이 있다.


기이한 생각 1.5번 (예, 이것은 정형은 아니다) :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고용하라.”


기이한 생각 2번 : “당신이 아마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용하라.”


기이한 생각 3번 : “아마 실패할 무언가를 하기를 결정하라, 그런 다음 당신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성공이 확실하다고 확신시켜라.”


기이한 생각 11번: “과거를 잊어라, 특히 당신 회사가 성공한 것들을.”


내가 미리 말한 것처럼 이 책의 각 장은 기이한 생각 하나에 전념하고 그 주장을 지지하는 많은 사례와 사례 연구를 (몇몇은 정말 재미있다) 생산한다.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었고 대부분의 “기이한” 생각들에 동의했다. 나는 생각한다, 기업문화에 혁신을 주입하는 방식에 관심 있는 누구에게도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읽을거리이라고.


이 책에 대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태어나는지에 대한 처리방식이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혁신에 관한 많은 다른 책들과 차이가 없다.)


내 설명을 들어보세요. 저자는 어떤 사람을 고용할지, 그들에게 어떻게 보상할지, 실패를 수용하는 것을 어떻게 배울지 등등에 대해서는 쓰고 있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발생에 관한 한, 동일한 낡은 “브레인 스토밍”이 나타난다.


물론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창조적 아이디어를 발생시키는 체계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아시트가 있다.


Note

기이한 생각 2번이 역사적으로 실천된 것으로는 제나라의 직하학파가 떠오른다.

다음은 김용옥, [맹자, 사람의 길(상)] 140쪽부터 참조

임치성에는 13개의 성문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직문이었다. 이 직문 부근에 큰 저택을 즐비하게 지어 천하의 학자들을 초빙한 것이 곧 직하학파인 것이다. 이들에게 정부의 관직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 사상에 관해 제각기 연구하고 토론하게만 했다. 이들은 상대부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오늘날로 치면 차관급 정도)... 제위왕 때 시작하여 제선왕 때에는 천여 명에 이르렀고, 제민왕 때는 만여 명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그 융성한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한 학자 밑으로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수천,수만이라는 숫자가 허수는 아니다). 전국시대의 모든 학술활동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였으며 이후 중국문명의 모든 학술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 최초의 총장이 순우곤이었고 그 마지막 총장이 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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