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우리말의 음운쳬계로는 영어소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
1. 음절에 대한 오해
음절에 대한 오해의 대표는 ‘ㅡ’ 모음과 ‘ㅣ’ 모음이다. 이 두 모음은 영어의 음절을 하나 더 늘이는 작용을 한다. 예를 들면, '맥도날드'의 경우, 영어는 '먹다널ㄷ' 로 3음절인데, 우리는 '맥도날드'로 ‘ㅡ’모음을 첨가하여 1 음절을 추가한다. 네트워크의 경우도 '네ㅌ워ㅋ'로 2음절인데, 우리는 ‘ㅡ’모음을 추가하여 4 음절로 만든 경우이다.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버스'가 있다. '버스' 역시 '버ㅅ'로 1 음절인데, ‘ㅡ’음을 추가하여 2 음절로 만든 경우이다. 다음으로 ‘ㅣ’음의 경우는 교회를 '처치'라고 한다. 사실 교회는 '처치'가 아니고 '처rㅊ'이다. 1 음절인 셈이다. 가르치다 할 때인 'teach' 또한 우리는 '티치' 라고 발음한다. 이것은 '티치'가 아니고 '티ㅊ'이다. 이렇게 ‘ㅡ’모음과 ‘ㅣ’모음은 영어를 한국어로 귀화시킨다. 그 결과는 다음 두 가지 현상으로 돌려받는다.
첫째, 영어의 음을 들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영어가 빠르게 지나가서 즉, 우리가 약 10음절의 문장을 기대할 때, 영어는 한 6음절 정도로 발음하고, 거기에 강세(stress)가 작용하면, 한 2~3stress 단위로 발음하고 지나가 버리므로 우리는 절대 영어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고,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된다.
둘째, 이미 어말의 자음이 모음을 취해버렸기 때문에 다음에 이어지는 어두의 자음 또는 모음과의 연음을 힘들게 한다. 만약 '맥도날드' 뒤에 'in' 이 연음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먹다널ㄷ'의 경우엔 '먹다널딘' 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맥도날드'의 경우에는 '맥도날드 인' 이 되는 것이다. ‘ㅡ’모음 이 이미 삽입되어 있기 때문에 후속 모음과의 연결이 방해되어 매끄러운 연음을 얻지 못하게 된다. 만약 '맥도날드' 뒤에 'the' 가 온다면 어떻게 되는가? '먹다널ㄷ'의 경우엔 어말의 'd' 음과 후속 어두의 'th'가 충돌하여, 어말의 'd' 음이 생략된다. 결국 '먹다널the' 처럼 되어 4 음절, 1 강세로 자연스럽게 발음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습관적으로 ‘ㅡ’와 ‘ㅣ’를 붙이게 되면 바로 그 우리말의 습관 때문에 영어의 연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된다.
영어에는 또한 복자음이 있다. 예들 들면, 'strike'의 경우 영어로는 'ㅅㅌ라ㅣㅋ'의 한 음절로 발음된다. 그러나 한국어로는 '스트라이크'의 5 음절이 되는 식이다. 또한 받침의 경우에서도 'jeep'의 경우 '지ㅍ'로 인식해야 할 것을 '지프'로 인식한다. 이처럼 복자음과 받침의 정확한 인식을 방해하는 요소로 우리에게 기적의 모음인 ‘ㅡ’음이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어떤 복자음이라도 쉽게 풀어서 발음할 수 있는 신의 축복과도 같은 모음 이었으나, 영어를 만나서는 우리의 영어 인식을 방해하는 장애가 되는 우리 본연의 소리 인식틀이다.
2. R과 L
영어의 L 음에는 clear L과 dark L이 있다. clear L의 경우에는 우리의 ㄹ음과 거의 같지만, dark L의 경우에는 상당히 다르다. dark L을 모르면 영어의 말음 L 에 대해 clear L 처럼 발음하는데, 이 경우 리스닝도 힘들고 발음도 힘드니, dark L은 꼭 알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dark L은 결국 R과 clear L 의 중간 발음 정도라고 볼 수도 있으니, 이를 잘 구별하지 못하면, 또한 L과 R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인에게 없는 두 음 dark L과 R 음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영어를 정복하기 위한 지상 최대의 과제라고 할 만하다 (사실 clear L 도 한국어의 ㄹ음과 다르기는 매일반이다).
R 음을 발음할 때, 우리는 혀를 뒤로 말라고 보통 배웠다. 혀를 뒤로 말면 R 음을 발음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다른 발음과 함께 소리내기가 무척 힘들어진다. R 음은 혀를 뒤로 말지 말고, 혀를 가운데로 양쪽에서 위로 동그랗게 조금 말아보자. 그렇게 하면 R 음을 쉽게 소리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발음 특히 L 음과 함께 소리낼 때 쉽게 소리낼 수 있다.
clear L은 보통 우리말의 ㄹ에서 혀를 윗니 쪽으로 더 밀어 붙인다. dark L은 무엇인가? clear L과 동일하게 발음하되, 혀를 윗니에서 좀 허술하게 떼면 된다. L 음 중 초성은 보통 clear L 이고, 말음이나, 말음 근처의 복자음은 dark L이 많다 (예, milk, film, silk, bell, bill, hill, kill 의 L)
3. F/V 와 θ/ð
F 음을 우리가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중에 또다시 기술하겠지만, F 음은 윗니에 아랫입술을 대어서 윗니 사이로 바람을 내뿜어서 발음하는 마찰음이다. 그런데, 이 F 음을 한국어의 ㅍ음처럼 인식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학교에서 다들 배운다. F음을 어떻게 발음하는지를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F 음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ㅍ음의 잔상은 너무도 커서 우리는 윗니에 아랫입술을 제대로 댄 다음에도 마찰음인 F음을 ㅍ음처럼 파열하여 발음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자신의 입 모양을 자세히 보고, 또한 자신의 발음을 영어의 F 음과 비교해보기 바란다. 녹음소리를 들으면, 자기가 발음한 F 음과 P 음도 제대로 구별하기 힘들 것이다. 하물며, 우리가 내는 소리를 듣는 원어민들은 오죽 힘들 것인가? 아무리 우리가 입 모양을 잘 만들어 F 음이랍시고 발음해 보아도 그 발음은 절대 F 음이 되지 못하고 P 음으로 들린다. 결국 입술과 치아의 위치에서 조음한다고 하더라도 파열음처럼 파열하여 발음하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F 음은 마찰음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또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 결코 제대로 들을 수도 없다.
θ/ð 음 또한 우리는 치간에 혀를 내밀어서 ㄷ처럼 파열하여 발음한다. 그러나 θ/ð 음 또한 파열음이 아니라, 마찰음이니, 혀를 내민 후에 윗니 사이로 바람을 불어서 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발음을 배울 때 조음 위치만 배워서 절름발이 발음이 되었다.
정리하면, 우리에게 없는 음들 θ/ð 와 F/V가 모두 마찰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마찰음은 ㅅ음 밖에 없는데, ㅅ음으로 소리가 대체되지도 않으니 더욱 주의하여야 한다.
4. 설첨음, 유성음 그리고 받침법칙
우리가 쉽게 발음하는 D, T, S, L 음을 살펴보자. 이들 음들을 한국어에서는 전설음이라고 한다. 이는 혀의 앞부분으로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설첨음이라고 한다. 이는 혀의 끝으로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비슷한 발음 같지만, 어떤 음을 전설음으로 발음하게 되면, 한국어에서와 같이 다양한 받침법칙이 작용되게 되지만, 설첨음으로 발음하게 되면, 영어에서와 같이 이러한 받침법칙이 회피된다.
Z 음은 S의 유성음으로서 우리는 이를 발음할 때 어려워한다. 한국어에는 유성, 무성의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S를 설첨음으로 발음하게 되면, Z라는 유성음도 그리 어렵지 않게 발음할 수 있다. ʃ와 ʒ 음의 경우에도 우리는 설첨음으로 입술을 벌리고 이 사이로 바람을 밀어내야 한다.
위에서와 같이 한국어에는 평음 외에 격음과 경음의 구별은 있지만, 영어에서의 같은 유성음과 무성음의 구별은 없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영어의 유성음인 B, D, G, Z 등을 모음사이에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성음으로 발음하게 된다. 일단, 무성음으로 발음하게 되면 받침이 되고, 받침이 되면, 소리가 달라진다. 이때 연음이 되면, 전혀 다른 소리로 연결되게 되므로 우리가 기대했던 소리와 영어의 발음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book'이든 'bug'이든 '북'이 되면, K 나, G의 음가가 사라지게 되는데 만약 뒤에 on 이 연결되면, '부컨'과 '버건'을 구별하여 바르게 소리내지 못한다.
여기서 유/무성음의 구별과 별개로 받침의 중화법칙을 지적해 둔다. ㄷ, ㅌ, ㅈ, ㅊ, ㅅ, ㅎ 음들은 모두 받침에서는 ㄷ 음이 된다. 따라서 ‘맛 있다’가 ‘마디따’로 발음이 된다. 그러나 영어에서 ‘bus is’ 가 ‘버디즈’로 발음이 되면 안 된다. 영어에서는 어떤 받침이든지 자신의 소리,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유성음이면 유성음으로, 무성음이면 무성음으로서의 자신의 음가를 보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음가를 보존한 연후에 다른 음과 연음이 되면서, 무성음이 유성음이 되고, 유성음이 활음이 되고, 또한 중자음으로, 유사자음의 경우, 자음이 탈락이 되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다. 일단은 자신의 음가를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5. 기능어
우리가 영어를 잘 알아들으려면, 전치사나 접속사와 같은 기능어를 잘 알아들어야 하는데, 이들 음들은 아주 약하게 발음되는 것이 또한 우리에겐 불리한 점이다. 내용어(Content words)는 강하게 스트레스를 받지만, 기능어(function words)는 약하게 발음을 받는다, 거기에다 연음까지 되고 보면, 우리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다.
전치사는 대부분 모음으로 시작하고 비음이나 설탄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앞 소리에 찰싹 달라붙는다. 마찰음인 [th]음은 전체가 아예 콧소리로 변해 윙윙거린다. t는 d가 되고 d와 [th]는 또 r로 데구르르 구른다. 여기에 강세(stress)와 스피치 리듬(speach rhythm)이 또한 요동치니, 음들이 상황에 따라 마구 변한다. 전치사는 말만 전치사인 듯하다. 실제로 발음은 후치사 같다. 우리나라 말에서의 을/를, 은/는 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 보인다.
6. 영어에서 모음의 존재
영어에 모음이 정말 있기나 한 것일까? 미국문학 강의에서 미국인 교수가 (d)sngrasn 이라는 이상한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하더라는 것이다. 한참 후에 새벽이 밝아오듯이 그 단어가 disintegration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가짜 영어 진짜 발음 210쪽)
위의 사례에서 현지인은 모음을 거의 발음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모음이 있는데도 모음을 발음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발음했는데도 한국인이 못 알아들은 것일까? 둘 다 맞는 얘기라고 생각된다. 모든 이해는 그의 수준에 따르는 것이라고 부처님도 이미 얘기하셨다. 내 생각에 영어의 모음은 우리말의 모음처럼 자음과 동일한 자격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 영어의 모음체계를 설명한 모음도를 보자.
[모음지도(Vowel Map)]
[Front] [Central] [Back]
iy u
high w
Jaw i ʊ tongue
opens ey rises
and middle ə o and
closes ɛ ʌ w drops
low æ ɔ
ɑ
*긴장모음(tense vowels)은 더 높은 곳에서 소리 나고, 이완모음(lax vowels)은 상대적으로 더 낮은 곳에서 소리 난다.
이러한 모음지도를 보면서, 영어의 모음은 한국어의 모음과 정말 다르군, 그들의 소리는 한국어의 모음과 달리, 긴장 모음과 이완 모음이 있으며, 입안에서의 조음대의 영역도 한국어 모음보다도 그 높낮이와 전후의 폭이 더 크다고 설명한다면, 일반적인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한국어의 모음과 하나도 같지 않은 영어 모음을 제대로 된 입모양으로 잘 발음하려고 노력해야지 하고 다짐한다면,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불행히도 나는 아니오라고 답을 하겠다. 왜냐하면,
영어는 우리말처럼 음절을 하나씩 또박또박 발음하는 말이 아니라, 스피치 리듬과 박자에 따라 발음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음절이 달라도 스피치 리듬에 따라 그 말의 길이가 달라진다. 음절이 많은 말이, 스피치 리듬의 한 박자에 걸리면, 음절이나 음을 마구 생략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절음이 아닌, 영어에서 모음의 중요성은 자음만큼 중요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 모음은 자음에 종속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완모음은 더욱 그러하다.
또한 영어에는 반모음이 두 개 있다. 그것은 w와 J 이다. 이것을 모음이라고 생각하면, 영어의 많은 소리를 놓치게 된다. 그것은 모음이 아니라 자음이다. 엄연한 자음으로서 성대를 울리는 모음이다. 우리나라 말에서 w를 'ㅜ' 로 j 를 'ㅣ'로 생각하여 복모음화하는데, 발음을 그렇게 할 경우, 제대로 들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w 음에 대해서는 특별히 연습을 많이 하여야 하고, 분명히 자음으로 발음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영어에서 w 음만큼 중요한 음이 또 있을까? 그 수많은 be 동사의 활용에, 조동사의 활용에, 다양한 관계사 등에 수도 없이 쓰인다. 그렇게 엄청나게 쓰이면서 한국인의 귀를 멀게 한다. 참으로 한국인을 울리는 소리이다. 심지어는 r 음으로 착각하게 까지 한다. 못말리는 소리이다.
(2010년 작성)
어릴 때, 영어나 영어소리를 익히 듣고 자란 요즘의 청소년들에게는 이 글은 무슨 공염불 같은 얘기일 듯. 예전에 잘못된 (한국어식) 영어 발음을 배우고 자란 세대의 자성록.
(2021.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