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날의 연가

고정희

by 조영필 Zho YP

쓸쓸한 날의 연가




내 흉곽에 외로움의 지도 한 장

그려지는 날이면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지를 쓰네

갈비뼈에 철썩이는 외로움으로는

그대 간절하다 새벽편지를 쓰고

허파에 숭숭한 외로움으로는

그대 그립다 안부편지를 쓰고

간에 들고 나는 외로움으로는

아직 그대 기다린다 저녁편지를 쓰네

때론 비유법으로 혹은 직설법으로

그대 사랑해 꽃도장을 찍은 뒤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부치네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소리 편에

바람 부는 날은 바람 부는 소리 편에

아침에 부치고

저녁에도 부치네

아아 그때마다 누가 보냈을까

이 세상 지나가는 기차표 한 장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네




(실천문학 겨울; 오늘의시 1989 하반기 통권 제3호, 현암사)


Note:

마지막 결구의 책상에 놓인 ‘기차표’의 정체가 너무 궁금하다. 낙엽일까? 꽃잎일까? 약봉지 또는 처방전? 세금고지서? 대체 무엇일까? 최소한 편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누가 보낸지 잘 모르는 납작한 물체? 시인이니까 다른 시인들의 증정시집?… 어쩌면 ‘부고’일 듯도 하다. 아무리 아무리 외로워도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는 인생들의 마지막 신고가 일종의 답신이라는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