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역
당신은 안개가 짙게 깔린 밤에 차를 몰고 있었다…
‘문제란 그것이 발생한 틀 내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피상적으로는, 이 인용구는 아시트의 닫힌 세계 조건과 충돌한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닫힌 세계 조건은 문제가 새로운 시각이나 관점으로부터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종류의 대상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나는 다음 이야기가 이것을 알려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몇몇 독자들이 나에게 이 이야기를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를 당신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이것은 사이버 공간에 떠도는 이야기들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나는 사실 누가 이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어떻든, 이것은 아시트의 생각 방식에 대한 훌륭한 이야기이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후보자들에게 필기시험으로 주어지는 질문 중의 하나:
당신은 안개가 짙게 깔린 밤에 차를 몰고 있습니다. 당신이 버스 정거장을 지나칠 무렵 그곳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세 명 있었습니다.
a) 막 숨이 넘어갈 듯한 할머니
b) 한때, 당신의 목숨을 구해준 의사
c) 당신이 사모하고 있는 남자/여자
당신은 당신의 스포츠 카에 한 명만 태울 수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요?
당신의 답을 설명해주세요.
계속 읽기 전에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이것은 인성 테스트의 종류로 보인다. 모든 답은 이유가 있다. 당신은 할머니를 고를 수 있다. 그녀는 죽음 직전에 있고, 따라서 그녀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당신은 의사를 택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한때 당신의 생명을 구했고 이것은 그에게 보답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장래에도 항상 의사에게 보답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결코 완전한 사랑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마침내 채용된 후보(200명의 지원자 중에서)는 그의 대답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무어라고 말했는가?
그는 단순히 대답했다: ‘나는 의사에게 열쇠를 주고서는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달라고 부탁하겠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곳에 머물러서, 나의 꿈같은 사랑과 함께 버스를 기다릴 것이다.’
이 정도로도 이것은 멋진 이야기이다. 이제 나는 아시트의 용어로 이것을 분석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미안하지만, 이 글은 진지한 뉴스레터이고 우리는 멋진 이야기로만 만족할 수는 없다!)
이 이야기가 얘기하는 방식으로부터 우리는 여기에는 도덕적 주제가 있고, 그래서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도덕 대리인들’을 불러와서는 정해진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이들 대리인들은 그 논점을 철저히 양 측면에서 고려하는 법을 알고 있으며 마침내 정당한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문제가 도덕적 판단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다른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기회는 없다는 것이다.
발명적 해결책은 결코 도덕적 고려를 다루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자원들(즉, 차와 버스)을 4명의 인물들 사이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배분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면 아시트는 여기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먼저 아시트는 문제를 규정 지으려고 (이 경우에는 도덕적 문제로) 하지 않는다. (사실은 그것을 방해한다) 아시트는 어떤 단계에서도 문제를 한정 짓지 않는다 - 단지 문제의 대상을 한정한다. 문제 세계가 한정될 때, 아시트는 대상들을 가지고 자유로운 실험을 하도록 격려한다.
아시트는 물론 우리를 고무하여 대상들 사이의 현존하는 연결고리를 깨트리게 한다, 그리고 원점에서부터 그것들을 재구성하도록 한다.(예를 들면, 분할 기법을 사용할 때) 이 경우에 해결책은 우리로 하여금 운전자를 차로부터 ‘단절’하도록 요구한다.
이 이야기는 문제는 그것이 만들어진 틀 내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 라고 하는 아인슈타인의 인용구의 뛰어난 사례이다. 문제는 ‘도덕적 판단 문제’로서 창조되어졌고 ‘자원의 배분 문제’로서 해결되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아인슈타인의 교훈이 닫힌 세계 조건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이기도 하다.
갑자기, 이 이야기는 나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상기시키는데, 그것은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규정짓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하이파에 있는 한 학술기관에서 내가 강의를 마쳤을 때, 강연자 중의 한 명이 내게 다가와서 교수들의 특징인 진지함으로 말했다, ‘매우 흥미로운 이론이네요, 그런데 이것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요?‘ 그는 물론 나의 이론이 어떤 학파에 속하는지를 알고 싶어 한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즉시 그리고 주저 없이 대답했다, ‘이 이론은 나와 함께 합니다. 현재로서는 하이파에 있지요….
다음 주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