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碑銘(비명)

함형수

by 조영필 Zho YP

해바라기의 碑銘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碑(비)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시인부락 창간호, 1936년 11월)




감상: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시이다. 친구랑 전화하는 데 다른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시를 읊어버렸다, 얼마나 좋아하면 그냥 생각없이 쏟아져 나왔을까, 단편같은 삶이 싫어서 한동안 이 시를 멀리 했다. 단순하면서도 돌아 가고 싶은 어린 날의 추억과 풍경 속에서 이 시는 늘 나와 함께 있다.(2021. 9. 16)


지금 금방 깨달았다. ‘비명’에 제목의 뜻 말고 더 일반적인 ‘아파서 내지르는 소리’의 뜻이 있다는 것을. 중의는 은연 중에 우리의 미감을 끌어올린다.(202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