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폐시스템의 세계사 '비대칭성'을 읽는다

구로다 아키노부

by 조영필 Zho YP

화폐시스템의 세계사 '비대칭성'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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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예금의 계좌이체를 통한 구매와 지불이 이루어지면서 예금화폐가 중요성을 갖기 이전의 화폐는 단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수교화폐(手交 hand to hand) 일 뿐이었다.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수교화폐는 화폐론에서는 거의 문제되지 않았으나, 이 책에서는 중요하 의미를 갖고 있다. 물리적으로 이동하며 특히 확산된다는 점과 통화간의 다원적 평가 즉 비대칭성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실체가 동반된 수교화폐는 예금화폐가 지니고 있지 않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화폐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경우(지폐처럼 거의 무시해도 되는 경우도 있지만) 소재가 은이건 동이건 간에 소재가치 변동에서 독립적으로 중립적인 매개기능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화폐순환에 관한 것이다. 즉, 화폐는 환류해야 하는 것인데, 실체를 가지고 있는 수교화폐는 흩어졌던 것이 모두 회수된다고 장담할 수 없으므로 환류가 보장되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p7

곡물로 대표되는 상품화폐의 경우 자체 소비 때문에 유통에서 쉽게 퇴출되지만 자체의 소비가 없는 수교화폐의 경우는 반영구적으로 유통되는 것이다. 게다가 반드시 환류되는 것도 아니며 또 통화마다 각각 독자적으로 다양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수교화폐의 유통과 체류의 형태 차이에 바로 통화들간의 평가를 다원화시키는 요인이 있다. 특히, 환류하기 쉽다는 점과 액면의 대소차이가 절대적으로 관계하고 있다......액면가가 아주 낮은 통화일수록 환류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p11

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중세유럽은 소액통화가 매우 부족한 세계였다.


p60

12세기 발트해 규겐섬 주민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에는 아마포(亞麻布)를 지불하였다.

피레네 산맥의 카탈로니아(Catalonia) 지역에서는 적어도 1760년 무렵까지 시골 사람들이 곡물을 넣은 포대를 가지고 물건을 사러 나갔다고 한다(Vilar, 1991, p.25)

농촌의 들판에 사는 하층서민들은... 모두 마른 장작과 건초를 한 짐 등에 지고 성내 시장으로 들어오는데 수십리를 왕래하여 50-60문을 얻고서는 야채, 소금, 술 등을 사서 서둘러 갔다. 평소에는 1문짜리 동전은 구경조차 힘들다(張万平, <악전선생문집> 권25, 論免役錢劄子)

13세기 강남 한 진(鎭, 시장촌)에서 농민들이 쌀을 升 단위로 점포에 가지고 와서 소금과 기름을 구입해갔다고 하는 기사가 남겨져 있다(宮澤, 1998, p.58).


p61

1429년에 일본을 방문한 조선 통신사 박서생(朴瑞生)은 일본에 대한 보고 가운데 <錢이 매우 많이 사용되고 있어 布나 쌀로 지불하는 것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만일 천 리길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도 다만 동전꾸러미만 가지고 가면 되지, 곡물을 휴대하지 않아도 좋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권46, 세종11년 12월 을해). 당시 조선은 세종의 치세로 본격적인 동전 주조와 유통을 도모했지만, 동전 유통 정책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시장에서는 여전히 쌀과 布가 매개재 기능을 하고 있었다. 13세기 이후 일본에서는 장원의 貢租에 대해 대전납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조선인의 눈으로 볼 때, 14세기 일본은 확실히 동전사용 빈도가 높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16세기까지 조선,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지역유동성을 담당한 가장 중요한 것은 곡물과 布 등과 같은 상품화폐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동아시아의 화폐가 금, 은으로 된 금속화폐가 아닌 고작 동전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p62

... 갈수례(葛守禮)는 당시 통용이 확대되어가고 있던 은으로 동전의 위치가 대체될 수 없다고 언급하였다. 은은 척도가 지나치게 높아 <식사조차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화폐라고 하면 동전을 말하지만, 지중해에서 서구에 걸쳐있는 세계에서는 통화라면 금은동이므로 두 세계의 대조성은 이미 주목받았다. 그렇기는 해도 로마제국에서 동화(銅貨)도 도시민의 일상거래와 주둔군인에게 대량으로 발행되었고, 이슬람 왕조 중에서도 역시 동화를 발행한 사례가 있다.


p63

기본적으로 통화로는 은화를 사용하였음...

...<은의 사용은 서민들을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라는 갈(葛)의 말은 중세유럽에도 상당부분 적용되는 말이었다. 일상적 매매에서의 수요와 공급의 변화를, 통화를 사용한 가격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지역유통성은 수교화폐 이외의 것이 담당하여야 하였다.

도시와 상공업자들도 위와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세 서구의 농민교역이 기본적으로 상품화폐를 따랐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p64

...16-7세기 프랑스에서도 신대륙으로부터 은이 유입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농촌에서 화폐의 사용은 매우 드물었다고 한다. 거래는 화폐를 단위로 이루어졌으나 가치척도를 위해 사용될 뿐이었고, 실제 신용거래의 상당액이 일반적으로 현물로 결제되는 상황이었다. 상인 자신도 원래 거액의 현금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고, 장부상의 결제나 소금과 같은 상품 결제로 끝냈다고 한다(Meuvret, 1971).


p65

영주와 상인들 간의 은화에 의한 거래가 농촌에서 상품화폐 내지 은으로 표시된 현물거래와 괴리되는 경향이 있었던 서구와 대조적으로, 중국은 금은화를 가지지 않고 전화(錢貨)만으로 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농민들은 통화를 보다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역 유동성을 대표하는 현지통화와 지역간의 태환성을 담당한 지역간 결제 통화와의 구분한 바에 따르면 지중해 서구 유럽세계는 지역간 결제통화로, 그리고 중국은 현지통화로 치우치기 쉬운 통화가 존재하였던 것이다.


p66

왕조가 대량으로 관전을 주조하였던 11세기·18세기(黑田, 1994-a, 2장) 두 시기가 모두 다른 시기와 비교해도 사주전의 영향이 적었던 시기였다는 점에 있다. 즉,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달리 양화(良貨)인 관전이 악화(惡貨)인 사주전을 구축하여간 것이다. 동화의 사주는 금은화의 사주와 비교하였을 때, 경비가 들지만 이익은 없다. 동화가 부족한 상황이라면 그래도 이익을 바라볼 수 있지만 대량으로 양화가 공급되면 아예 설 자리조차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 화폐 기능을 가진 지역내 유동성과 지역간 태환성을 모순이 지역내 유동성을 담당한 매개재 뿐 아니라, 자산으로 보유되어야 하는 재화와 지역 밖과의 교류용 재화를 각각 자기 조직화 한다. 전화(錢貨)밖에 없는 경우에도 특정 연호를 가진 전화를 자산용으로, 다른 것을 거래용으로 하는 차별화가 각 지역 경제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p67

금은화와 같은 지역간 결제 통화를 못가진 동아시아와 지역유동성을 형성하는 동화(銅貨)를 도시 거주민 용으로 공급하지 못한 지중해, 서구세계는 12세기까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동과 서에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13세기는 그러한 구분을 뿌리에서부터 흔드는 격동의 시대가 되었다.


p68

몽골제국의 영향으로 유럽, 아시아 대륙의 동서가 연결되었던 것이다. 동서에 걸친 제국의 출현은 다양한 거래비용을 경감시켰고, 원거리 교역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잉글랜드에서 은화주조는 14세기 후반에 급감하였다. 잉글랜드와 플랑드르에서는 은이 사치품 수입과 로마교회로 보내지는 송금으로 이탈리아쪽으로 흘러갔다. 또 한자동맹 도시가 모피교역으로 얻은 귀금속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이탈리아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탈리아도 귀금속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Levant 무역을 통해 귀금속이 다시 중동으로 유출되었던 것이다......실제의 움직임에서 보자면 후추로 대표되는 사치품이 인도양에서 이집트를 거쳐 이탈리아에서 서구로 판매됨에 따라 그 반대의 방향에서 금은화가 유출되어 버린 것이다.


p71

은의 사용으로 동서가 묶이는 13세기는 그 흔적이 일단 없어져 버렸으나 한편으로는 이후 새로운 변동의 기점이 되기도 하였다.


p84

벵갈과 서남쪽인 오리사에서...... 지방시장에서 원료를 구입하기 전에 먼저 금화/은화를 폐화로 바꿔야만 하였다. 동화보다 훨씬 낮은 액면가에 달하는 패화는 무굴통치 말기까지 벵갈과 오리사, 북부 아셈지역에서 소액으로 거래되었던 일반 통화 중의 하나로 19세기 전반인 1920년대까지 세금을 내는 지역도 있었다.


p86

패화는 인도양의 섬인 몰디브에서 채취된 특수한 조개였다....... 14세기 여행가였던 이븐 바투타가......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몰디브에서 1루피에 9,000의 비율로 사들인 패화를 1루피 당 2,500내지 3,000의 시세로...... 팔아넘겨 차익을 챙겼다.


p94

벵갈은 인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카스트 등 사회적 규약이 느슨하였고, 소농들의 시장참여가 다른 지역보다 활발하였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18세기에는 그들이 거래에 이용하던 정기시 등의 농촌시장이 증가되었다...... 강남을 시작으로 한 중국도 마찬가지로 18세기에 농촌시장이 증가하고 있다. 양쪽 다 패화와 동전이라는 영세액면화폐가 필요하게 되는 조건은 이미 충분히 갖춰진 셈이었다.


p107

중국 동전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적으로는 획일성과 시간적으로는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한 점에 있었다. 물론 같은 왕조에서 동전을 바꾸는 일이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20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역대왕조가 계속 주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동전 한 개의 중량에 1전(4g정도)이 표준이었다는 것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고, 순도도 대체로 동 8할 이상이라는 획일성을 계속 유지하여 왔다. 이는 매우 놀랄 만한 것이다. 중국 왕조는 동이 부족해도 소재가치가 액면을 훨씬 상화하는 조건에서 주조하였던 것이다. 동전의 중량과 품위를 왕조라고 해도 쉽게 바꾸어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p109

중국왕조는 사실상 동전만을 유일한 경화로 발행했다(철전도 있기는 하였지만 사용되는 시기와 지역적 제한이 있었다). 이렇게 유일한 공인통화가 액면이 깎여 평가되는 사태를 피해야 했기 때문에, 손쉽다고 하여 폄질동전을 발행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유일한 경화인 동전이 부족해지는 전황(錢荒) 현상이 종종 일어났다.


p130

유럽의 다른 관찰자의 기사를 통해서도 카이시(caixa: cash의 원어) 혹은 피시즈라 불리는 전화가 16세기 동남아시아에 유통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p217

동서를 막론하고 곡물과 소금 그리고 의류 등이 정기시 등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물건을 가진 자가 자신이 가진 물건과 다른 물건을 원한다는 조건 자체를 설정하는 것은 결코 현실적으로 교역의 일반적인 상황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누구나 비슷한 물건을 가지고 있고 또 비슷한 물건을 원한다고 보는 쪽이 역사적으로 보아도 현실적이다.


p219

'재화의 교환'론은 쌀을 생산하는 사람이 布로 교환하는 것처럼 생산과 교역이 확실히 구분되는 사회상과 잘 어울린다...... 이에 반해 '시간의 교환'론은 같은 사람이 쌀을 어떤 시기는 가지고 있다가 어떤 시기에 매각하고자 하기 때문에 자급과 공급의 경계가가 가변적이다. '재화의 교환'론을 견지하면서 현실적으로 역사에서 화폐의 발생을 찾아보고자 해도 같은 물건을 생산하는 사회 내에서 발생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다른 특산품을 생산하는 혹은 사이의 화폐 발생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시간의 교환'론 쪽에서는 오히려 같은 물건을 소유한 사람들끼리의 교환과 화폐의 생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욱 그럴 듯하다. 또 전통사회 내부에서 교역을 고려해도 후자 쪽이 보다 많은 편이다....... 매년 자신이 내놓은 쌀 대신에 얻는 무언가는 한정된 특정의 인간관계의 사람들에게는 신용 등을 거치지 않아도 내년에 또 누군가 쌀을 내놓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에 인수받을 확률이 높다는 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p220

소비하는 때를 보류한 사람들의 공간적인 집단은 현지통화가 받아들여지도록 지탱한 기본 구조가 되었다. 계속 전해지는 자체에 대한 평가와 공사의 강제력은 현지통화의 유통을 보조하는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감상:

지역내 유동성과 지역간 결제 통화의 차이는 화폐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지역유동성에 있어서, 시간의 교환 또는 화폐의 계절적 수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영세액면통화의 확보를 위해 신용이 창출되는 계기도 음미할 만하다. 흥미로운 책이지만, 서술은 역시 번삽하다. 저자 자신도 아직 완벽하게 이론체계를 잡지 못한 듯하다. 중국과 인도의 실증적 사료의 채증이 매우 훌륭하다. 특히 화폐의 지역내 유동성과 지역간 결제성에 대한 개념구분은 최고의 탁견임.

(2012.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