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서양의 기독교에 비견할 만한 것으로 동양 특히 중국 문명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오행사상이다.
클라우디아 메르틀의 [누구나 알아야 할 서양 중세 101가지 이야기] p49에 보면 다음의 내용이 있다.
‘서양에서 제정을 부활시키고 그것을 프랑크 왕조 및 훗날 독일 군주제와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근거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고대 후기에 나온 기독교 교리에서 그 근거를 발견했다. 교리에 따르면 역사상 네 개의 세계제국이 연이어 등장하게 되는 데, 그 네 개의 제국이란 바로 바빌론 제국과 메디아-페르시아 제국, 그리스 제국과 로마 제국으로, 로마 제국은 세계의 종말이 다가올 때까지 지속된다고 한다. 그 밖에도 그 교리는 신이 imperium(절대적인 권력), 즉 로마 제국에 대한 통치권을 다양한 민족들에게 양도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translatio imperii).
9세기 중반에 이르자 이 같은 교리를 바탕으로 로마 황제권이 비잔틴 사람들에게서 프랑크족에게로 넘어왔다는 관념이 싹트게 되었다. 샤를마뉴 대제 이후 작센 가문의 군주들(오토 1, 2, 3세) 또한 황제 즉위를 요구했는데(962년 오토 1세(재위 936-973)가 황제로 즉위했다), 이때 그들은 절대권이 프랑크족에게서 작센족에게로 다시 한 번 이양(translatio)되었음을 근거로 내세웠다.’
위의 기독교 교리란 구약성경의 다니엘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다니엘서의 2장에 보면 바빌론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다니엘이 해몽하면서 금-은-동-철 로 이어지는 4개의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4시대 구분은 인도-아리안 족에게는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힌두교의 신화에 따르면 매 세계의 주기는 네 개의 유가들(four yugas), 혹은 세계시대들(world ages)로 나뉘어진다. 이것들은 희랍과 로마의 전통에 있어서 네 시대와 비교될 수 있으며 희랍과 로마의 전통에서 처럼 순환이 진행됨에 따라 도덕상의 미덕은 타락한다. 고전 시대는 시대명을 금, 은, 동, 철의 광물로부터 취하고 힌두인은 크리타, 트레타, 드바파라, 칼리 라고 하는 인도인의 주사위의 네 번 굴림놀이에서 취하였다. 이들 두 경우에 있어서 명칭들은, 각기 시대들이 서서히 불가역적으로 진행하면서 서로 이어 나갈 때, 그 시대들이 상관하고 있는 덕을 암시한다.’ (하인리히 짐머, 인도의 신화와 예술, 조셉 캠벨 편, 평단문화사, p22.)
이러한 글들을 읽으면서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진시황이 자신의 나라에 부여한 수덕(水德)이다.
진시황은 제나라 추연의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을 신뢰하였는데, 그 이론에 따르면 왕조(王朝)는 그 왕조에 부여(附與)된 오행의 덕의 운행논리(運行論理)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흥망성쇠가 교체된다.
추연은 황제(黃帝)를 토덕(土德)에, 하나라(夏)를 목덕(木德)에, 은나라(殷)를 금덕(金德)에, 주나라(周)를 화덕(火德)에 배치하여 오행상극의 이론대로 각 왕조는 다음에 나타난 왕조에게 타도되는데, 물(水)은 오행상극의 최후의 것으로서 왕조순환은 수덕(水德)을 갖춘 진나라(秦)에서 그친다고 하여 진(秦)의 정통성과 절대성을 주장하였다. (위키백과 참조)
그런데, 이 오행설은 유교와 결합되어 동중서는 오행상생을 주창하여 이후의 중국 왕조들은 오행상극 보다는 오행상생에 기반한 오행의 상징을 내세우면서 그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오행설에 기반한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사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서양에서는 금-은-동-철의 4개의 시대로서 왕조의 정통성을 보증한 반면, 동양(중국문명)에서는 목-화-토-금-수의 오행설(상극 또는 상생)로 왕조의 정통성을 보증한 것이다.
서양의 금-은-동-철의 시대구분과 동양(중국문명)의 목-화-토-금-수 오행의 시대구분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선형이론과 순환이론의 차이이다. 서양의 직선이론은 기독교 사상에서 보이는 천지 창조와 종말론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시대는 항상 철의 시대이며 말세이다. (현재의 문명 또한 철기 문명이 아닌가?) 기독교에서는 사람의 죽음도 한 번으로 끝나고 바로 세계의 종말로 직행한다. 과학에서는 빅뱅이론으로 표현된다.
동양(중국문명)에서는 사람의 죽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육도의 윤회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재생으로 이어지는 중음(바르도, 생과 생을 잇는 경계)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윤회사상은 본래적으로는 인도아리안 계통의 사상(힌두교와 불교)이라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인도의 순환론이 서구 문명에서는 주류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잘 수용되었다. 따라서 불교의 49재(중음의 영혼을 위한 제의)는 유교의 4대 봉제사(100년이면 혼백이 흩어짐)의 전통과 함께 아직도 우리 상제(喪祭)에 잘 반영되어 있다.
자유민의 다수의 선택에 의한 보증이 있기 이전 사회에서 국가나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선인들의 노력은 다양하였다. 그것은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최고의 사상과 이념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동양(중국문명)에서의 오행사상이 차지하는 권위와 민간의 신뢰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Note:
1. 고려 왕(王)씨를 토(土)로 놓으면 역성혁명을 한 이(李)씨는 목(木)인데 목극토(木克土)로 볼 수 있다.
2. 오행(五行)의 목화토금수 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인데, 인도아리안에서 이에 대응하는 것은 지수화풍의 사대(四大)이다. 사대와 오행을 비교하면, 차이는 단 하나이다. 바로 풍(風)과 목(木)이다. (사대의 지(地)는 오행에서는 토(土)와 금(金)으로 분화된다.) 자연현상에 불과한 풍(風)대신에 생명을 상징하는 목(木)이 자연의 구성요소로 인식됨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3. 주화의 경우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금-은-동 화의 체계가 만들어졌다. 이에 반해 중국에서는 청동 주화와 철전 등이 있었고, 은화는 청나라때 유통되었으나, 금화는 없었다. 부존자원의 차이때문일까? 교역 물품의 가치가 낮아 고액 화폐를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