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Q 립 2 나

부고에 대하여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겨울이라 장례식장에 가게 된다. 나는 베이비부머 끄트머리이지만 이제는 후배들 부모님들도 돌아가신다. 참으로 힘겨운 생애들 이시다. 보통 일제시대 후반기에 태어나,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어, 성장기에는 영양상태가 부실하였고, 또한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감당하여야 했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과 함께 쉼 없이 달려온 그 기적의 생명들이 이제 그 힘이 다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응답하라 1988'에 울고 웃는다. 나는 드라마의 주인공들보다 앞선 세대이지만, 그래도 감동적이다. 우리 지난날을 복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반생에서의 시대변화가 이럴진대, 그분들의 시대변화는 과연 어느 만치 파란만장하였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고인이 되신 부친은 가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애비야 나한테 이 세상은 제트기 같더구나.' 옛날에 쌕쌕이라고 부르던 제트기가 당신에게는 가장 빠른 사물이었다.


사실 내 부모의 집성촌은 신작로에서 먼 지역이라, 아버지가 자라실 때에는 거의 봉건제 수준의 촌락 경제이었을 듯하다. 도회는 일제의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시골에서는 서당과 정자에서 한학과 함께 마을의 대소사가 결정되고 있었다. 부친은 항상 자식들이 출세하면, 마을의 정자에 가서 큰소리 한번 쳐보고 싶어 하셨다. 오랜 타향살이 중에도 부친의 안테나는 항상 고향 언덕이었다. LA의 한인들이 고국의 정치에 너무나도 열성적인 것이 갑자기 떠오른다.


부친은 작고하시기 전 생명을 연장하신 가장 중요한 2 년의 시절, 그처럼 소망하시던 붓글씨를 마음껏 공부하셨다. 부친께서는 붓글씨를 일필휘지 하고 난을 치는 사람이 더없이 부러우셨던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소풍 때 먹지 못했던 바나나에 한이 맺혀, 아내는 항상 비치해놓지만, 우리 집에서 바나나를 먹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어머니는 나로서는 동심 깃던 어린 시절의 실상에 대해서 가끔 말씀해준다. 그 당시 어머니는 매일 매일의 끼니를 걱정하셨다. 양식은 떨어졌는데, 어린것들에게 무엇을 먹일 것인가? 옛날 주부들의 부업이었던 홀치기라는 것을 하셔서 받은 돈 몇 푼으로 겨우 밀가루를 한 포대 사 와서 수제비를 해주었는데도 아이들은 무탈하게 잘 먹어서 기뻤다고 하셨다. 나의 낙천성은 부친과 모친의 땀과 인내의 덕 아닌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우리 세대의 버팀목이신 분들이 하나둘씩 이제 그 미련을 거두신다. 우리들은 점점 고아가 되고, 조상의 미덕을 미처 배우지도 못한 채 아귀다툼으로, 경쟁으로 삶을 살아온 우리 세대와 또 그 세대들의 자녀들로서 게임으로 단련된 전뇌 세대들 앞으로 낙천성 보다 더 엄중한 실업의 혹한이 아스라이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