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얇은 紗(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薄紗(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臺(대)에 黃燭(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世事(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合掌(합장)인 양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三更(삼경)인데
얇은 紗(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문장] 11호(1939년 12월호), 청록집(1946년)
조지훈(1920-1968, 본명은 '동탁(東卓)'으로, '지훈(芝薰)'은 그의 아호이다.) 시인은 1941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냈을 정도로 불교와는 인연이 깊다. 시인은 ‘시의 원리’라는 책에서 승무의 창작과정을 밝힌 바가 있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놀랍다. 승무를 시로 만들겠다고 구상한 때는 시인이 19세 때라고 했으며, 구상한 지 11개월, 집필한 지 7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승무를 보았지만 특히 한성준의 춤, 최승희의 춤, 어느 이름 모를 승려의 춤을 사랑했다고 한다. 승무를 보고 넋이 빠져서 시로 만들 생각을 가졌으나 쉽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가 어느 미술전람회에서 김은호 화가의 ‘승무도’를 보고 대략의 구도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출처: 김다언(본명: 이창호), 건치신문, 2018. 3. 2.)
다음의 세 개의 글은 네이버블로그 [재봉틀의 국어방]에서 재인용
<여승의 탈속의 몸짓...승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우리가 애송하고 있는 조지훈의 <승무>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곧바로 그 시 전체를 구성하고있는 세 가지 정보의 회로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얇은 사’ ‘고깔’ ‘박사’와 같은 의상 정보에 관한 것이고, 다음은 ‘나빌레라’의 비유어에서 보듯이 나비와 같은 자연물에 관한 정보, 그리고 마지막에는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그 신체 정보이다.
셰익스피어의 ‘기저귀’와 ‘수의’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생의 기호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이 시에서도 의상은 인간의 ‘미와 진실’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 코드로 작용한다. 반복형으로 강조된 ‘얇은 사’와 ‘박사’는 우리가 보통 때 입고 다니는 ‘두터운 무명’ 옷감의 재질과 대립하는 것이고, ‘하이얀’ 빛깔은 삶의 쾌락을 나타내는 색동옷과 대칭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절제와 정화를 나타낸다. 그래서 그것들은 ‘남성에 대한 여성’, ‘속에 대한 성’, ‘축제에 대한 제례’의 탈중력 상태의 문화 코드를 형성한다.
그리고 1연과 2연에 나오는 고깔은 은유와 환유의 각기 다른 비유의 양상을 통해서 ‘자연코드’와 ‘신체코드’에 연결된다. 즉 1연의 ‘나빌레라’는 고깔을 나비에 비유한 것으로, 얇고 하얀 천의 재질이 나비의 나래와 동일시되고 그 형태는 나비의 모양과 결합된 은유이다. 의미만이 아니다. 부드러운 순음과 유음이 겹친 ‘나빌레라’의 기호 표현(어감)은 무엇인가 가볍게 나부끼고 있는 것과 관련된 의태어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1연의 그 비유의 구조가 ‘고깔은 나비이다’라는 유사성에 의해 이루어진 ‘은유’인데 비해서, 2연의 그것은 ‘고깔을 머리에 쓰다’의 근접성으로 구성된 환유이다. 말하자면 왕관이 그것을 쓴 왕을 상징하듯이 ‘고깔을 쓴 삭발한 머리’는 바로 여승, 승무를 추는 무희를 나타내는 환유적 상징물이다. 뿐만 아니라 신체의 최상부를 가리키는 머리는 당연히 그 최하위에 있는 발과 대립되는 신체어로서 땅에 대한 하늘, 육체에 대한 정신, 쾌락에 대한 금욕, 감정(발산)에 대한 이성(억제)을 나타내는 문화적 코드이다. 더구나 ‘파르라니 깎은 머리’는 승려라는 신분만이 아니라 금욕적인 탈속의 의지를 강화해 준다.
단순하게 말해서 고깔의 의상코드가 나비의 자연코드와 합쳐진 것이 춤(무)이며, 삭발한 머리의 신체코드와 결합한 것이 불교(승)이다. 그러니까 「의상=자연=신체」의 세 코드가 은유와 환유의 시적 장치를 통해서 하나로 수렴되고 승화된 것이 바로 그 <승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조지훈의 <승무>를 읽는다는 것은 그 첫머리에 제시된 고깔(의상)-나비(자연)-머리(신체)의 관계가 어떻게 선택, 결합되어 진전되어 가는가를 추적하고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신체코드로 볼 때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3연에 이르면 ‘두 볼에 흐르는 빛’(얼굴)이 되고, 5∼6연에 오면 손과 발의 춤사위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그 신체코드는 ‘복사꽃 뺨’과 ‘까만 눈동자’로 올라가 본래의 머리 부분으로 돌아간다.
의상 코드 역시 1연의 고깔이 5연에 오면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로 장삼과 외씨버선으로 바뀐다. 그러나 하늘로 비유된 그 긴 장삼과 사뿐히 위로 올린 외씨버선의 모양은 다시 하늘로 상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물론 의상은 신체의 연장이고 또 춤사위와 관련된 것으로 ‘손-소매-장삼’에서 ‘발-버선-외씨버선’으로 내려오는 신체 기술과 동일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볼에 흐르는 빛’처럼 의상의 환유체계로는 나타낼 수 없는 경우에서도 빈 대에서 소리없이 녹아 내리는 황촉불로 그 하강의 이미지를 지속시켜 준다. 촛불은 신체를 에워싸고 있는 ‘빛의 의상’이 된 것이다.
자연코드는 신체와 의상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인접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도 ‘나비-지는 오동잎과 달빛-별빛’의 순으로 역시 ‘상승-하강-상승’의 율동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오동잎 잎새마다 지는 달빛’은 두 불에 흐르는 빛과 빈 대위에서 소리 없이 녹아 내리는 황촉의 불빛과 삼중의 동심원을 그리면서 침하해 간다. 신체의 빛, 문화의 빛, 자연의 빛… 이 세 빛은 서로 다른 코드에 속해 있지만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운’ 소멸의 빛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그 빛들은 모두가 ‘먼 하늘 한 개 별빛’을 향해 합장을 한다.
손이 소매가 되고 소매가 장삼으로, 장삼이 하늘로 바뀌어 가듯이 두 볼에 흐르는 빛은 촛불이 되고 그 촛불은 다시 떨어지는 오동잎 이파리마다 지는 달빛이 된다. 그러나 외씨버선이 하늘을 향해 위로 솟아오르듯이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지던 두 검은 눈동자는 먼 하늘의 한 개 별빛으로 향한다. 그 별빛은 촛불처럼 녹아 흐르지도 않고 달처럼 기울다가 소멸되지도 않는다.
승무는 이렇게 세사에 시달리는 번뇌와 복사꽃 육체의 들뜬 열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날아오르는 몸짓인 것이다. 그것은 밤과 침묵 속에서 배어 나오는 빛이다.
원래 승무라고 하면 고깔, 장삼과 함께 의례 법고가 나오게 마련인데 웬일인지 조지훈의 시에는 법고를 비롯해 모든 소리가 일절 배제되어 있다. 무성영화를 보듯이 시 전체가 말없이 녹는 황촉불같이 빛과 몸짓에 의해 연출된다.
이 침묵을 깨는 것이 마지막 귀또리의 울음소리이다. 묘사가 설명으로, 즉 발신코드가 수신코드로 바뀌는 순간인 것이다. 승무의 아름다움이나 신비함, 그리고 그 성스러움이 결정체를 이룬 ‘먼 하늘 한 개 별빛’을 지상으로 가져오고, 그 심연 속의 빛을 소리로 옮기면 승무의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가 될 것이다. 의상, 자연, 신체의 세 코드는 다같이 춤의 발신코드에 속해 있는 것이지만, 귀또리는 그 어느 코드에도 속하지 않는다. 의미론적으로는 나비와 달빛과 같은 자연코드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 기능을 보면 춤과는 직접 관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귀또리는 춤이나 춤을 추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감상하며 묘사하고 있는 시인과 관계된다. 발신코드에서 고깔과 나비, 검은 눈동자와 별빛이 하나인 것처럼 수신코드에서는 귀또리-시인이 동격이 되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빛은 너무 멀고 너무 조용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발 밑에서 우는 가냘픈 귀또리 소리에 의해서만 어둠에 둘러싸인 그 빛의 감응을 겨우 짐작할 수가 있다. 춤을 굳이 언어로 바꿔놓은 이 시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승무의 진정한 메시지는 한국의 고전미나 불교의 열반을 나타내는 <승무>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의 의미는 그 침묵하는 것들을 귀뚜라미 같은 가냘픈 소리로 옮기는데 있다.
‘누가 춤을 보면서 춤과 춤추는 사람을 떼어낼 수 있는가’라는 유명한 말대로 <승무>의 세계는 번역 불가능한 것이다. 하늘의 별빛을 땅의 귀또리 소리로 옮기는 작업, 그것이 시인 조지훈이 평생을 두고 썼던 그 시의 의미였을는지도 모른다.
- 이어령: <다시 읽은 한국시>(조선일보.1996. 9. 9)
‘승무’의 시작(詩作) 과정
내가 참 승무를 보기는 열아홉 살 적 가을이다. 그 가을 어느 날, 수원 용주사(龍珠寺)에는 큰 재(齋)가 들어 승무 밖에 몇 가지 불교 전래의 고전음악이 베풀어지리라는 소식을 거리에서 듣고 난 나는 그 자리에서 곧 수원으로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밤 나의 정신은 온전한 예술 정서에 싸여 승무 속에 용입(溶入)되고 말았다. 재가 파한 다음에도 밤 늦게까지 절 뒷마당 감나무 아래서 넋없이 서 있는 나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시정을 느낄 땐 뜻모를 선율이 먼저 심금에 부딪침을 깨닫는다. 이리하여 그 밤의 승무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안고 서울에 돌아온 나는 이듬해 늦은 봄까지 붓을 들지 못하고 지내 왔었다. 춤을 묘사한 우리 시가로 본보기가 될 만한 것이 아직 없을 때이라 나에게는 오직 우울밖에 가중되는 것이 없었다.
이와 같이 한마디의 언어, 한 줄기의 구상도 찾지 못한 채 막연한 괴로움에 싸여 있던 내가 승무를 비로소 종이 위에 올리게 된 것은 내 스무 살 되던 해의 첫 여름의 일이다. 미술 전람회에 갔다가 김은호(金殷鎬)의 <승무도>(僧舞圖) 앞에 두 시간을 서 있은 보람으로 나는 비로소 무려 7. 8 매의 스케치를 가질 수 있었다. 움직임을 미묘히 정지태(靜止態)로 포착한 이 한 폭의 동양화에서 리듬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발견이었으나, 이 그림은 아마 기녀(妓女)의 승무를 모델한 성싶어 내가 찾는 인간의 애욕, 갈등 또는 생활고의 종교적 승화 내지 신앙적 표현이 결여되어 그때의 초고(草稿)는 겨우 춤의 외면적 양자(樣姿)를 형상하는 정도의 산만한 언어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그림을 통해서 내가 잡지 못해 애쓰던 어떤 윤곽을 잡을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이 초고를 몇 날 만지다 그대로 책상 위에 버려 둔 채 환상이 가져오는 소위 시수(詩瘦)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 승무로 인하여 떠오르는 몇 개의 시상을 아낌없이 희생하기까지 하였으나 종시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용주사의 춤과 김은호의 그림을 연결시키고도 왜 시를 형성하지 못했던가? 이는 아직 춤을 세밀하게 묘사하면 혼의 흐름의 표현이 부족하고 혼의 흐름에 치중하면 춤의 묘사가 죽는, 말하자면 내용과 형식, 정신과 육체, 무용과 회화의 양면성을 초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초극하고 한 편 시를 만들기는 또다시 몇 달이 지난 그 해 10월 구왕궁 아악부(雅樂部)에서 ‘영산회상(靈山會相)’의 한 가락을 듣고 난 다음 날이었다. 아악부를 나서면서 나는 몇 개의 플랜을 세우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이 시를 이루는 골자가 되는 것이다.
먼저 초고에 있는 서두의 무대 묘사를 뒤로 미루고 직접적으로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릴 것.
그 다음, 무대를 약간 보이고 다시 이어서 휘도는 춤의 곡절로 들어갈 것.
그 다음, 움직이는 듯 정지하는 찰나의 명상의 정서를 그릴 것, 관능의 샘솟는 노출을 정화시킬 것.
그 다음, 유장한 취타(吹打)에 따르는 의상의 선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춤과 음악이 그친 뒤 교교(皎皎)한 달빛과 동터오는 빛으로써 끝막을 것.
이것이 그때의 플랜이었으니, 이 플랜으로 나는 사흘 동안 추고에 퇴고를 거듭하여 스무 줄로 된 한 편의 시를 겨우 만들게 되었다. 퇴고하는 중에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장고의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마침내 여덟 줄이나 되는 묘사를 지워 버리고 나서 단 두 줄로,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라 하고 말았다.(후략)
- 조지훈 : <나의 시 나의 시론>
<승무>의 문제점으로는 우선 무용으로서의 전통예술을 언어로 포착하려 시도한 그 무모성을 들 수 있다. 한국적 불교예술인 이 승무는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몸짓에 속한다. 언어가 근본적으로 이차원의 시간(計器)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언어가 힘으로 설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그것이 지닌 역사성과 사회성뿐이라면, 언어로 하나의 몸짓을 포착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따라서 무의미의 나열 혹은 여백의 기술(記述) 이상일 수가 처음부터 없다.
둘째, 2행으로 시종하는 조지훈 시 전체의 문제인 시 구조에 대한 무신경성을 지적할 수 있다. 이 무기교주의는 단순한 직유에서 그 이상 발전하지 않는다. 이 무기교주의를 커버하고 있는 것이 소위 언어의 리듬과 이에 연하는 시어의 고정성이다. ‘소이다, 노니,’ 따위의 시어의 편재(偏在)는 스스로에 도취하고, 정신의 압살(壓殺) 작용을 할 따름이다. 말하자면, 언어로 대지를 가는 투박성이 아니라 손장난에 해당되는 것이다. 무기교주의의 표방이 혹 대인풍(大人風)의, 혹은 선비 기질의 드러냄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로 시 정신을 한정하며, 더구나 현시적(現詩的?)인 것일 수 없다. 여기에도 그 파탄은 선험적으로 놓여있다.
셋째, 이 시의 요체가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에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구절의 번뇌와 별빛의 동질성은 불교미학에의 미달이거나 그것에의 초월에 해당되고 만다. 결국 불교미학을 빗겨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1939년에 쓰여진 추천작 <승무>의 이 조숙성은 이미 시어의 선험성(先驗性)과 무기교주의의 한계성으로 말미암아 정지 상태에 머물렀던 것으로 판단된다. 처음부터 ‘흔들리는 별빛’일 수 없었던 것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문자의 세계보다 비교를 절(絶)할 정도로 위대한 것일 수는 있어도 시라고 할 수는 없다. 그가 이를 알아차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겠지만, 그러나 그가 젊음의 매우 주요한 시기에 비속비선(卑俗非善)의 접점에서 방황했음도 또한 사실일 것이다. 바로 여기서 조숙성과 조급성이 마주치게 되며, 전자에 의한 시어의 선험성이 지닌 폐쇄성과 후자에 의한 사회성이 시형의 갈등 없이 타협하기에 이른 듯하다. 이 타협 상태는 그의 시작(詩作) 전체를 최소한 시이게 한 것이면서 동시에 어느 한쪽도 철저화시키지 못한 이유일 수 있다.
- 김윤식 : <한국 현대문학 명작사전>(일지사.1982)
Note:
참으로 청아한 시이다. 한시를 읽는 데 이 시가 계속 생각이 나서 학창시절 암송의 추억을 다시 호출한다. 이 시는 백석의 ‘여승’과 그 궤를 같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