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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하루

니시와끼 쥰사부로(西脅順三郞)

by 조영필 Zho YP

겨울 하루


어느 황폐한 계절

끝없는 마음의 지평을

헤매이다가

山査(산사)나무 울타리 긴 마을에

발길이 멎었다.

걸인들이 개달구지를 굽는 모닥불 위로

남색구름이 펄럭이고 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장미 노래를 불렀던

사나이가 마음의 파멸을 탄식하고 있다.

열매를 따는 박구리 새는 말이 없다.

이 마을에서 호야불 켜고 공부를 하는 거다

「밀턴처럼 공부를 하는 거다」라고

대학총장 같은 천사는 속삭인다.

하지만 배꽃 같은 꽃송이가 덤불 속에 필 때까지

사냥꾼도 낚시꾼도 장기만 두고

모든 것을 잃은 오늘밤이야 정녕

바치고 싶다.

울타리를 돌아 나비와 춤을 추는 인간을 위해

끝 없는 여인을 위해

이 겨울 하루를 위해

高樓(고루)마냥 손잡이 긴 유리잔에

산사나무 열매와 눈물을 담아






(일본현대시선, 청하, 1984)


Note:

고루(높은 누각, 망루)마냥 손잡이 긴 유리잔에 빨간 열매가 담긴다면 굉장히 Sexy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