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기
우연한 노래
어쩐 일인지 줄기를 휘감아 오르지는 않고
바닥을 슬슬 기던 넝쿨 한 가닥이
우연히 그루터기를 하나 만나
간들간들한 그 끝을
살짝 올려놓고는 살랑살랑 바람을 탄다
문득, 오래된 레코드판이 돈다
무슨 노랠까 가만히 들어보다가
근처에 우두커니 서 있는
백합 가까이 귀를 가져가서는
어떤 노랠까, 또 가만히 들어본다
비에 젖은 레코드판이 돈다
오래된 오동나무 그루터기가 돈다
마침 오던 비도 그치고
아무도 오가는 이도 없는데,
살랑살랑 바람에 바늘이 튄다, 튄다, 튄다
(이명기 시집, [허공을 밀고 가는 것들], 시작시인선 0255)
감상:
아버지가 장만하셨던 턴테이블이 떠오른다. 침이 무게와 자석을 이용하여 멋지게 착지하며 은은한 빛의 아우라를 뽐내던 독일제이었다. 나는 그 턴테이블과 LP레코드판을 평생 껴안고 살 줄 알았다. 그 마찰이 증폭되던 소리가 가끔씩 그립다.
(2021.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