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70년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선생님으로부터 좌측통행을 배웠다. 그 후로 좌측통행에 대해 그 어떤 불편한 느낌을 가져본 적도 없다. 다만 좌측통행이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어른들의 행동에 대해 느끼는 안타까움은 줄곧 있어왔다.
좌측통행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된 것은 90년대 회사에 들어가서 영업사원을 하면서부터이었다. 출퇴근을 할 때는 지하철을 타고, 영업을 하러 외근 나갈 때엔 운전대를 잡게 되었는데, 자동차의 질서가 서서히 내 몸에 축적되어갔다. 어느 시기부터, 지하철에서 도보로 이동할 때에도, 우측통행을 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왜? 인도에서는 좌측통행인데, 차도에서는 우측통행인가 하는 의구심이 자연스레 들게 되었다.
사실, 예전에 한국에 차가 많지 않을 때는 이러한 문제점이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전 국토의 일일생활권과 포니의 출시 이후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여, 도로주행 시의 우측통행에 익숙해진 수많은 자가운전자들의 의식 속에서 통행의 원칙은 알게 모르게 혼선이 생기게 된 것으로 나는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2000년대에 지하철의 이동 통로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릴 때 보면,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이 마구 뒤섞여,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태가 항상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난생처음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보았다. 그들의 정연한 질서의식과 함께 또한 인도뿐 아니라 (우리와 달리) 차도에서도 좌측으로 통행하는 원칙의 일관성을... 그때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우리의 좌측통행은 일제 식민 시절, 그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잔재임에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다만, 차도에서의 통행 규칙이 다른 이유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 해에는 미국으로도 출장을 갈 기회가 생겼다. 거기서 나는 보았다. 그들 또한 인도와 차도에서 동일한 통행 원칙을 가지고 있음을... 다만 그들의 일관된 규칙은 (일본과 달리) 우측통행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차량의 우측통행은 미 군정기, 그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임을...
한국의 근대화 시기에 보행의 좌측통행과 차량의 우측통행의 질서는 한쪽에서는 초등교육기관을 통해 계승되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핸들이 좌측에 위치한 미제 지프차를 통해 전수되어왔다. 그렇게 잠복되어 왔던 좌측통행과 우측통행 간의 갈등은 1995년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 후, 2008년 2만 달러 달성 시점까지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질서의식 체계 내에 논리적으로 해소 불가능한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2009~ 2010년 무렵 한국 정부는 갑작스레 도보 우측통행을 실시하였다. 내가 알기로는 도보 시 좌측통행을 우측통행으로 바꾸는 이유에 대해, 정부에서 그리 많은 홍보를 하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갑작스러운 규칙의 변경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도 별로 없었다. (물론 개혁을 무조건 반대하는 자들의 불평불만이 역시 완전히 없지는 않았었다.) 이것은 그만큼 국민들이 이러한 변경을 (인도와 차도에서의 통행 규칙의 일치를) 무의식적으로 갈구하여왔다는 반증이라고 할 것이다. 이때 나는 청계천 복원 이후 두 번째로 놀랐다. 언젠가 내가 추진하고자 마음먹었던 것을 누군가가 하고야 마는 동시대 대한민국의 합리적 공감의 저력을...
Note: (인터넷 참조)
우리나라의 좌측통행은 1921년* 조선총독부가 총독부령 제142호를 통해 사람과 자동차 모두 왼쪽으로 다니도록 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자동차의 우측통행은 1946년 4월 1일 미군정청의 도로 통행 규칙 개정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통행규칙에 우측통행이 있다. '1905년 12월 30일 대한제국 경무청령 제2호 가로관리규칙은 가로에서 차마와 우마가 서로 마주친 때 서로 우측으로 피하여 양보하고, 성문과 교량 및 통행이 혼잡한 가로에서는 우측으로 통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세상을 바꾼 전략 36계 참조) 2023.7.13.
영국의 좌측통행은 마차 유래설이 있다. 마차를 몰 때, 마부가 손님의 우측에 앉아야 마부의 채찍으로부터 손님이 안전할 수 있고, 보행하는 사람들도 다치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은 영국의 표준을 따른 것이다. (사무라이 유래설이 있으나, 전형적인 자기 합리화이다.) 오늘날 좌측통행을 하는 모든 나라들은 역사적으로 영국과 관련이 있다. (영연방 등)
우측통행은 프랑스 혁명기에 1794년 나폴레옹이 공식화하였고, 전 유럽 대륙에 확산시켰다고 하는데, 이후 완전히 정착이 된 것은 자동차의 발달과 보급 때문으로 보인다. (1차 확산은 나폴레옹이, 2차 확산은 나치가 하였다.) 최초로 가솔린 자동차를 제작한 독일의 자동차 기술자들은 핸들의 위치에 대한 고심 끝에 좌측 핸들로 자동차를 설계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운전자가 힘이 많이 드는 (수동) 기어를 조작하려면, 운전석이 우측보다 좌측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인) 운전자에게 더 편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포드의 자동차 대량 양산시스템에로 이어져 미국의 자동차와 도로교통체계에 영향을 주었다.
좌우 통행 변경의 문제를 좌파와 우파로 연관지어 자기 주장을 전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든 것을 한 개의 잣대(당파성)로 재단하는 그들의 뇌 기능은 상당히 효율적이나, 당연히 포괄적 설득력은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