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이발소에 가면, 어릴 때는, 빨래판을 팔걸이에 대고 앉아서 머리를 깎았다.
머리를 깎을 때마다, 이발사 아저씨는 내가 짱구여서 깎기 힘들다고 하신다.
당시 우리 집은 여섯 가구가 한 집에서 함께 사는 집에서 세를 살았는데, 주인집 이모가 이발사와 결혼해서 골짝 마을로 가서 신방을 차렸다. 엄마는 이발비를 절약하려고, 나와 작은형을 데리고, 거기까지 놀러 가서 수다를 떨었다. 그동안, 나와 형은 머리를 잘랐다. 거울은 깨져서,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고, 참 가난한 동네였다.
70년대와 견주어 그래도 변하지 않은 풍경이 있다면, 이발소이다. 퇴폐와 미장원을 피해 괜찮은 이발소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보통 이발사들도 나이가 많이 드신 탓에 내가 언제까지 이 한국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발과 면도 단순한 이 한 세트의 서비스가 얼마나 완벽한 쾌적함을 주는 것인지!
이발 후 목 뒤 면도까지는 보통 이발사 아저씨가 하지만 안면 면도는 아줌마가 해준다. 예전엔 아가씨들이 했는데 그 아가씨들이 이제 다 나이가 들었다. 서비스가 노화되었다. 최근에는 보니 이발사 아저씨가 그냥 다 해준다. 버스에 차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유럽에서 이발을 해보면, 민족마다 그 머릿결이 다르기 때문에 이발사들이 한국사람의 머리카락을 다루는 것을 조금 어려워한다. 당연히 처음에는 그 이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서양사람들의 머리카락은 부드러운데, 한국사람들의 머리카락은 억세다고 한다. 따라서 이발하는 방법이 인종에 따라 다르다고 그랬다.
모스크바 출장 때 머리가 너무 많아 괴로워서 이발하러 갔더니, 아가씨가 가위를 들고 있었다. 마침 근무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라, 고참 아줌마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신참인 아가씨가 내 머리카락을 손질하였는데, 뭐가 잘 안되고 하면, 고참이 훈수를 하면서 두 여자가 러시아말로 뭐라 뭐라 수다를 떨어가면서, 내 머리를 잘라주었다.
나랑 의사소통도 손짓 발짓으로 그런대로 잘 되었는데, 이발이 꽤 만족스러웠다. 당연히 나는 팁을 듬뿍 주었는데, 매우 기뻐하였다. 팁도 팁이지만, 내가 자기가 손질해준 머리에 만족해 하는 것이 보람찼던 듯하다. 아마도 러시아는 다민족 국가여서, 나와 비슷한 머리카락을 가진 아시아계 사람들이 있어서, 더 잘 자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발소는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우리가 방문하는 평생의 휴게소이다. 항상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 이발소가 미장원에 밀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