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경영학,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석승훈

by 조영필 Zho YP

경영학,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 경영학 신화에 질문을 던지다




P25

... 2차 대전 중에는 포로수용소에서 담배가 화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인류가 사용했던 자연화폐의 예를 들어 보자. 아몬드(인도), 옥수수(과테말라), 보리(고대 바빌로니아), 카카오 씨(아스테카 문명), 차(몽골), 쌀(한국) 등 곡류와 식물류의 자연화폐가 있었고, 순록(시베리아), 물소(보르네오), 양(고대 히타이트), 소(그리스) 등 동물류의 자연화폐가 있었다. 소금, 조개껍데기, 옷감(비단) 등도 아시아나 지중해 지역에서 사용되었다(Weatherford, 1998).


P26 [화폐의 언어적 유산]

'금전적인'이라는 뜻의 영어 'pecuniary'의 어원은 가축으로 표시된 부를 의미하는 고대 라틴어 'pecuniarius'라고 한다.... 소금은 화폐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로마 군인의 급료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화폐(貨幣)의 貨는 조개를 의미하며 幣는 비단을 의미한다. 돈이라는 말 대신에 전(錢)이 주로 사용되었고(조병수, 1993), 그 밖에 천포(泉布), 도(刀) 등의 호칭도 사용되었다. 문헌상 최초로 나타난 돈은 고조선의 자모전(子母錢, 기원전 957 ???)으로....

도화(刀貨) 혹은 도환(刀環)이 변해서 돈이 되었다는... 무게를 재는 돈(돈쭝)에서 돈이 나왔다고도 하는데, 무게를 재는 단위인 돈 역시 도에서 유래한다고도 한다.


P28 [야프 섬의 돌돈]

자연화폐 가운데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의미 있는 경우가 미크로네시아의 야프(Yap) 섬에서 사용된 라이(rai) 또는 페이(fei)라고 하는 돌로 만든 돈이다. 돌돈의 재료인 돌은 옆의 섬 팔라우(Palau)에서 만들어져 보내진 것이라 한다. ... 7000개 가량... 조그만 돌돈에서부터 지름 2미터가 넘는 돌돈이 있고 큰 돌일수록 값어치가 크다. 돌돈은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구멍이 나 있다. 부피가 큰 돌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돌돈이 누구의 소유인지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써야 할 때는 그저 소유권을 넘기고, 그 사실을 널리 알리면 되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 섬에서 가장 큰 가치를 지닌 제일 큰 돌돈은 아예 이 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돌은 바다에 빠져 더 이상 아무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돈으로서의 가치는 보존되었다.

... 손에 잡히지 않는 은행 계좌의 숫자와 야프 섬 앞바다에 빠져 있는 돌은 무엇이 다를까?...


P35 [화폐 이론]

경제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카를 멩거(Carl Menger)의 인간 행위 이론(the praxeological theory of money)에 바탕을 둔... 화폐가 시장 거래의 편리성을 위해...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화폐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외에 다른 이론도 있다. 그중 하나가 화폐를 금속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금속 이론(the metallic theory of money, 혹은 금속주의metallism)이다. 경제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애덤 스미스 시대인 18세기까지만 해도 한 국가의 부는 그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금은의 양이라고 믿었다...

... 스페인이 쇠락한 이유가 생산력의 부족에도 있지만 금을 계속 축적할 능력이 부족해서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이론으로는, 미첼 이네스(Alfred Mitchell-Innes)가 『은행법 저널 Banking Law Journal』(1974)에서 주창한 신용 이론(the credit theory of money)이 있다. 신용 이론에 따르면, 화폐의 본질은 신용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돈을 지급하고 물건을 산다는 것은 사실상 물건 값에 해당하는 만큼 빌린 것이며, 물건을 판 사람은 그 만큼의 가치를 빌려 준 것이다. 거래는 매번 이렇듯 대부와 차입의 관계를 발생시키며, 이러한 대차 관계는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사람과 거래를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해소된다.

...

또 다른 이론으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크나프(Georg Friedrich Knapp)가 주창한 화폐 국정론(the state theory of money)이 있다... 화폐는 국가 권력의 산물이며, 국가는 화폐를 관리하고 발권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진다...

금속주의 이외의 다른 이론들은 명목주의(nominalism)라고 부른다. 명목주의에서는 화폐의 본질을 금속의 가치가 아니라 화폐의 역할에서 찾는다.


P43

... 현재 이스라엘에서 사용되는 화폐인 셰켈(shekel)이라는 화폐 단위가 이미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조폐공사에서 이 셰켈 동전을 제조한다고도 하니,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전혀 없는 화폐는 아니다. 60셰켈은 1미나(mina), 60미나는 1탤런트(talent)에 해당한다...

... 셰켈도 원래는 보리의 무게를 재는 단위였다. 1셰켈은 보리 약 180그레인(grain, 8~17그램)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나중에는 은으로 화폐를 만들었다고 하니, 화폐로 보리와 은 등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는 화폐가 없는 물물교환의 시대였다...

.. 보리나 셰켈 등은 거래의 매개체로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해 생산한 보리나 사육하는 양의 가치를 재는 측정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

한편, 시장 거래가 없다고 해서 사적 소유의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흉년이 여러 해 계속되면 농부는 부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농부가 가진 것을 다 주어도 빚을 갚지 못하면 채무 노예로 전락한다...


P48 [미다스의 손]

... 미다스는 기원전 8세기경 지금의 터키지역인 아나톨리아의 프리지아(Phrysia) 왕 이름으로 그의 아버지는 고르디오스(Gordios)다. 프리지아 왕실은 고르디오스와 미다스의 이름을 교대로 사용한 모양이었다....

미다스가 목욕했다고 전해지는 팍톨로스 강은 실제로 트몰로스 산에서 내려오는 사금이 많이 섞여 흘렀다고 한다. 팍톨로스 강은 고대 도시인 사르디시[Sardis, 현 지명은 터키의 살리흘리(Salihli)]를 가로질러 흘러간다.


P49 [주화의 제조]

기원전 7세기경에는 동아시아나 인도 그리고 서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주화(coin), 즉 동전이 만들어졌다. 중국은 춘추 전국 시대에 칼 모양의 동전인 도전(刀錢)이 사용되었고, 인도에서도 16대국 시대인 기원전 600년 전후에 주화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역사Hisoriae』에 의하면, 기원전 600년경 금으로 주화를, 즉 금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P50

... 정확히 말하면 순수 금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고, 금과 은의 자연 합금인 일렉트럼(electrum, 호박금)이라고 한다.

최초로 주화를 제조한 왕은 리디아 메름나드(Mermnad) 왕조 4대 왕인 알리아테스(Alyattes)로 알려져 있다. 점차 금화의 제조가 정교해져 원형으로 크기가 통일되었으며, 왕조의 상징인 사자 머리 모양의 인장을 찍어 발행했다. 리디아의 마지막 5대 왕인 크로이소스(Kroisos)에 오면서 금화는 가장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앞면에는 사자와 황소가 새겨지고, 뒷면에는 사각형 모양이 새겨져 동전의 가치를 나타냈다. 금화의 단위는 스타테르(Stater)이며, 1/3, 1/6, 1/12 등의 더 작은 단위로 세분되었다.


P52 [페르시아·그리스·마케도니아]

... 그리스 전역에 100 개 이상의 조폐소가 만들어져 운영되었다. 그리스의 화폐 단위는 드라크마(drachma)로 원래 의미는 동이나 구리, 철 등 금속 막대기 한 줌에 해당하는 무게다. 드라크마는 주로 은화로 제작되었는데, 금은 가치가 크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잘 이용되지 않았다.


P53

... 다리우스 1세(Darius I, BC 521-486) 대왕은 동전에 자기의 모습을 새겨 넣고, 이를 다릭(daric)이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다리우스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혹은 금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인 자릭(Zaric)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페르시아는 또한 역사상 처음으로 실물이 아니라 동전으로 세금을 받은 나라였다. 리디아만 하더라도 금화는 장식품의 의미가 강했으나, 페르시아와 그리스를 거치면서 교환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커졌다.

... 마케도니아 역시 페르시아에서와 같이 동전으로 세금을 받았으며, 이 동전은 영토의 확장에 따라 광활한 지역에서 받아들여졌다.


P54

... 주나라에서는 제례 악기인 경(磬)의 모양을 청동으로 본떠 만든 화폐가 사용된 기록이 있다.


P55

기록으로 확인되는 인도 최초의 동전은 기원전 7-6세기경에 만들어져는데, 은을 얇게 편 각진 모양의 동전이었다. 이 은화에는 해나 여러 동물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은화들도 처음에는 민간에서 만들어졌으나 점차 국가가 발행하게 되었다.


P56

인도의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Reserve Bank of India)에 따르면, 마우리아 왕조에서는 아데샤(adesha)가 상인들 사이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제3자에게 금액을 지급하게 하는 환어음과 같은 것이다. 환어음은 직접적인 화폐 교환이 아닌 신용으로 거래하는 것으로 화폐가 진일보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P57 기축시대

주화는 세계 각지에서 기원전 7세기 전후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이 시대를 포함하여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200년 사이를 기축 시대(機軸時代, Axial Age)라고 불렀다...


P58

기원전 3500년경부터 시작된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200년을 전후로 막을 내리고 아나톨리아 지역을 시작으로 철기 시대로 진입한다... 철기와 전쟁 그리고 종교와 철학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알렉산드로스를 보자. 전쟁에 동원된 군인에게 금화나 은화로 월급을 줬다... 페르시아나 마케도니아는 세금을 동전으로 받았기에 민간에서도 동전을 축적해야 했다....


P60

...고대의 경제 체제에서 물건의 교환은 지속적인 상호 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졌기에 교환의 매개체로서의 화폐의 의미는 크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과의 거래는 일회성을 전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의 거래에서는 기존의 체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 스폿 거래가 필요하다. 또한 군인들이 보리나 양 등을 짊어지고 전쟁터를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장식품의 의미가 강했던 금과 은이 드디어 거래의 매개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데이비드 그래버는 기축 시대의 제국을 군사-주화-노예 복합체(military-coinage-slave complex)로 명명한다.


P62

모네타는 원래 경고(警告)를 뜻한다. 로마 초기에 북쪽의 갈리아족이 침략하기 전, 주노 사원의 거위들이 시끄럽게 울어 대었다고 한다... 이후 주노에게 모네타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화폐 주조를 뜻하는 영어 'mint' 역시 모네타에서 나온 말이고, 동전을 뜻하는 스페인어 'moneda', 독일어 'Muenze' 등도 모네타가 어원이다.


P63

로마의 화폐 단위는 은화는 데나리우스(denarius), 금화는 아우레우스(aureus), 다음에는 솔리두스(solidus)가 쓰였다... 1아우레우스는 25데나리우스에 해당한다.


P65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는 동전을 통일하고 사적인 주조를 금지했다. 차나캬의 <아르타샤스트라>에서는 은과 구리의 두 금속을 기준 화폐로 하는 복복위제(bimetallism)를 주장했다....

... 상대적으로 은이 귀했던 고대 중국에서는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이 약 1:5 정도였다. 이에 반해 로마에서는 약 1:10에서 1:15 정도의 교환 비율을 유지했다.


P67

당(618-907) 고조는 오수전을 폐하고 개원통보(開元通寶)를 주조했다. 당은 많은 금이 유입된 시기로 흑룡강 일대에서는 금광 채굴이 성행했고, 인도, 동남아,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제국으로부터 금이 유입되기도 했다. 은은 대외 지급 수단으로 사용되었다(왕양, 2010).


P70

송과 금 시대의 무역에는 당연히 금과 은이 사용되었다... 송대의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은 약 1:6 정도였고, 유럽에서는 1:12 정도였다.


P73

... 금화는 디나르(dinar), 은화는 디르함(dirham)... 가나 지역에는 금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다...'황금해안'... 강변의 도시인 말리의 가오(Gao)나 팀북투(Timbuktu)는 13세기 이후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P75

수표인 사크(sakk), 약속어음인 루카(ruq'ah), 환어음인 수프타자(suftajah) 등으로 사크는 수표를 뜻하는 영어 'check'의 어원이다.


P76

성전기사단은... 엄청난 부를 소유... 유럽 내의 군주들에게... 은행업을 겸하게 되었다... 환어음을 발행하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의 필리프 4세(Philip IV, 1285-1314)는 영국과의 전쟁 등의 이유로... 아비뇽 유수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성전기사단을 해체하고자 했다... 필리프 왕의 체포 명령은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내려졌가, 이 때문에 서구에서 13일의 금요일은 불길한 날로 간주한다.

p84

... 멕시코의 사카테카스(Zacatecas)와 볼리비아의 포토시(Potosi)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었다. 1556년부터 1783년까지 포토시의 은광에서 스페인으로 보내진 은의 양은 4만 1000톤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약 8000톤이 스페인 왕실 소유가 되었다... 스페인이 중남미로부터 가져온 금과 은의 가치는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총 2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멕시코, 페루, 볼리비아에서 약탈한 금과 은은 스패니시 메인(Spanish Main)이라 불린 지금의 카리브 해 연안 항구에 모아져 스페인 세비야(Sevilla)의 항구로 옮겨졌다.


p87

... 16세기 초 신성 로마 제국의 현재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의 야히모프(Jachymov)라는 도시의 계곡에서 은광이 발견되었다. 야히모프는 독일어로 요아힘스탈(Joachimsthal)이라고 하는데, 요아힘은 성모 마리아의 아버지 이름이고, 탈(tal, thal)은 독일어로 계곡을 뜻하며... 탈러는 종전의 굴디너보다 좀 작았는데, 탈러 9개의 무게가 유럽에서 많이 쓰이던 1쾰른 마르크와 무게가 일치하여 많이 유통되었다.


p93

...존 로크(John Locke)는 국가의 화폐는 신용이 중요하므로 훼손된 옛 은화라도 액면 가치로 평가하여 새 은화로 교환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훼손된 은화는 시중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세금이나 정부와의 계약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훼손된 은화를 회수했다. 이를 1696년의 '위대한 재주화(Great Recoinage)'라고 부른다.


p95

... 1717년 이후를 실질적인 금본위제가 시행된 때로 간주하는데... 당시 영국의 조폐국장이었던 뉴턴의 주도하에 영국 정부는 금화 1기니를 은화 21실링으로 못 박았다... 뉴턴은 금화와 은화의 교환 비율이 시간이 흐르면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은화는 사라지고 금화만이 사용되는 결과를 낳았다.


p96

... 공식적으로 금본위제를 선언한 때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인 1819년이다.

... 이 당시의 금본위제는 금화를 발행하여 운영되었기에 금화본위제(gold specie standard)라고 부른다... 영국과 독일이 금본위제를 채택하면서 은을 방출하자 주변국에서는 은의 가치가 정부가 정한 교환 비율보다 떨어졌다.


p97

... 1차 대전이 발발해 전쟁 자금이 부족해지자 각국은 통화를 증발하여 금 보유량보다 훨씬 많은 지폐가 발행되었다... 이때의 금본위제는 금지금본위제(金地金本位制, gold bullion standard)라고 부른다. 금지금본위제는 금화를 발행하는 대신 금의 가치를 근거로 하여 지폐를 발행한다.


p98

...금환본위제(金換本位制, gold exchange standard)는 19세기 말 은본위제였던 인도(루피 rupee, 루피는 산스크리트어의 은을 뜻하는 raupya에서 기원한다)와 필리핀(페소)에서 영국과 미국의 통화에 환율을 고정하는 방식으로 시행된 적이 있다.


p126

...당의 금은점이 ... 은행이 금이 아니라 은을 취급하는 점포였기 때문이다. 한편, 행(行)이라는 글자가 점포의 뜻으로 쓰이면 '항'이라고 발음되어, 은행의 원래 발음은 은행이 아니라 은항이라고 한다(주경철, 2009).


p135

... 예금의 일부만을 보유하는 방식을 부분지급 준비금(fractional reserve) 방식이라고 하는데, 이 방식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은행은 1657년에 세워진 스웨덴의 스톡홀름 은행(Stockholms Banco)이었다.

... 이에 스톡홀름 은행은 궁여지책으로 다음에 갚기로 약속한 증서인 은행권(banknote)을 발행했다... 이때가 스톡홀름 은행이 세워진 지 겨우 4년 만인 1661년이었다.


p136

...런던과 스코틀랜드의 부유한 상인 40명이 연합하여 단 12일 만에 전쟁 자금 120만 파운드가 모였고 이를 윌리엄 왕에게 빌려 주었다. 상인들은 그 대가로 영국은행을 설립하고 은행권의 독점 발행을 인가 받았다. 채권자들은 정부로부터 받은 채권은 은행에 넘기고, 그 대신 은행의 주식을 받아(현대 금융 용어로 스왑(swap)이다) 영국은행의 주주가 되었다. 정부 채권 120만 파운드는 연리 8퍼센트의 이자를 지급하게 되어 있는데, 이를 근거로 지폐(은행권)를 발행해 일반인에게 대출하는 데 사용했다. 이는 유럽 최초의 국정 지폐라 할 수 있다...

... 영국은행은 정부에 돈을 대출해 주고 받은 채권을 바탕으로 일반인에게 은행권을 발행하는 지폐 발행 모형을 구축했다. 이 모형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ver, 1864~1920)에 의해 왕(국가)과 자본가 사이의 '기념비적 동맹'으로 묘사되며, 자본주의의 중요한 시발점으로 여겨진다(Weber, 1978; Gudeman, 2001).


p151

...중세 국어에서 빚은 '빋'으로 쓰였는데, 지금과 같은 부채의 의미가 아니라 가치의 의미로 쓰였다(홍윤표, 2004). ... 가치(價値)에서 가(價)는 값, 치(値)는 빋에 해당한다. 값은 물건을 팔 때의 가격, 즉 판매가에 가깝고, 빋은 소비자의 관점에서 물건 가치라는 뜻에 가깝다고 한다... 빚을 진다는 것은 지급해야 하는 가치를 짊어지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높은 가격을 나타내는 '비싸다'라는 단어는 빋과 싸다가 합쳐진 것으로, 가치(빋)가 제값을 한다(싸다)는 의미이다.


p164

...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Politika>에서... 돈을 버는 방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정 경영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 거래다...

... 가정 경영이란 당시 용어로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로... 경제학의 어원이다... 집안일이나 가업을 경영한다는 뜻이었는데...

... 화폐는 새끼를 낳지 않는다는 화폐 불임설(貨幣不姙說, theory of the sterility of money)로 불리는데, 스콜라 철학과 이슬람 철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p171

... 불교는 엄격한 신분 제도와 다신(多神)을 바탕으로 하는 브라만교에 반하여 평등한 사상과 무신(無神)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종교였다... 굽타 왕국 이전인 마우리아 왕국과 쿠샨 왕국(30~325)에서는 불교가 융성했다. 불교의 간다라 양식은 쿠샨 왕국에서 가장 번성했다. 이때에는 또한 상업도 같이 발달했다. 쿠샨 왕국의 문명은 헬레니즘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과 더불어 쿠샨 왕국의 상인 계층이 위축되면서 불교의 위축도 가속화되어 농촌 중심의 힌두교가 불교를 흡수했다.


p215

... 보험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은 보험은 양날의 칼과 같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험은 위험을 대비한 담보 역할을 하지만, 그 상대방은 그 위험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일방에게는 보험인 것이 상대방에는 도박이 될 수 있다. 보험과 도박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에서는 정부의 공적 보험이 선물 교환과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새해 초가 되면 각 지역의 수장이 정부에 공물을 바치고 그 금액을 장부에 기록했다. 다음에 그 기증자에게 큰돈이 필요하면 정부가 장부에 기록된 금액을 근거로 기증 금액 이상의 돈을 하사했다고 한다. 이러한 정부의 기능은 마치 보험료를 미리 내고 나중에 자금이 필요할 때 보험금을 받아 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 원시 부족들 사이의 교환 관습을 근거로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0)는 선물은 공짜가 아니라 상호성에 의해 교환되는 것으로 보았다. 선물 교환의 과정은 재화의 재분배 과정이면서 유대감을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안전망을 제공하는 보험의 기능도 같이 하는 것이다. 부족 사이에 받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려는 모습은 자신의 권위와 위세를 보여 주는 것인 동시에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메소포타미아 지역... 육로 무역 계약의 보험 기능은 후대로 오면서 페니키아나 그리스의 해상 무역으로도 확대된다. 즉 모험대차(冒險貸借, bottomry)로 알려진 방법인데, 해상 무역에 필요한 배를 담보로 돈을 빌려 주고 무역을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면 이자를 포함하여 돈을 받되, 풍랑으로 배가 침몰하면 채무를 면제해 주는 것이다. 이 모험대차는 해상보험의 기원으로 알려졌다.


p216

로마 시대에는 이러한 해상보험의 기능과 더불어 손해보험이나 생명보험의 기능도 활성화되었다(Trenerry, 1926)

로마의 생명보험은 콜레기움 푸네라티치움(collegium funeraticium)이나 콜레기움 테누이오룸(collegium tenuiorum) 등으로 알려진 일종의 장묘(葬墓) 단체에서 발견된다. 이 단체는 그리스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원래는 종교적인 단체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생명보험의 원형으로 여길 만하다.

한편, 3세기경 로마에서 사용된 생명표(life table)가 법률가 울피아누스(Ulpianus, 170~228)의 재판 기록에 나온다. 생명표란 사람이 나이에 따라 얼마나 더 살고 죽는지에 대해 기록한 표를 말한다... 울피아누스의 생명표는 단순하긴 하지만, 당시에 생명보험이나 연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p217

로마 시대에는 아누아(annua)라고 불리는 금융 계약이 있었는데, 이는 목돈을 내고 정해진 기간 동안(죽을 때까지도 포함) 매년 돈을 받는 계약이었다. 이것은 현대의 연금과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p218

... 1666년 9월 2일에서 5일까지 4일 동안 런던에서는 큰불이 났는데, 이를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라고 부른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1680년 니컬러스 바번(Nicholas Barbon)이 화재 사무실(Fire Office)을 열고 화재보험을 팔았던 것이 근대적 화재보험의 효시이다.

한편, 해상보험은 1688년경에 로이즈 커피하우스(Lloyd's Coffee House)에서 시작했다.


p221

영국인 존 그랜트(John Graunt)는 정치나 수학과는 거리가 먼 상인이었는데, 1662년에 <사망자료에 근거한 자연적, 정치적인 관찰Natural and Political Observations made upon the Bills of Mortality>이라는 책을 발간했다...와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


p222

...얀 더빗(Jan de Witt)... 에더먼드 핼리(Edmund Halley)...

보험 수리 방식으로 최초로 보험료를 계산한 생명보험은 1743년의 스코틀랜드 과부 펀드(Scottish Widows Fund)라고 한다.... 로버트 월리스(Robert Wallace)와 알렉산더 웹스터(Alexander Webster)가 만들었다(Ferguson, 2009).... 콜린 매클로린(Colin Maclaurin)...


p245

주식(株式)의 주(株)는 나무의 그루터기, 즉 밑기둥을 뜻한다. 주식이란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로, 에도 막부 시대(1603~1867)에 동업자들의 상업 조직인 가부나카마(株中間)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이경엽, 2012)... 가부는 회원의 자격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했다. 이 단체는 중세 유럽의 길드(guild)와 비슷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서양의 주식회사가 일본에 소개되면서 가부시키(株式)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는 가부의 방식이란 의미다.

중국에서는 주식의 뜻으로 구펀(股份)을 쓰고...


p255

소키에타스 푸블리카노룸(Societas publicanorum)은 현대 주식회사의 주요 특징인 법인격, 소유와 경영의 분리,지분의 양도와 유한책임 등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p258

콤파니아(compagnia)나 콜레간차(colleganza)는 현대 기업과 다른 점도 가지고 있지만 비슷한 면도 있다...

... 법인격이 명시적으로 인정된 것은... 1250년 교회법에서 교황 인노첸시오 4세(Innocentius IV)에 의해 인정되었다고 전해진다... 법인은 가공의 사람을 뜻하는 페르소나 빅타(persona ficta)라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법인격을 도입하여 기업을 불멸의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기초를 닦았다.


p261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조선은 하멜(Hendrik Hamel)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연관된다. 당시 동인도회사는 일본과 무역을 하고 있어서 나가사키에 사무소가 있었다. 하멜은 동인도회사에 소속된 선원, 즉 회사원(회계 담당자)이었는데, 1653년 일본으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30여 명의 선원과 함께 제주도에 상륙했다. 그 뒤 14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다 1666년 일본으로 탈출했다. 그가 쓴 <하멜 표류기>... 이 책은 하멜이 14년 동안 지급받지 못했던 임금을 받기 위해 기록한 것이라 한다.


p280

... 1460년 세워진 안트베르펜 증권 거래소에서는 일반 상품과 어음이나 채권 등의 금융 거래가 같이 이뤄졌고... 1585년 안트베르펜은 스페인에 점령당하면서... 이에 북쪽의 암스테르담이 새로운 경제,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p281

... 160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주식을 현금으로 상환해 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 대신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증권거래소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의 시작이다.


p298

... 자동차의 보급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기차나 전철을 타고 다녔고, 자동차가 다니기 좋은 길을 많지 않았다. 자동차 회사와 석유 회사는 미국 45개 도시의 전철 시스템을 매입한 후 해체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기름으로 가는 자동차를 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또한 정부에 끊임없이 로비를 하여,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와 고속도로를 건설하도록 했다... 자동차를 타고 느끼는 자유는 자동차 회사의 탐욕이 만들어 낸 부산물이다.


p313

사실 <국부론>의 주요 내용과 표현은 중세 상업을 선도했던 이슬람 제국의 저서들에서 이미 발견되는 내용이다(Graeber, 2011).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손'은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가 "가격은 신의 의지에 달렸다"라고 한 발언을 연상시킨다...

더욱이 <국부론>의 핵심 내용인 교환과 분업 역시 이슬람학자인 가잘리나 알 투시(Nasir al-Din al-Tusi, 1201~1274)의 저서에 이미 기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의 책에는 "개 두 마리가 뼈를 교환하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라는 표현으로 교환이 인간의 고유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p316

베버의 기념비적 동맹은 폴라니(Karl Polanyi)의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1944)을 연상시킨다.


p318

폴라니에 따르면 자본주의 이전 경제에서는 상호성과 재분배가 중요한 자원 배분의 방법이었다. 시장도 물론 존재했으나, 이방인이나 친분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이용되었다.


p322

제프리 잉햄(Geoffrey Ingham)은 자본 시장의 투기성은 '돈-돈´(M-M´)'의 순환 고리를 따른다고 했다. 이 순환 고리에서는 언제든지 금융과 실물 경제가 괴리될 수 있고, 그 괴리는 거품과 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p356

이타심에서 시작하여 남을 도와주면 결국은 자신도 도움을 받는다는 보험의 원리는 이기심에서 시작하여 나의 이익을 챙기면 결국 남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경제학의 원리로 변질되었다.




감상:

책 제목으로는 책 내용을 유추하기 힘들 정도로 괴리가 심하다. 저자의 윤리적 주장은 오늘날 제기되는 ESG 경영 트렌드를 반영한 듯하지만, 매우 모호하게 책의 말미에 조금 나타나고 있다.

역사적 화폐와 경제 제도 등에 대한 내용을 상당히 충실하게 담고 있어, <돈과 경제사상>에 대한 참고 자료로는 훌륭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