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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Jul 03. 2022

미래중독자

다니엘 S. 밀로

19/ 창조의 보석이자 우리의 영광이며 구세주인 뇌는 동시에 어쩌다가 그토록 많은 낭비와 불편함의 원천이 되었을까?... 가령 우리의 조상들 개개인은 태곳적부터 강으로 물 길러 가기, 동굴을 적정 온도로 데우기, 먹을거리 사냥하기 등의 임무를 수행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가 그와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인간이라는 종 일반이 인간 각각을 보살필 경우, 우리의 대뇌피질을 구성하는 150억개의 뉴런들 가운데 대다수는 사실상 기술적 실업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뉴런들은 과연 남아도는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으며 자신들의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발휘하는 것일까?


20/ 프리기아에 왕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각자 제멋대로 행동했다... 신탁은 주민들에게 제일 먼저 소달구지를 끌고 시내로 들어오는 자에게 왕관을 씌울 것을 명했다. 고르디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농부가 소들이 끄는 수레에 그날 시장에서 팔 채소들을 싣고 그 자신도 수레에 올라탄 채 시내로 들어오는 성문을 통과했다. 마가목 껍질로 꼬아 만든 동아줄로 수레를 신전의 한 기둥에 묶자마자 주민들이 그에게 몰려왔다. 놀란 농부는 얼떨결에 왕좌에 올랐다. 주민들은 수레를 옮기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왕좌에 오른 농부 고르디우스마저도 자기가 맨 매듭의 어느 한쪽 끝조차 풀지 못했다. 수레를 끌던 소들은 고르디오스의 아들 미다스가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다.


21/ 150억 개의 뉴런이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들이다.


질문하지 않는 뇌는 원래의 소명을 저버린 뇌다. 1900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 수학학회에서 다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는 미래세대가 풀어야 할 스물세 개의 문제를 제시했다... 우리 세기엔... 이제 여섯 문제만 남았다.


26/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쾌거는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진다. 3분의 1 정도의 용량만으로도 하나의 문명을 이룰 수 있다면 과연 1,350cm2에 이르는 뇌 용량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일까?(고르디온지수3)?...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그를 소유한 자가 필요로 하는 전체 열량의 22퍼센트를 소비한다. 이는 영장류 8퍼센트, 포유류 평균 4퍼센트와 비교할 때 엄청난 비중이다.


28/ 이렇듯 최초로 나타난 거품은 뇌의 과도한 성장이다. 인구 거품(적응도fitness)은 이보다 훨씬 뒤에 나타난다. 인간이라는 종의 수는 약6만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5만(5,000을 기점으로 병목 현상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주위를 맴돌았다.


... 도대체 무엇이 과도하게 무장한 종의 적응도를 그토록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것일까? 그럼에도 과도하게 무장한 종이 승리를 거두게 되는 건 또 무슨 연유에서일까?


29/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분수에 맞지 않게 커다란 기관을 달고 살았으며 이제까지 발견된 스물두 종의 호미니드 가운데 스물한 종이 멸망한 까닭은 이러한 사치 때문이었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중간쯤 되는 어디에선가 기적이 일어났다. 동굴에 살던 웬 인간이 동굴에 살던 다른 인간에게 "내일 보자!"라는 인사말을 건네면서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40억년 전에 일어난 빅뱅 이후 그 같은 일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32/ 지금으로부터 5만 8,000년 전, 인간 종을 구성하는 몇몇 구성원들이 그들의 고향, 즉 아프리카를 떠나 장도에 오를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33-35/ 뇌가 건드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지나침이란 거품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했다는 고르디우스의 아들 미다스처럼 말이다.


... 지나침의 역사를 세 부분으로 나눠 기술할 예정이다.

첫 번째는 거품(현재)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이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바로 지나침, 과도함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지나침이라는 현상은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모든 생명체는 목까지 수렁에 빠진 채 버둥거리며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인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글로벌화한 정글에 잠시 세 든 세입자에 불과하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해가 되기까지 하는 것들에 몰두할 수 있단 말인가?


두 번째는 뿌리(과거)다. 뇌의 성장, 기술의 성장, 인구의 성장, 이렇게 세 가지 성장이 함께 간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앞의 두 가지 성장이 세 번째 성장보다 백만 년가량, 아니 그 이상 앞서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뇌와 적응도의 관계는 수익률 하향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단계에서는 호미니드의 뇌 크기에 따른 자연선택의 효과가 도구를 만들고 불을 통제하는 창의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그 뇌를 보유한 자들의 번성을 가져왔다. 2단계에서 뇌는 계속 커졌으나 인구는 성장하지 않고 정체현상을 보였다. 3단계에 오면 뇌의 크기가 여전히 성장을 멈추지 않는 가운데 뇌의 보유자들이 점점 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첫째... 뇌보유자들이 어째서 수백만 년 동안 멸종 위기에 근접하는 굴욕을 당하게 되었을까?... 둘째 일부 아프리카 출신들은 무슨 이유에서 이민 길에 올랐을까?...


세 번째는 전이(미래)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최후의 승자로 등극한 인간은 그들의 조상들에게 강요되었던 임무, 쓰러져 가며 수행해야 했던 대부분의 임무들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렇게 얻게 된 자유시간을 어디에 사용하게 되었을까? 할 일이 없어진 뉴런들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인간은 아프리카로부터의 이주나 고르디우스의 매듭 풀기 등 각종 문제 상황과 수수께끼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자유시간과 뉴런을 활용해왔다. 그렇게 내일을 발명한 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연속적으로 거품을 만들어내는 제조자가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43/ 1858년 2월, 인도네시아의 테르나테 섬에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무소속 학자는 말라리아에 걸려 환각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자연선택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단숨에 써내려갔다. 그는 이 논문을 종의 기원 문제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진 찰스 다윈에게 보낸다... 1858년 윌리스의 논문과 자신이 1843년에 쓴 논문을 공동 명의로 발표하도록 손을 쓴다... 다윈주의는 까딱했다간 '윌리스주의'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44-49/ [놀이거품]

놀이는 유년기 동물들에게 성년 시기를 준비하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버빗원숭이의 경우, 어린 암컷들은 새끼 원숭이들을 데리고 엄마놀이를 한다.

... 어린 펭귄들은 몇십 번씩이고 물속에서 서로를 밀친다. 어린 영양들이 놀이를 할 때면 마치 파리라도 머릿속에 들어온 것처럼 법석을 떤다.


... 손익계산서를 뽑아보았을 때, 어린 시절에 부지런히 땀을 흘려야 성년이 되었을 때 피 흘리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자연선택은 위험한 놀이를 허락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부추긴다. 자연에서 놀이는 유년기의 전유물이다.


현대 인류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도전에 당면하고 있다. 뇌를 단련시키는 데에는 놀이만한 것이 없으므로 자연선택 역시 놀이를 부추긴다.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현대 인류에게 "침팬지화된 피터팬"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놀이가 성인들로 하여금 인생에 대비하게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알츠하이머 질환의 출현을 늦추리라고 여겨지는 기억력 관련 놀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놀이가 수컷의 성적 선택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암컷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암컷들 역시 결혼을 한 후에도 '밀당 놀이'를 계속한다.


51/ ...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서, 위세를 떨치기 위해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경쟁을 벌인다. 인간들은 경쟁에 대비해 교육을 받았으므로 경쟁을 펼친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 사이에서는 일이 그렇게 돌아간다. 처음엔 경쟁에 어떤 목적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경쟁 자체를 위한 경쟁이 계속된다.


53/ 자연에서 경쟁은 항상 국지적이다.. 목표 또한 국지적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경우 경쟁은 기록 갱신처럼 포괄적이고 전면적이다. 인간은 이 분야에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을 도입했다. 바로 '최고!'를 도입한 것이다.


54-56/ 논제!

놀이가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뇌를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뇌가 놀이를 발달시킨다. 뇌는 이미 생존투쟁에서는 승리의 개가를 올렸기 때문이다.


[길들이기 거품]

냉혹한 자연선택이 어째서 이토록 '지나친' 존재를 만들어 냈을까? 자연선택은 왜 인간으로부터 잉여분을 도려내지 않았을까?...

... 신석기 혁명무렵 인간은 동물들과 식물들을 선별해 이들을 길들이고 완벽하게 개량하는 비법을 찾아냈다. 그 후 인간은 자연선택을 고스란히 베낀 세계 속에서 버젓이 군림하게 되었다. 자연선택이 하는 것이라면 인간도 하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오래된 사랑 이야기는... 회색늑대Canis lupus, 즉 견공들과 함께한 역사일 것이다.


58/ 거품은 인간이라는 부류만의 전유물이라고 결론지어야 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순록은 이익보다 비용이 일곱 배나 많이 드는 뿔을 머리에 이고서 라플란드 지방을 가로지른다. 공작의 꼬리는 오래전에 날기 위한 기능을 상실했지만 공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 사방으로 돌아다닐 뿐 아니라 가끔 헛간 지붕위에 올라 앉기도 한다... 지속가능한 거품과 터져버릴 운명의 거품을 구별하는 일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59/ 1차적 필수품에 해당하는 재화와 서비스, 특성은 양성 피드백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일이 매우 드물다... 사치품의 가격이란 경제적 합리성 따위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규칙] 사치품만이 거품을 만든다.


생물학에서는 난자나 고환처럼 '정상적인' 차원에 해당되는 1차 성징과는 달리, 오직 2차 성징, 그러니까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컷의 시도만이 '과도하다'는 형용사에 어울린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순록의 뿔 또는 공작의 꼬리라고 하는 수수께끼에 봉착한 찰스 다윈이 고안해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자연선택에 관여하는 두 번째 진화 기제를 제안했다. 바로 성적 선택이다. 이 생각을 발전시킨 로널드 피셔는 1930년에 이를 가리켜 "폭주runaway 이론"이라고 명명했다.


... 피셔에 따르면 암컷들은 사지가 긴 쪽을 선호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63/ ... 첫째 지나침은 분명 존재한다. 둘째 그럼에도 지나침은 자연에서 생존 가능하다.


76/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에 따르면 오직 인간만이 추억과 희망, 후회와 환상을 지닌 반면 다른 피조물들은 "육화된 현재"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다른 피조물들은 과거와 미래가 안겨주는 고통에서 비켜나 있다... 니체는 여기에 덧붙인다. "인간만이 약속을 할 수 있는 동물이다."


77/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만이 "나"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0/ 포유동물의 경우 생물학적 아버지의 5퍼센트만이 자식에게 호의를 베풀고 자식을 보호한다.


206/ 구석기 인류학자 레이첼 캐스퍼리Rachel Caspari에 따르면... 현역으로 일하는 노인의 출현은 손주들의 기대수명을 높이는 데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208/ 그림: [시간의 두 화살]

우리의 현재는 탄력적이다. 때로는 순간적이지만(오르가슴), 때로는 영원처럼(치통) 지속된다. 과거는 언어로 다룰 수 있는 제한된 자원이지만, 미래는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무한하다. 이같은 비대칭 때문에 미래는 5만 8,000년 이래 줄곧 인류 진화의 주역이 되고 있다.


211/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한 암사자는 배란을 하지 못한다. 새 왕은 자신의 리비도를 충족시키고 싶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 때문에 차마 왕비를 강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예 새끼들을 죽여서 암사자를 다시 발정이 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듯 수사자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아빠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짝짓기를 위해서 손발에 피를 묻히는 것이다.


215/ 아프로디테의 탄생_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는 떼어낸 성기를 바다에 던졌다. 크레타섬까지 떠내려간 우라노스의 성기는 파도에 휩쓸려 키프로스까지 갔다. 아프로디테는 그 성기를 둘러싼 거품에서 태어났다.


221/ [네이처]에 따르면 나무 한 그루의 최대 높이는 130미터라고 계산한 연구결과가 소개되었다. 물과 빛이 무제한으로 제공되어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중력이라는 물리적 제약 때문에 세쿼이아조차도 그 이상의 높이까지 물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228/ 인간은 위임하는 동물이다. 미래성, 상상력, 추상능력 덕분에 점점 더 정교한 분업이 용이해진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자유시간 때문에 뉴런의 압도적 대다수는 기술적 실업 상태에 놓였다. 이는 곧 권태로 이어지고 권태는 '지나침'을 낳는다. 무대의 막이 내려오는 것이다.


245/ ... 뉴런들은 이건 어디까지나 뉴런의 문제니까 알려진 것, 놀라움, 한번도 보지 못한 것 이 세 가지의 비율을 교묘하게 조절할 것을 요구한다.


249/ 호텔 지배인이 된 그루초 막스는 객실 번호를 바꾸라고 지시한다. 놀란 비서가 반문한다. "얼마나 혼란이 클지 생각해 보시죠!" 그루초가 반박한다. "재미를 생각해야지!"([룸서비스], 1938년)


265/ 정치학은 위임이나 합리화, 전문화 등을 현대사회의 복잡성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사실상 완전히 반대다. 위임이 복잡성이라는 거품을 일으키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의 경솔함과 맞닥뜨린다.



다니엘 S. 밀로(양영란 역), 미래중독자, 추수밭, 2017.



Note:

횡설수설하는 책이다. 제목을 잘 뽑아 팔리는 책인 듯... 쓸 만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말의 구슬을 제대로 꿰는 데 실패한 이런 책을 훑느라, 한심스러운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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