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기업들의 전쟁], 닉 스켈론 저/이진원 역, 미래의 창, 2001년 7월
서평: 전쟁과 마케팅은 어떻게 다른가
실제에서의 전쟁이 두 경쟁집단간의 일차원적 실력대결이라고 할 때 마케팅에서 기업간의 경쟁은 아름다운 처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청년들의 구애와도 같이 소비자들의 마음이라는 제 3의 요소를 얻어야 하는 부가적인 요소가 있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전쟁은 바둑이나 체스와도 같이 외부요소를 배제한 채 이루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실력대결로서 미인대회나 선거전과도 같은 현대의 비즈니스 마케팅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전쟁에서는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면 그만이지만, 비즈니스 마케팅 현장에서는 충분히 상대방을 능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혼하는 다수의 구혼자를 고르는 아라비아 상인과도 같은 여자들의 깊은 눈동자 속에서 헤메이다 자신보다 훨씬 열등하게 보이는, 경쟁자로 생각지도 않았던 상대에게 패배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러한 경쟁이 당사자간의 단순한 대결이 아니라 제3의 상대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것처럼 전혀 성격이 다른 경쟁이라는 특성에 기인한다. 이것은 전쟁과 마케팅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이기도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의 역사적 성과를 적용해보려는 사람들에 의해 그 간격은 무너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업들의 전쟁]을 읽으면서 나는 삼국지에서의 전쟁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조조의 대군이 유비를 공격할 때 유비는 군대의 기동성에 엄청난 장애를 주는 수많은 백성들을 데리고 이동하는 결단을 내리는데, 유비에게 따라다니는 현덕이라는 호칭에서 보듯이 이를 계기로 그는 어려운 시기에도 백성을 아끼는 제후로서의 면모를 여실이 드러낼 수 있었다. 이후의 사건이 그 유명한 장판교의 사건으로서 다리를 끊어버려 후퇴의 시간을 벌자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계략이 있는 듯이 보이게 조그마한 다리 위에 장비가 홀로 대군을 물리치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바로 이처럼 중국사에서의 전투는 전투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심이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작용하였는데, 이는 현대사에서도 계승되어 마오쪄뚱의 홍군은 군대의 규율이 엄격하여, 비록 게릴라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민가의 재산을 약탈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풀뿌리의 지지획득에 근거하여 마오쩌뚱의 홍군은 힘에 의한 약탈을 일삼던 장졔스의 국민당을 결국 대만으로 쫓아낼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사에서의 전쟁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그들의 병서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전면전 보다는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전략이라든가, 적의 허점을 노리는 계략, 그리고 명분을 얻기 위한 노력 등이 오늘날의 기업들의 마케팅전쟁과 흡사한 면이 적지 않다. 결국 유현덕이 추구한 민심은 오늘날 소비시장에서 고객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브랜드가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 책에서는 전투를 방법적 측면으로는 전투전과 병참전으로 구분하고 규모면에서는 전면전과 기습전으로 구분하여 2*2메트릭스로 전쟁전략을 4가지로 도해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기습전을 전투전략과 병참전략으로 구분하는 것은 크게 구분의 이득은 없이 도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전면전은 정상적인 전투행위로서 상대방이 패퇴할 때까지 싸우는 것으로 힘과 기술에 있어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다면 바로 승부가 나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전쟁에서 지휘관들은 이러한 모험을 각오하기보다는 정치적 전략적 실리를 얻는 것이 중요하므로 병참전을 주로 쓰게 된다. 이러한 병참전은 전투를 하는데 필요한 제반시설과 자원을 유지,방어하느냐, 파괴하느냐의 문제로서 여기서 실패한 군대는 더 이상 싸움을 진행할 수 없어 무력해지게 된다. 세번째로 기습전은 규모면에서 열등한 측이 국지적 또는 일시적으로 힘 대 공간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적을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게릴라전도 이 부류에 속하지만 마케팅에서는 틈새시장의 공략에 적용해 볼 수있다.
요즘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살 펴 보면 일종의 병참전의 양상임과 동시에 민심을 얻기 위한 마케팅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서 민심은 미국내의 여론, 서방의 여론, 아랍권의 여론을 고려한 것인데 이러한 민심을 얻기 위한 행보를 눈여겨 볼만하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무기체계의 우월함을 통해서 전개되고 있는데 이를 저자는 마케팅에서 흔히 얘기되는 SWAT의 중요성으로 강조하면서 우월한 SWAT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과 마케팅은 쉽게 유기적으로 용해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책을 읽어보면 전반부에서는 전쟁사에 대한 교훈을 배우는 즐거움이 있지만, 그것이 수많은 번잡한 마케팅사례의 견강부회적인 짜맞추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접어들게 되면 현대의 마케팅 실전 사례 속에서 전쟁사의 교훈을 겨우 체득하게되는데 그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적지 아니 즐겁다.
마케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보다는 기존의 마케팅 이론이나 서적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매우 계발적인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얻으려면 이미 알고 있는 여러가지 마케팅 사례들을 다시 한번 따분하게 저자의 관점에 따라 검증하는 수고를 겪어야 한다. 이 책은 광고만큼 경탄할 만하지는 않지만, 의미 심장한 마케팅의 한 지평을 열고 있다. 독서력있는 마케터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장의 시각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상깊은구절]
집중전략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고객들이 시장의 나머지 고객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특정 욕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이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광범위한 기반에서 영업하는 경쟁사들이 특정 분야 소비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야 한다.
(2001년 10월 20일, Yes24 투고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