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역전 이발
때때로 나의 오후는 역전 이발에서 저물어 행복했다
간판이 지워져 간단히 역전 이발이라고만 남아있는 곳
역이 없는데 역전 이발이라고 이발사 혼자 우겨서 부르는 곳
그 집엘 가면 어머니가 뒤란에서 박 속을 긁어내는 풍경이 생각난다
마른 모래 같은 손으로 곱사등이 이발사가 내 머리통을 벅벅 긁어주는 곳
벽에 걸린 춘화를 넘보다 서로 들켜선 헤헤헤 웃는 곳
역전 이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빛이 살고 있고
말라가면서도 공중에 향기를 밀어넣는 한송이 꽃이 있다
그의 인생은 수초처럼 흐르는 물 위에 있었으나
구정물에 담근 듯 흐린 나의 물빛을 맑게 해주는 곱사등이 이발사
([맨발], 창작과비평사)
감상:
아침에 출근하는데 라디오에서 낭송. 이 시에서 재미있는 것은 '수초처럼'이 '흐르는'을 수식하지 않고 '있었으나'를 수식하는 부사구라는 점. 그 다음 행의 '담근 듯'은 또 바로 뒤의 '흐린'을 수식. 이러한 애매한 수식구조가 뇌 속에서 엇박자의 간섭을 일으켜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2014. 0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