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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의 도덕철학체계

박세일

by 조영필 Zho YP

32/ 18세기 유럽의 시대적 과제란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이론적 과제라고 볼 수 있는 바, 이는 근대시만사회의 구성원리/조직원리/질서원리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보다 실천적 과제라고 볼 수 있는 바, 이는 중상주의-상업의 체계를 비판/극복하고, 자유의 체계=자연적 자유의 체계를 확대/발전/정착시키는 것이었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에서 개화되기 시작한 [자유의 체계]가 스미스의 생존 당시는 종래의 [상업의 체계]와 병존하고 있었다.


33/ 보편교회의 권위와 전통은 약화되었고 인간의 이성은 해방되었다. 그런데 인간의 해방은 인간이성의 해방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인간본능의 해방/인간감성의 해방까지를 결과하게 되었다... 본능의 해방은 이기심 혹은 자애심(自愛心)의 해방을 의미하는데 과연 이기적인 인간들이 자기의 욕구대로 자유롭게 활동할 때, 그 사회에 질서와 발전이 보장될 수 있는가, 만일 보장된다고 한다면 그 근거 내지 원리는 무엇인가?


35/ 영국의 경험론은 독일의 관념론과는 달리 원리적으로 볼 때 인간과 자연(우주)은 동일하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즉 자연의 일부 혹은 연장으로서의 인간관이다. 따라서 독일의 관념론의 경우와는 달리 자연과 인간은 결코 대립/분열의 관계는 아니었다.


36/ 독일의 관념론/이상주의철학에서는 인간은 자연과 대립적 존재로서, 과연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얼마나 독자성을 가지는가가 중요문제였다. 인간은 주관(인식주체)이었고 자연은 객관(인식대상)이었으며, 주관을 보다 근원적으로 보았다. 자유의 문제도 독일에서는 칸트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연으로부터의 자유(Freiheit von der Natur)라고 이해되었다. 환언하면 인간이 자신을 엄격히 자연으로부터 구별하여, 자기 자신의 독자의 법칙을 세우는 것, 즉 자율 혹은 자유의지가 곧 독일 관념론적 자유의 의미였다. 예컨대 물을 마시고 싶을 때 물을 마시는 것은 하나의 자연적 행위일 뿐이고, 이는 결코 도덕적 선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적 욕망에 대한 복종, 즉 타율이 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 인간과 자연을 준별하고 그 관계의 탐구에 있었으므로 순수한 인간이 연구의 주 대상이었고 육체/욕망/감정을 가진 생생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이론은 크게 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독일에서는 이론철학 면에서는 큰 발전이 있었으나, 실천철학 예컨대 사회구성원리/조직법칙을 밝히는 데는 영국의 경험론과 대비할 때 크게 낙후되게 되었다.


반면에 영국 경험론에서는 육체/욕망/감정을 가지고 있는 개성적이고 경험적인 인간이 주관심이었으며, 자연과 인간을 원리적으로 동일하게 보았다. 따라서 위의 예에서 물을 마시고 싶을 때 물을 마시는 것은 자연적=인간적이기 때문에 선한 것이고 오히려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타인에 의한 외적 강제가 있다면 그것이 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국에서의 자유(liberty)는 이러한 외적 강제/외적 장애의 제거 내지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철학의 주 과제는 인성/인간적 자연에 대한 보다 심층적 이해와 동시에 이러한 구체적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의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37/ ... 자연(우주)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원리상 동일하다고 파악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사회에도 인간사회를 질서지우는 어떠한 숨은 성질(원리)이 인간(개인)에게 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사적 욕망의 자유스런 추구가 가능해진 개인들이 모여 자유의 체계를 형성할 때 과연 사회는 질서/조화/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가?... 두 가지 흐름이... 첫째는 개인의 [이성]에서 찾으려 하였다. 둘째의 흐름은 샤프츠버리(Shaftesbury)... [도덕감각(moral sense)]에서...


38/ 이 견해는 스미스의 스승인 허치슨(F. Hutcheson)이나 스미스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도덕감각의 내용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하여 스미스는 ... 견해를 달리했다... 샤프츠버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애심(benevolence) 혹은 이웃에 대한 관심(social nature of mankind)을 도덕감각의 주내용으로 보았다. 그러나... 인애... 교양인(men of sense and culture)에만 해당될 수 있는 것이고 보통인(labouring poor)의 경우의 도덕감각일 수 없다는 맨데빌(Mandeville) 등의 비판을 받았다. 허치슨은... 절대빈곤 하에서는 자애심 혹은 자기보존본능이 도덕적이나 그 수준을 넘으면 이웃에 대한 사랑감정(love of fellow creature)만이 도덕적이라는 주장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 절충론도...


이에 반하여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의 기초 내지 내용은 인애가 아니라, 보든 인간이 그가 속한 계층이나 계급에 관계없이 가지고 있는 동감(sympathy)의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안간이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행/불행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요인/원리가 인간의 본성 속에 명백히 내재하여 있다...... 타인의 슬픔을 보고 슬픔을 함께 느끼는 감정의 존재는 증명을 요하지 않는 하나의 명백한 사실이고, 그 사람이 얼마나 선하냐 유덕하냐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본원적 감정의 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동감이란 자기를 타인의 입장과 동일한 입장에 놓고 타인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 환언하면 상상상의 지위전환(imaginery change of situation) 능력을 전제한다. 따라서 타인의 슬픔뿐 아니라 기쁨에 대해서도 동감의 원리는 작용하기 때문에 단순한 동정(pity)과는 다르다(sympathy......to devote our fellow-feeling with any passion whatever).


39/ 상호동감의 즐거움(pleasure of mutual sympathy)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감정과 동일한 이웃의 동감감정=동포감정(fellow-feeling)을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고 그 반대로 이웃의 동감의 부재를 느끼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없다.]


40/ 스미스의 견해에 의하면, 이타적 행위뿐 아니라 이기적 행위, 자애심에 기초한 행위도 제3자의 동감을 얻어낼 수 있다면 행위의 적정성, 즉 도덕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어떤 행위에 대하여 공평한 관찰자가 자신도 동일한 입장이었다면 같은 행위를 할 것이라는 동감을 할 수 있는 행위라면 그 행위는 도덕적이 되는 것이고 그 행위의 동기 자체가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기적 행위도 도덕적일 수 있고 이타적 행위도 비도덕적일 수 있게 된다.


41/ 계속하여 스미스는 중립적 관찰자의 동감을 받을 수 있는 범위까지 이타행위가 확대되는 것은 [인혜仁惠(beneficence)의 덕]이라고 부르고 중립적 관찰자의 동감을 받을 수 있는 범위까지 이기적 행위가 제한/억제되는 것을 [정의(justice)의 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혜는 타인에 대한 적극적 시혜이므로... 인혜에는 수익자는 있으나 피해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기심의 경우에는 이의 추구가 타인의 생명/신체/재산/명예 등에 대한 침해로 나타나기 쉬우므로 정의의 덕의 침해는 필연적으로 피해자를 발생시키며 피해자의 강력한 보복감을 유발한다.


[인혜는 정의보다 사회의 존속을 위해 덜 중요하다. 인혜가 없어도 비록 살기에는 불편하겠지만 사회는 존속할 수 있으나, 정의가 부재하면 사회는 붕괴된다...]


42/ ... 인간에게는... 동감의 원리가 있기 때문에 이기심의 발현은 중립적 관찰자의 동감을 얻는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 자제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미스는 이 낙관론에 자족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인혜라는 윤리적 가치는 사회를 보다 아름답게 하는 장식물이지만 정의라는 법적가치는 시회존립 자체의 기초이다.


44/ 정의의 개념을 교환적 정의(commutative justice)와 배분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로 나누고 후자는 제 덕의 집합 혹은 적정한 인애, 즉 적극적 덕(positive virtue)으로 보고 전자는 침해로부터의 안전(security from injury)이라는 소극적 덕(negative virtue)으로 본다. 그리하여 배분적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나 그 실현을 강제할 수 없는 불완전권리라고 보고 교환적 정의는 그 실현을 요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강제할 수 있는 완전권리(perfect right)라고 보아 전자는 도덕체계의 대상이고 후자야 말로 진정한 법학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45/ 가해자에 대한 반감이란 가해자의 동기에 대한 부인이고 피해자에 대한 동감이란 피해자의 분개에 대한 동감이다... 처벌의 근거는 원칙적으로 피해를 받았을 때 피해자가 느끼는 분개에 두고 있다. 따라서 처벌의 근거를 공공적 이익의 향상에서 구하려는 그로티우스(Grotius)나 푸펜도르프(Pufendorf), 흄(Hume) 등의 효용정의론과는 대립되는 것이 스미스의 동감정의론이다.


46/ 공공복리, 효용이 정의의 근거라고 하는 사고야말로 국가에 의해 강제할 만한 법의 범위를 부당하게 확대시켜, 중상주의적인 각종의 정책/법의 존재를 지지하는 근거가 될 수 있고 종국적으로 [자유의 체계]에 대한 부정을 결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49/ Paris에는 치정에 대한 법률이 수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많으나 London은 두세 개의 간단한 법률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Paris에서는 살인없이 지나가는 밤이 거의 없는 반면, London은 Paris보다 더 큰 도시인데도 1년에 3~4 건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가신을 한 사람 이상 둔 사람이 없는 Glasgow에서는 Edinburgh보다 살인사건이 적다. Glasgow에서는 수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하나 Edinburgh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범죄를 방지하는 것은 치정police이 아니라 타인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수를 줄이는 것이다. 종속dependency 만큼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없으며 자립(independency)이야말로 인간의 정직을 함양하는 것이다. 상업과 공업을 육성하는 것이 바로 자립을 높이는 것이고 이것이 범죄방지의 최선의 치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좀더 나은 임금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성실한 태도가 전국에 일반화된다......


51/ 두 가지 부의 증대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노동의 숙련, 기교 및 판단(skill, dexterity and judgement), 즉 노동의 생산성이고, 둘째는 생산적 노동자와 비생산적 노동자의 비율이다.


... 그는 분업의 이익으로 기교의 개선, 시간의 절약, 직공들에 의한 기계의 발명의 세 가지를 들고, 분업발생의 원인을 인간성에 내재하는 교환성향(propensity to truck, barter, exchange)에서 찾는다.


52/ 요컨대, 절약을 통한 자본의 축적이 앞에서 거론한 분업을 통한 노동생산성의 증대와 함께 국부증대의 주요 원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겠다.


53/ 첫째의 사상적 특색은 {도덕감정론}에서 전개한 그의 [동감의 원리]와 {국부론}에서 전개한 그의 [교환의 원리]=[경쟁의 원리]=[시장의 원리]가 실은 동일한 논리구조 위에 서 있다는 사실과 두 원리가 모두 중세적 속박에서 인간의 이성뿐 아니라 본능까지 해방된 사회에서 이기심이 사회적 선(공익)이 될 수 있게 하는 메카니즘 내지 조건임을 밝힌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 원리가 동일한 논리구조 위에서 있다는 사실은 양자가 공히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하는 자연적 성향에서 출발함을 의미한다... 스미스는 교환성향은 동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에게만 독특히 발견되는 성향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원인 모두가 인간의 이기적 충동을 사회적 선(도덕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 그러나 인간은 거의 끊임없이 그 동포의 조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동포의 자애심(慈愛心)에 호소하여 조력을 구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동포의 자애심(自愛心)에 호소해야 한다...]


54/ 둘째의 그의 사상적 특색은 그가 단순한 자유방임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스미스의 [방임]은 ... 각종 규제로부터의 인간의 활동력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


55/ 아담 스미스의 적극적 자유방임론은 자유스럽고 공정한 경쟁시장의 메카니즘의 작동을 전제로 한 방임이고, 자유/공정경쟁이 제한/방해되는 제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의미의 방임은 아니다.


56/ 이러한 의미에서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의 주장은 [반독점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담 스미스야말로 역사상 최초의 질서정책(Ordnungspolitik)론자라 하겠다.


(대우학술총서 공동연구) 아담 스미스 연구, 민음사, 1989. 9. 10.



Note:

이 논고는 아마도 1989-90년쯤에 읽었을 것이다. 말미에 '<제 2 국부론>이 필요할 때' 라는 낙서가 보인다. 다시 읽어보니, 아담 스미스는 더욱 훌륭하고, 이 논고의 저자도 훌륭하다. (2022.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