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돈과 인간의 역사

Klaus Mueller

by 조영필 Zho YP

돈과 인간의 역사 Wo das Geld die Welt regiert



p42

동아시아에서 이미 기원전 1300년경에 Kauri 달팽이 껍질이 상품의 지불수단(유통수단)이나 채무 변제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기원전 3000~2000년 사이에 중국의 상형문자로 기록된 문서에 의하면 Kauri 달팽이는 돈과 부, 세금 따위와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조개껍질 화폐는 적어도 3000년 동안 계속 사용되었다.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는 청동, 철, 돌, 수정, 점토 등으로 카우리 모조품이 만들어졌고, 화폐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3세기 후반까지 중국과 인도북부에서는 카우리 형태의 황동판이 통용되었다.

카메룬에서는 20세기 초까지 니켈 화폐, 은화와 더불어 카우리 조개껍질이 유통 및 지불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멜라네시아의 달팽이껍질 화폐 ‘Diwarra’는 실로 엮은 것인데 길이에 따라 가치가 달라졌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조개껍질 화폐로 지불했다. 조개껍질 띠인 ‘Wampum’은 장신구이자 문자였고 동시에 화폐였다…… 매사추세츠에서는 1641년에 조개껍질 6개를 1페니와 교환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p45

아랍인 여행자 아브라함 이븐 야쿠브는 973년에 보헤미아 지방에서 화폐기능만 할 뿐, 옷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옷감 화폐를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즉 ‘상징화폐’가 나타난 것이다.


p46

유사한 상징화폐가 자바 섬에서도 통용되었다. 네덜란드인은 그것을 주화 헝겊조각 혹은 화폐 헝겊조각이라는 뜻을 가진 ‘Muntenlapjes’라고 불렀다. 도장이 찍힌 화폐 헝겊조각은 앙고라(지금의 앙카라)와 사모아에서도 발견되었다.


p52

기원전 7세기경 리디아인들은 금 80퍼센트와 은 20퍼센트를 합성하고 그 합성물질을 ‘electrum’이라 불렀으며 그것으로 최초의 주화를 주조했다…… 물론 중국에서는 그보다 일찍이 적어도 기원전 2300년경에, 인도에서는 늦어도 기원전 9세기 초에 주조화폐가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p57

가장 오래된 리디아의 주화는 매우 단순했다. 그것은 아무런 모양이 없는 덩어리로 기원전 640년에서 630년까지 아르디스왕 시대에 처음으로 유통되었다.


p63

로마에서는 Servius Tullius(기원전 578~534 재위)왕이 최초로 銅으로 주화 아스를 제조하였다. 아스는 로마 공화정시대에 가장 중요한 동화였다. 기원전 3세기 말에 은으로 만든 데나르는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주화였다. 데나르는 처음에는 10아스의 가치를 지녔다. Jullius Caesar(기원전 100~44)시대에 금화 ‘Aureus’가 대량 발행되었으며 아우구스투스는 그것을 로마 금화의 기본으로 삼았다. Constantinus 1세(306~337 재위)는….. 309년에 ‘Solidus(순수한의 뜻)’를 주조했는데…… 비잔틴 제국말(1453년)까지 솔리두스의 가치는 유지되었다…… 비잔틴 제국에서는 은화가 거의 주조되지 않았으며, 그대신 많은 동화가 발행되었다.


p67

속이 빈 페니히(Brakteaten, 라틴어의 bractea(얇은 양철)에서 유래)는 매우 얇고 한쪽 면만 각인된 동전으로 독일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다양한 무게와 형태, 양식과 문양을 가진 지방의 페니히들이 주로 통용되기 시작했지만 그 범위는 주조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1150~1250년 사이의 독일에는 화폐 주조지가 500군데가 넘었다.

‘영원한’ 페니히를 위한 싸움은 중세후기 독일 전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치가 떨어져도 안되고 매 시기마다 ‘새롭게’ 주조되어서도 안되었다. 페니히가 처음으로 불변의 가치를 갖게 된 것은 1295년이었다.


p78

중부 및 서부 유럽에서 견본시와 시장들이 발흥하자 교환 거래가 크게 촉진되었다. 주화는 너무 무거웠으며 시골길은 위험했다.

어음은 상품 구매자가 정해진 날짜에 일정한 장소에서 진짜 화폐로 지불하겠다는 약속일 뿐이다. 어음으로 지불함으로써 상품구매자는 지불대금을 화폐로 그냥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지불대금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도 있다. 또 상품의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하고 신용대부가 된 상품 판매자는 이자를 받음으로써 추가이익을 얻는다. 그는 상품을 원래 가격 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여 이자 수입을 ‘은폐’함으로써 고리대금금지 법규를 교묘히 피해갈 수도 있었다.


p83

은행에 돈을 예탁한 상인들과 생산자들은 서로 관련을 갖고 사업을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불할 때에는 간단한 서명으로 충분했다…… 예금은 그대로 은행금고 속에 보관되어 있다. 이를 Giro 거래라고 한다.


p88

오늘날에도 중앙은행권은 소비재 구매에 이용된다. 그러나 기업간 거래 즉 생산수단의 구매와 판매시 중앙은행권은 거의 그 의미를 잃었다. 그 대신 장부화폐 즉 정산쳬계라는 것이 등장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산업 국가에서는 지불의 90퍼센트가 은행계좌의 장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은행권은 유통 과정에서 하나의 ‘보완물’로만 남았다.


p90

가죽 화폐는 서기 200년경에 아시아에서 화폐로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서기 807년경에 중국에서는 이미 飛錢 이라고 불린 국정 지폐가 사용되고 있었다. 비전은 일종의 송금수표였는데 수도에서 대금이 결제되었다.


p92

구리가 많은 스웨덴에서는 크리스티네 여왕 치세때(1632~1654) 처음으로 커다란 동판이 동전으로 만들어졌으며 1643년과 1776년 사이에 다량 생산되었다.은화의 가치와 맞먹으려면 구리 동전의 무게가 엄청나야 했다.

따라서 스웨덴이 지폐로 화폐를 대체하는 방법을 발견한 최초의 나라에 속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미 1657년에 이른바 ‘준은행권’이 등장했는데 지폐와 동일한 개념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경영실패로…… 1650년 스페인의 국고는 지출의 92.5퍼센트를 무거운 구리화폐로 지불했다.


p291

고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특히 이자 취득을 반대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화폐란 다만 교환을 손쉽게 해주는 수단인데 이자라는 것은 화폐 그 자체를 불어나게 만든다.… 그는 화폐는 화폐를 산출해낼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며 그래서 이자에 반대했다.

교황들도 이자 취득을 반대하였다…… 1139년의 라테란 종교 회의에서는 이자 금지를 선포했다…… 세속 군주들도 교회와 보조를 맞추었다. 카를 대제는 785년 아이헨 제국의회에서 이자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으며 로타르 황제(Lothar I, 795~855)는 825년에 이자 수취인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마틴 루터는 [고리대금에 반대하는 목사들에게의 설교(1540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고…… 고리대금을 도둑질이라고 하였다.



감상:

초반부는 돈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후반부는 돈과 관련된 가십성 전개이다. 돈의 본질에 대한 천착이 부족한 책이다.

(2012.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