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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Q 립 2 나

사랑이라는 편견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시몬느 드 보봐르와 사르트르는 서로 부부가 아닌 연인 관계로 살았는데, 이것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는 곧 같은 인간이므로 서로 속박하지 않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동물 세계에서는 암컷이 새끼를 키우고, 수컷은 보통 새의 경우, 먹이를 가져다준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다르다. 인간의 경우도 자식을 키우기 위해 남녀가 협력하지만, 인간에게는 대화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는 협력이 곧 전부이지만, 인간에게는 협력 외에 대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은 대화가 통하는 사람 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좋은 친구를 아내로 맞은 남성의 경우에 그 아내와의 사별로 인한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이 그러했고, 공민왕과 유스티니아누스가 또한 그러하였다. 이 경우의 상실감을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나는 본다.


나는 그들은 붕우의 이별을 경험하였다고 평가한다. 나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가 없으니, 내가 거문고를 연주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탄식의 소지음이 곧 그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이다. 진정한 인생의 반려를 찾고 싶은가? 미인이 아니라 친구에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나 결혼 적령기에는 호르몬의 강한 영향으로 친구인 애인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친구보다는 미인 또는 부자를 고르기가 쉽다. 그것은 인류의 진화과정이 영생하려는 유전자에게 부여한 행동 기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거역할 수 없는 진리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친구가, 특히 적성이 소통되는 관계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최우선의 고려사항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남녀 간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보통 얘기하는데, 관계없는 교제만이 친구이라는 편견의 확장인 셈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친구라고 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들어 호르몬의 영향이 조금 줄어들게 되면서 호르몬이 내게 각인한 편견의 이면을 조금은 들여다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가 자신은 이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나는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에게도 친구가 없으니, 나는 정말 얼마나 외로운 존재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어릴 때 내 말을 가장 잘 들어준 분은 바로 고인이 되신 부친이셨다. 부친이 내 말을 다 들어주시고 응대해주셨다. 자라나면서는 형이 내 말을 다 들어주고 소통해주었다. 그러나 결혼을 각자 하고 나서, 내 말을 들어주는 이는 사라졌다.


나는 그냥 이렇게 허공에다가 메아리만을 울릴 따름이고,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자식마저 게임에 뺏겨 대화가 안 되니 곰곰이 지난 일들을 되새겨 본다.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 그렇다. 원인은 친구를 가린 사랑이라는 편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