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망이와 망소이는 '망이 망소이의 난'으로 알려진 고려시대 천민의 이름이다.
망이·망소이의 난(亡伊·亡所伊의 亂)은 1176년(명종 6) 정월 공주(公州) 명학소(鳴鶴所)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나 1년 반 동안 진행된 난이다. 현재 명학소로 추정되는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炭坊洞)의 옛 지명이 ‘숯병이’라고 한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제련해 내기 위한 연료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이 숯인데, 공주의 토산물이 수철(水鐵)과 동철(銅鐵)이어서 명학소는 철소(鐵所)로서의 이상적인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명학소 봉기의 중심인물이었던 망이, 망소이 역시 장인인 철 제련 기술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에 대해 [임나의 인명] 저자 최규성의 네이버블로그 쾌도난마의 '한국인의 이름 - 돌쇠, 마당쇠, 먹쇠, 밤쇠'에서는 '망이'는 [맏이]이고, '망소이'는 [맏소이]의 훌륭한 뜻을 가진 이름이라고 한다. 망소이(맏소이)는 [망쇠]로 줄어들어 망금亡金이나, 만금萬金, 막금莫金, 말금末金, 장금長金(今)으로 표기되었는데 모두 [맏쇠]라는 이름의 이표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들을 뜻이 좋지 않은 한자(亡, 莫, 末 등)로 음차하여 사람들이 안 좋은 이름으로 인식하게 된 까닭에 점차 기피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맏'은 으뜸을 뜻하는 어근으로 오늘날에도 '맏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쇠'는 마당쇠, 돌쇠, 먹쇠, 밤쇠 등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쓰는 인칭접미사로 여겨지지만, 옛날에는 을파소乙巴素, 근구수近仇首, 강수强首와 같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 [소/수]에서 사람을 부를 때 쓰는 [-이]가 붙은 것이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의 원문 마지막에 '촌주(村主) 망총지(奀聰智) 술간(述干) 마질지(麻叱智) 술간'이라는 글이 보인다. 여기서 망총지와 마질지는 어떤 뜻을 가진 이름일까?
먼저 쉬운 '마질지'라는 이름에서 '智'는 신라시대 지배층에게 쓰인 존칭 접미사이다. 그러면 마질(麻叱)이 남는데, 여기서 나는 신라어에서 사이시옷을 표시하는 질(叱)이 마(麻)의 뒤에 붙어 어근 '맏'의 종성(ㄷ 또는 구개음화된 ㅈ)을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최규성은 '동성왕 모대와 곤지는 동일인(?)'에서 백제 24대 동성왕은 이름이 모대牟大였는데, 모도牟都, 말다末多, 마제麻帝라고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맏]은 단순히 장남이란 뜻만이 아니고, '으뜸, 최초, 최상, 우두머리' 등의 뜻을 지닌 말로서, 고구려의 '막리지'와 신라의 '마립간'도 동원(同源)의 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마질지' 술간에서 '마질'은 '으뜸가는 이'라는 뜻이며, 이는 고려시대의 '망이'와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망총지라는 이름이 어렵다. 망총지에서 '망(奀)'은 파자를 하면 '크지 않다‘로 뜻은 '파리하다'이다. 이 한자는 잘 쓰이지 않는 글자로 청나라 유수(鈕琇)가 지은 『고잉(觚賸)』에서 "人物之瘦者爲奀. 音茫 (인물이 여윈 것이 奀이다. 음은 茫(망)이다)"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나무위키)
만약 '망(奀)'의 뜻이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아니라, '균형'이나 '조화'를 의미한다면, '총(聰)'의 뜻인 '슬기롭다'와 결합하여 상황에 대한 적절한 판단력과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사람을 뜻하는 이름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망총(奀聰)'과 비슷한 음을 가진 우리말 '맞춤'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추측으로 이름의 의미를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런데, 창녕 지역은 낙동강의 우변에 위치하여 창녕비에 기재된 창녕에서의 군사 회합은 신라에 병합되고 얼마되지 않은 시기인데, 그 전에는 '비화가야' 또는 '비사벌가야'라고 하는 가야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가야는 왜와의 교류가 활발했으므로 가야계이었을 촌주의 이름을 추측하기 위해서는 벽자인 망(奀) 이상으로 또한 그 뜻을 파악하기 힘든 총(聰)의 일본어 음과 훈을 조사하여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총(聰)은 일본어에서 "소우(ソウ)" 또는 "슈(シュウ)" 계열의 음으로 수용되었다. 그 예로 현대 일본어에서 '聰明(총명)'을 '소우메이(そうめい)'로 읽고 있으며, 고대 일본 스님 혜총(恵聰)의 이름은 '에소우(えそう)' 또는 '에쇼우(えしょう)' 등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총(聰)의 훈독은 '사토시(さとし)'이다. 쇼토쿠 태자의 이름 중 하나인 '도요토미미 황자(豊聰耳皇子)'에서 '聰'은 '토미(とみ)' 또는 '토모(とも)'로 읽혔는데, 이것도 훈독이라고 한다.(Gemini)
이상의 검토에서 총(聰)의 훈독에서는 별 단서가 보이지 않지만, 음독이 '소우'와 '슈'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총(聰)이 고대인명에서 소/수를 뜻하는 素, 所, 召, 蘇, 漱, 須, 壽, 首 외의 또다른 후보 음차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망奀과 총聰이 결합하여 뜻으로도 훌륭한 이름이 되지만, '망'과 '총'이 음차로 결합하여서도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뜻을 이루는 것이다. '망총奀聰'은 바로 '망소' 또는 '망수'를 음차한 한자일 수 있다. 따라서 망총지 술간에서 '망총'은 '맏쇠'로 '으뜸가는 훌륭한 이'이며, 이는 고려시대의 '망소이'와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글을 정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점검 차 [한국고대사료DB]를 찾아보니, '망총지(奀聰智)'의 판독이 '혁총지(奕聡智)'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어떤 판독이 정확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국가유산 지식이음]에서 해당 비문에 대한 다양한 판독자의 판독 내용을 확인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금석총람은 모총지(牟聰智)로 (조선금석총람 상, 1919), 금서룡(今西龍)은 망총지(木大聰智)로 (신라진흥왕순수관경비고, 1921), 유승간(劉承幹)은 평총지(平言忩智)로 (해동금석원보유, 1922), 최남선(崔南善)은 혁총지(奕聡智)로 (신라진흥왕의 재래삼비와 신출현의 마운령비, 1930), 갈성말치(葛城末治)는 모총지(牟聰智)로 (조선금석고, 1935), 김창호(金昌鎬)는 망총지(木大聰智)로 (신라중고 금석문의 인명표기 (I), 1983), 허흥식(許興植)은 모총지(牟聰智)로 (한국금석전문 고대편, 1984), 한국고대사연구회는 망총지(奀聰智)로 (한국고대사연구회 회보 20, 1991), 노중국(盧重國)은 망총지(奀聰智)로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II, 1992) 판독하고 있다.
일제 시대의 판독은 모총지-망총지-평총지-혁총지-모총지 등이었으며, 1980~90년대 판독은 망총지-모총지-망총지-망총지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망총지(奀聰智)가 대세인 셈이다. 그러므로 [한국고대사료DB]가 왜 최남선 단독의 주장인 혁총지(奕聡智)로 원문을 제시하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다른 판독 의견은 주를 달아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 주에는 상기의 판독자 외에 [牟](李宇泰, 29쪽)와 奀(橋本 繁, d26쪽)이 추가되었다. 만약 판독이 [한국고대사료DB]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망총지(奀聰智)가 아니고 혁총지(奕聡智)이라면, 다음의 이름 풀이를 해볼 수는 있다.
혁총지(奕聡智)에서 혁(奕)은 '크다'라는 뜻을 가진다. 이 한자를 인명에 썼을 때, 훈차(최규성의 진의훈차)를 했을 수도 있고, 훈음차(최규성의 사음훈차)를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클'이라는 음이나 뜻은 인명에 쓰기에 너무 좋은 말이므로 혁총(奕聡)은 '크고 훌륭한 이'를 뜻하는 '클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때 혁(奕)이 가리키는 음은 비슷한 뜻의 신라 이름인 거칠부의 '거칠'과 같으므로 '거칠소'로 불리웠을 수도 있겠다.(네이버블로그, 쾌도난마, '한국인의 이름 - 이사부, 거칠부, 수을부, 노리부', 2012.8.29. 참조) 그러나 이 글에서는 최종 판독 결과를 망총지(奀聰智)인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따라서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 나오는 창녕지역의 촌주(村主)이며, 외위(外位) 11관등 중 제2관등이며, 경위 8등급인 사찬(沙飡)에 해당하는 두 술간(述干) 망총지(奀聰智)와 마질지(麻叱智)는 으뜸가는 훌륭한 이를 뜻하는 '맏쇠'와 으뜸가는 이를 뜻하는 '맏이'를 뜻하는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두 이름은 이후 고려 시대에 망소이와 망이로서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 우리에게 익숙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인의 이름 짓기 방식을 우리는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서 미리 보게 되는 것이다.
(2025.6.15.) 이후 망총지와 혁총지 관련 검토 내용 보완 (2025.6.17.)
Note:
餘善縣本南內郡今感陰縣(삼국사기 지리지1)
여기서 '여선'을 '남내'에 대응시키고 있는데, 터키어에서 '餘'을 kal-이라 하고, "牟大一云麻帝又餘大"(삼국사기 권1)에서, 牟는 大를 뜻하니 그 새김은 kㅓr-이며, 麻의 새김은 kㅓl*이니, '餘'의 신라어는 kㅓr(kal- '餘', Turk)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겨릅 '麻骨'(kor) : "三岐縣一云麻杖"(삼국사기 지리지1); 三 = kㅓr ~ kur.
(강길운,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분석> 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