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돈 그 영혼과 진실

Bernard A. Lietaer

by 조영필 Zho YP

돈 그 영혼과 진실 - 돈의 본질과 역사를 찾아서

Emotionale Bedeutung und Wirkungsweise eines Tabus



p64

중국에서도 조가비는 기원전 2100년 이전에 화폐로 중요하게 구실했다. 돈을 의미하는 한자가 어떻게 조개에서 유래되었는지는 한자 貝의 모양의 변천을 보면 알 수 있다.


p65

중국의 한자만이 조가비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영어 단어인 desire, treasure, valueless, lending 등도 조가비에서 유래한 단어들이다.


p66

기원전 1766-1122년 중국에는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면서 조가비를 본뜬 청동동전이 표준화폐로 자리잡는다.


p67

왜 중국인은 제조하기도 쉽고 실로 꿰어묶기도 쉬운 동그란 구멍이 아니라 네모난 구멍을 엽전에 뚫어 놓았을까?

이는 위대한 어머니의 수태능력이 돈의 가운데 구멍과 닿아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p69

현재 확인된 동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3200년 경 수메르인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Shekel인데, 이것은 앞서 풍요와 다산의 여신 이난나를 설명하면서 소개한 동전이다.


p130

기원전 13세기부터 이집트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도편 화폐. 토기 조각에는 고유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 문자를 근거로 하여 도편 화폐 수령자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정해진 양의 포도주를 운반할 수 있었다.

포도주, 옥수수 등 이송할 수 있는 곡물 또는 음식을 받을 수 있는 권리증인 도편은 적어도 16세기 동안 이집트에서 화폐로 활용되었지만, 그 가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하락했다. 음식물을 보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한 성 싶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도편 화폐를 보유하기 보다는 교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p179

이자는 ‘돈의 형태’로 저축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한 체계적인 인센티브이다. 금융 시스템은 이런 식의 저축을 받아 자본을 조성한 뒤 다른 목적으로 쓰는데 중개자 구실을 한다.

상식은 때로 진리와 숙명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반대 현상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돈을 맡기면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금융 시스템이 존재할 수 있다. 돈 자체의 가치는 유지되지만, 저축하면 오히려 비용을 물어야 하는 시스템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때 돈은 교환의 수단으로만 쓰이지, 가치저장수단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p188

한 농부가 수확을 한 결과 밀 10가마니의 여분을 갖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이를 신전에 있는 지역 보관창고에 맡기고, 관리로부터 ‘밀 10가마니 00년 00월 00일에 위탁’이라고 찍힌 서류를 받는다.

그 서류는 ‘오스트라카(Ostraka)’라고 불리는 토기 조각(도편)이었다. 이 도편은 이집트에서 이미 수천 점이 발굴된 흔한 유물이다. 그는 이것을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데 활용한다.

중요한 사실은 그 도편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1년 뒤나 2년 후 곡물저장소에 가서 인출을 요구하면, 애초 그가 저장한 밀 10가마니가 아니라 9가마니를 내준다는 점이다.


p220

유치료Demurrage 부과 화폐 시스템 – 보이지 않는 성장 엔진

여러가지 사료에 중세 중기의 놀라운 경제적 번영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메커니즘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유치료가 부과되는 음의 화폐는 지역사회에서 유통되어 활용되었는데, 이는 화폐 형태로 부를 축적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시스템이었다. 유치료는 화폐 재발행 과정을 통해 징수되었다. 다시 말해 화폐를 5-6년 주기로 새로 발행하면서 구화폐와 신화폐의 비율을 6:5 등으로 정하여 구화폐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어들였다는 얘기이다. 때문에 재산축적의 욕망에 따라 구화폐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금을 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제도는 결국 음의 화폐를 축적하기 보다 빨리 써서 원활한 유통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음의 화폐는 교환수단이었지, 가치저장수단은 아니었다.


p221

그 결과 화폐는 사회의 전 계층에서 물처럼 자유롭게 유통되었다. 최하 빈곤층도 상당히 높은 화폐의 접근도를 누릴 수 있었고, 경제적 혜택을 누려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유치료 징수 화폐 시스템에 의지하며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설비투자에 적극적이었다. 13세기 이후의 금융 시스템에서 이처럼 설비투자를 촉진했던 시기는 없었다.


p224

페르낭 브로델은 ‘1050~1290년을 서유럽의 1차 현대화 과정’ 이라고 규정했고, 사포리는 ‘유럽의 진정한 르네상스’,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기 보아는 ‘유럽의 경제적 이륙이 이루어졌던 시기’라고 평했다.


p225

일부 역사가들은 12세기 민중의 생활수준이 오늘날까지 포함하여 전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높았다고 지적한다. 한편 11~13세기 서유럽의 놀라운 경제적 풍요 덕분에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인구 증가를 경험하기도 했다.


p226

이 발전은 13세기에 절정을 이룬 뒤 갑작스런 침체와 경제붕괴로 이어졌다. 이후 수세기 동안 암흑기가 펼쳐진다.


p250

중세연구가 로베르 델로의 연구에 의하면 1300년 당시 서유럽에는 35만 개의 교회가 있었고, 이 가운데 1천여 곳이 주교좌 성당이었으며 수천 개의 수녀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해 유럽의 전체 인구는 7천만 명 수준이었다. 교회별 인구를 따져보면 평균 200명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성당별 인구수는 한 교회당 100명 꼴로 더욱 낮았다.


p278

이집트 민중들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었던 오스트리카 영수증, 이 도편 화폐는 오랜 역사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영수증에는 ‘람세스 2세 통치연간, 샤뮤의 세번째 달, 두번째 날에 3Hin(1.5Liter에 해당)의 옥수수를 서쪽 지방을 책임지는 관리가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오스트리카의 가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관비용이 반영되어 서서히 하락했다. 보관료는 통화에 대해 사실상 유치료로 구실했으며, 이 화폐는 음의 화폐 성격대로 가치저장수단이 아니라 교환의 매개로 활용되었다.




감상:

무슨 한단고기 같은 책이다. 음의 화폐론이라는 특이한 관점이 있다. 산만한 책이다.

(2012.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