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花甁(고화병)

장서언

by 조영필 Zho YP

古花甁(고화병)




古磁器(고자기) 항아리

눈물처럼 꾸부러진 어깨에

두 팔이 없다.


파랗게 얼었다.

늙은 看護婦(간호부)처럼

고적한 항아리


愚鈍(우둔)한 입술로

계절에 이그러진 풀을 담뿍 물고

그 속엔 한 五合(오합) 남은 물이

푸른 산골을 꿈꾸고 있다.


떨어진 花瓣(화판)과 함께 깔린

푸른 황혼의 그림자가

거북 타신 모양을 하고

창 넘어 터덜터덜 물러갈 때


다시 한 번 내뿜는

淡淡(담담)한 향기.





(가톨릭청년 10호, 1934년 2월; 조남익, 한국현대시해설, 미래문화사, 2008)


*花瓣(화판): 꽃을 이루고 있는 낱낱의 조각 잎. (표준국어대사전)

*五合이 무슨 뜻일까? 분명한 것은 한국어에는 없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후지산을 설명하면서 五合目(오합목)이라는 대목이 있다. 후지산의 중턱을 이르는 말이다. 合目(합목)이란 등잔에 가득 넣은 기름이 다 타들어가 불이 꺼질 때까지의 거리 라고 한다. 후지산은 입구부터 정상까지 1합목에서 10합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khk9228.tistory.com, 2018.7.19). 이 시는 일제시대에 쓰여졌고 아마 그러한 정도의 뜻으로 이해된다. 즉 현대 한국어로 옮기면 ‘반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Note: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늙은 간호부’의 비유로 인해 이 시에 주목하게 되었다. 꼬장꼬장한 수간호사 시절도 지나고, 인생의 희노애락도 이미 내려놓은 간호사의 쓸쓸한 모습이 떠오른다.

-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옛날 이 시를 처음 볼 때부터 지금껏 화병을 주전자 항아리 이미지로 인식하고 감상하여 왔다. 아마도 3연의 ‘우둔한 입술’이 주전자의 물 따르는 부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서 보니 제목부터가 아예 화병이라고 되어있어 주전자로 오해할 아무런 근거가 전혀 없다. 예전 어린 시절에는 풀과 화판을 항아리 표면의 그림이나 음영으로 이해하였다. 시를 제대로 읽기에 얼마나 많은 난관이 존재하는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2024.2.25.

- 그리고 ‘오합’ 남은 물도 이상하다. 화병에 물이 반이나 있다면,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 ‘오합’은 조금 남은 물 정도의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24.2.25.

- 부피 단위인 ‘홉’의 한자가 合이다. 그렇다면, ‘오합남은 물‘이 아니고 ’오홉 남은 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1홉은 180ml이다. 5홉은 0.9L 이다. 물이 꽤 많아서 화병이 좀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되면 감상의 정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2024.2.25.


- ‘눈물처럼 꾸부러진 어깨에// 두 팔이 없다’ : 이 부분이 둘째연의 ‘늙은 간호부’와 연결되는 맥락이 있다. 무언가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심상인데, 형상으로는 도와줄 팔이 없는 안타까움이다. 202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