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장기(將棋)의 다른 말로 상희(象戱), 상기(象棋), 상혁(象奕) 또는 귤중희(橘中戱) 등이 쓰였다. 장기의 이름에 상(象)이 쓰여져 온 것은 이 우아한 반상게임의 출생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시대이래 전투에서 코끼리를 중요한 무기체계로서 활용한 나라인 인도이다.
그런데 한가지 다른 이름인 귤중희(橘中戱)에서의 귤(橘)은 장기와 또한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조사를 해보니, 귤중희는 당의 재상 우승유의 [현괴록] 제3권 <파공인>에 나오는 고사였다. 한글 내용과 원문은 다음과 같다.
파공(巴邛) 어떤 집에 귤(橘)나무가 있었는데, 서리가 온 뒤에 귤을 다 따고 두 개가 남아 있는데 크기가 삼사 두(三四斗)가 들어가는 독만큼 컸다. 따 보니 무게도 보통 귤과 같았다. 쪼개어 본즉 귤마다 흰 수염에 살결은 홍명(紅明)하고 키는 한 자 남짓한 두 노인이 장기를 두며 웃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한 노인이 말하기를, “이 가운데 즐거움이 상산(商山)보다 못하지 않은데 다만 오래 있을 수는 없구나.” 하고는 네 노인이 구름 속으로 올라가 버렸다.
○巴邛人
有巴邛人,不知姓名,家有橘園。因霜後,諸橘盡收,餘有兩大橘,如三斗盎。巴人異之,即令攀橘下,輕重亦如常橘。剖開,每橘有二老叟,鬢眉皤然,肌體紅潤,皆相對象戲,身長尺餘,談笑自若,剖開後亦不驚怖,但相與決賭。
決賭訖,一叟曰:「君輸我海上龍王第七女髲髮十兩、智瓊額黃十二枝、紫絹帔一副、絳臺山霞寶散二庾、瀛洲玉塵九斛、阿母療髓凝酒四鍾、阿母女態盈娘子躋虛龍縞襪八緉,後日於王先生青城草堂還我耳。」
又有一叟曰:「王先生許來,竟待不得,橘中之樂,不減商山,但不得深根固蒂,為愚人摘下耳。」
又一叟曰:「僕饑矣,須龍根脯食之。」即於袖中抽出一草根,方圓徑寸,形狀宛轉如龍,毫釐罔不周悉,因削食之,隨削隨滿。
食訖,以水噀之,化為一龍,四叟共乘之,足下泄泄雲起。須臾,風雨晦冥,不知所在。
巴人相傳云:「百五十年來如此,似在陳隋之間,但不知的年號耳。」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상기의 네 노인을 상산사호(商山四皓)로 유추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상산사호가 어떤 의미인지 조사하는 수고를 하여야 했다. (아래 부기 참조). 그러나 상산사호의 고사 보다는 귤과 장기의 관련성에 대해 직시를 하고자 한다면, 다음의 동남아시아 유적의 벽화를 한 번 보면 그만이다.
Angkor Wat
, at the south wall of Angkor Wat temple.
King Playing Chess
Bayon, at south east. playing chess in palace.
어쩐지 장기에 사용된 기물이 귤처럼 둥글둥글하다는 인상이 느껴지지 않는가?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에서 보듯이 예로부터 귤은 전형적인 남국의 과일이다. 남국에서 온 장기가 남국의 과실로 비유되는 것은 장기가 코끼리에 비유되는 것과 같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남국의 사람들은 아마도 장기말이 부족할 때는 귤로서 그것을 대신하였을지도 모른다. 다음 사진은 상기 벽화에 나오는 동남아 장기의 후예 중 하나인 현대의 태국장기 막룩의 기물이다.
(2015. 01. 20)
Note:
'상산사호' (참조 : 데일리안 2006 08 04 및 한국일보 2014 09 28 이덕일의 천고사설)
호(皓)는 희다, 깨끗하다는 뜻과 함께 노인이란 뜻도 있다. 동양사회에서 지혜로운 네 노인의 집단지성을 가리키는 말이 상산사호(商山四皓)인데, 사호(四皓)라고도 한다. 진(秦)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 네 노인은 상산(商山)으로 들어갔다. 수염과 눈썹이 모두 희었기에 상산사호(商山四皓)라고 불렸던 네 노인은 영지버섯 등을 따먹으며 지냈다. 유방(劉邦)이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項羽)를 꺾고 천하를 통일했을 무렵에는 이미 천하에 현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래서 한(漢) 고조 유방이 사호를 불렀으나 네 노인은 ‘자지가(紫芝歌)’를 부르며 거절했다. 자줏빛 버섯(紫芝)이란 선가(仙家)에서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치던 영지버섯을 뜻한다. 한 고조 유방은 여후(呂后)의 아들 유영(劉盈)을 태자로 책봉했으나 척부인(戚夫人)을 총애하게 되자 척부인의 소생인 유여(劉如)로 갈아치우려고 마음먹었다. (여후, 즉 여태후가 나중에 척부인의 손발을 잘라 인체(사람 돼지)로 만들었던 비극의 단초가 이 태자 교체 기도에 있었다.) 다급해진 여후는 유방의 모사(謀士) 장량(張良)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장량의 계책은 뜻밖에도 사호를 극진한 예로 불러서 태자의 곁에 두라는 것이었다. 태자가 공손한 서찰을 써서 올리자 세상으로 나온 사호는 태자를 보좌했다. 어느 날, 유방은 신하들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태자가 있는 자리를 보니 눈썹과 수염이 온통 눈빛처럼 하얀 노인 4명이 태자와 함께 있었다. 유방이 물었다. "저 늙은이들이 도대체 누구인데 태자와 함께 앉아 있는가." 한 신하가 대답했다. "저들이 유명한 ´상산사호(商山四皓)´입니다." 유방은 깜짝 놀랐다. "내가 저들을 보고 싶어한지 오래다. 그런데도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어째서 나를 기피하면서, 태자와는 가까이 하고 있는가."
´상산사호´가 이 말을 들었다. 유방의 말을 받았다. "임금이 선비를 가볍게 여기는 바람에 우리는 산 속에 숨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선비를 아끼고 좋아해서 천하가 태자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산에서 내려와 태자를 돕기로 한 것입니다."
유방은 이 말을 듣고 탄식했다. "이미 태자에게는 날개(우익·羽翼)가 생겼구나. 나의 힘으로도 이제는 태자를 어쩔 수 없게 되었구나"하며 태자 교체를 포기했다. 태자는 무사히 임금자리에 올라 혜제(惠帝)가 될 수 있었다. 사기(史記) ‘류후세가(留侯世家)’의 주석인 ‘사기색은(索隱)’은 진류지(陳留志)를 인용해서 “동원공의 성은 유(庾)씨인데, 정원 안(園中)에 거주해서 이를 호로 삼았으며, 하황공은 성이 최(崔)씨이고, 제(齊)나라 사람인데 하리(夏里)에 은거하며 도를 닦았으므로 하황공(夏黃公)이라고 불렀다…”고 네 사람의 출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장량은 한 고조 유방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주었는데, 자신이 해결사로 나선 것이 아니라 네 노인의 지혜를 활용하자는 것이었으니 역시 명 참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