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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May 30. 2016

겜빼이에 대하여

조영필

우리를 알고자 하면, 어쩔 수 없이 일본을 알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주제를 접하게 된다. [가야가 세우고 백제가 지배한 일본]이라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도쿠가와는 겐지이고, 도요토미는 헤이케를 표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헤이케는 백제계이고 겐지는 신라계라고 밑도 끝도 없이 주장한다. 백제계인 도요토미는 따라서 백제의 고토를 찾으려고 한반도를 침략한 것이며, 신라계인 도쿠가와는 그 반대의 이유로 한반도와 화평하는 정책을 구사하였다는 것이다.


겐(源)씨와 헤이(平)씨를 합쳐서 겐페이(源平)라고 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당구에서 여럿이 편먹고 게임할 때 쓰는 겜빼이라는 용어가 나왔다고 한다.) 이 두 가문은 겐씨가 흰 깃발을 헤이씨가 빨간 깃발을 들고 12세기 일본의 패권을 걸고 열도 전역에서 서로 피 터지게 싸웠다. 이것은 흡사 15세기 영국에서의 장미전쟁을 연상시킨다. 백년전쟁을 뒤이은 브리튼 섬의 장미전쟁에서는 붉은 장미의 랭커스터 왕가가 흰 장미의 요크셔 왕가를 격파하지만, 겐페이 쟁투에서는 그 반대로 흰 깃발의 겐씨가 붉은 깃발의 헤이씨를 격파하였다.


겐씨는 겐지(源氏)로 읽고, 훈독으로 '미나모토'라고 하며, 헤이씨는 헤이케(平家)로 쓰고, '다이라'로 읽는다. 이 두 가문의 최종 승자가 결국 가마쿠라 막부를 열어, 일본의 중세 봉건시대를 여는데, 초반부의 승자는 헤이케였으나, 상대 가문을 완전히 멸문하지 않아서, 결국 오히려 자신들이 멸문을 당한다(1185년, 단노우라의 해전).


처음에 나는 이 두 가문이 다른 계통의 가문인가 하여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사실은 두 가문 모두 천황가의 후예이었다.


천황가는 성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천황 가문에서는 천황위의 승계를 포기한 후손들에게 성을 따로 주어(사성) 특별한 신하(아손, 朝臣)로 삼았는데 이들이 바로 源, 平, 橘(타치바나) 등의 권문세가이다. 이 중에서 겐지는 천황의 자(2대)와 손(3대)이 신하가 될 때 준 사성이고, 헤이케는 증손(4대) 이하가 신하가 될 때, 사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성은 더 이상 천황위를 승계받을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신하의 가문으로 역할 변경되는 것이므로 이론적으로는 헤이케가 보다 더 직계이고, 겐지가 보다 더 방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겐지나 헤이케 모두 같은 천황가의 혈족이 아닌가? 따라서 같은 혈족인데 어찌해서 신라계와 백제계라고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당연히 생긴다.


통상 일본에서는 천황의 혈통은 만세일계라고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최소한 3회 이상의 왕조 교체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겐지는 여러 천황들로부터 사성을 받은 사실이 있고, 헤이케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같은 겐지나, 헤이케라 할지라도 그 중시조가 되는 천황은 서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겐지와 헤이케가 사성 받은 천황 그룹이 다르고, 그 두 그룹의 천황의 왕조 또는 계통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따라서 겐지와 헤이케에게 사성한 천황들이 왕조가 다른 경향이 검증된다면, 겐지와 헤이케가 같은 혈족인지, 아니면 다른 혈족인지를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도쿠가와(德川)의 원래 성씨는 마츠다이라(松平)이다. 그렇다면 헤이케 즉 다이라 가문의 성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지방의 호족에서 일약 일본의 전 사무라이를 장악하게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주도 면밀한 족보 세탁으로 세이와 겐지(淸和源氏)의 일파인 닛따(新田)씨임을 주장하여, 1602년에 천황의 조정으로부터 겐지임을 승인받는다. 그것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정이대장군(쇼군)으로 가마쿠라 막부를 연 이래 요리토모의 세이와 겐지 가문은 바로 쇼군이 될 수 있는 혈통적 보증수표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겐지와 헤이케의 계통 구분에 대한 연구나 자료 제시가 불충분함은 말할 것도 없고, 도요토미와 도쿠가와를 이들 성씨(겐지와 헤이케)에 어설프게 연결하는 작업은 신빙성이 더욱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그 출자가 미천하고 혈통이 불분명한 도요토미가 헤이케를 표방하였다고 해서,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도쿠가와가 겐지라고 주장되는 사실도 참으로 혼탁한 미망 속에 있는 것이다.


(2015.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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