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통나무)] 116쪽을 보면, 금강경의 첫 소절에 나오는 비구 1,250명에 대하여, 왜 하필 비구 대중의 수가 1,250명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서는 몇 페이지에 걸쳐 구차한 논설을 전개하고 있다. (이유를 억지로 만듦)
동국대학교 불교간행위원회의 현대불교신서 7, 박경훈, [부처님의 생애]의 상권 165쪽부터를 참고하면 1,250명에 대한 보다 구체적 정황을 알 수가 있다. (이유가 바로 이해가 됨)
부처님은 대각 후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다섯 고행자에게 초전 설법을 한다. 이후 부처님은 마가다국으로 가시게 되는데, 그곳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고 있던, 우루빈나 카샤파 형제들과 그들의 제자들을 설복시킨다. 그들은 바라문의 집안에서 태어나 출가한 고행승으로 불의 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머리를 묶었으므로 결발 행자(結髮行者)라고 불렸다. 맏형인 우루빈나는 5백 명의 제자를, 둘째인 나디는 3백 명의 제자를, 셋째인 가야는 2백 명의 제자를 각각 거느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산자야라고 하는 수행인은 25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제자들 중에 사리불과 목건련이 있었다. 더 나은 가르침을 찾아 헤매던 두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고, 산자야의 다른 제자들을 이끌고 부처님의 제자로 귀의한다. 이 과정에서 사리불과 목건련은 물론 산자야에게 함께 부처님을 따르자고 간청하였으나, 그는 거절하고 곧 죽는다.
이렇게 해서 비구의 수는 1천2백50인이 되었으며, 많은 경전의 첫머리에 큰 비구 1천2백50인과 함께라고 회상(會上)을 묘사하게 되는 중요한 인원이 갖추어진 것이다. 부처님 회상에 운집한 사부대중에 대해, 반드시 이들 1천2백50인의 비구가 참석하고 라고 하는 것은 경전 서술의 한 양식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때 출가(또는 재가 포함)한 비구가 승단의 기초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Note:
2012.11.22자 불교신문의 기사에서도 참고할 수 있네요..2020년 1월 31일에 부처님의 10대 제자에 대한 탐색 중 확인하였습니다.
http://www.jeju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