遍歷(편력)

강상기

by 조영필 Zho YP

遍歷(편력)




어둠에서 태어나 어둠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에 끌리어,

낡은 荷物船(하물선)을 타고 와 닿은 곳

나의 가슴속 검은 물결을 헤치고

와 닿은 적막한 寄港地(기항지)에

저 腐敗(부패)의 煤煙(매연)을 서서히 吐(토)해내면서

나는 凶惡(흉악)한 닻을 내렸다.

鮮魚(선어)의 아침에

나는 무거운 憂愁(우수)의 짐을 부리고

연연한 인류의 염원을

分解(분해)해 가는 정신의 아픔을,

뿌우 뿌우 고동을 분다.

허전한 鄕愁(향수)는 五色(오색)깃발들로 나부끼고

말없이 지나가는 긴 세월의 行列(행렬)과

바람을 根據(근거)로 하여 풀려나는

저 어지러움의 물살들,

물살들의 환한 부피 속에 비워 둔

나의 革命(혁명)은 海溢(해일)이 되어

뭍으로 침범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멀리 靑靑(청청)한 몸을 일으켜오는 하늘을

신나게 나는

갈매기는 異邦(이방)의 하늘이 아니라

나의 빈사의 뇌속에서 끼룩끼룩 울면서

그 가벼운 重量(중량)을 퍼득인다.

더러는 어느 水平(수평)의 너머 아래 놓인

未知(미지)의 暴風(폭풍)을 부르며

뱃전에 서있는 나의 귓전으로 어깨 언저리로

소나기 쏟아져 오고

큰 톱니같은 번개가 奇襲(기습)하는가.

참으로 쓸쓸하고 고달픈 나의

碇泊(정박)이여, 歸巢(귀소)는 어디에도 없고

바다는 살아있는 沙漠(사막)이 되어

낙타의 방울소리를 실어 오고

나의 아픈 생각을 흔들어 주는가.

非情(비정)의 바람벽을 넘어

전송하는 얼굴들의 메마른 고뇌를 싣고

또 한번 머얼리로

나는 떠날 것이다. 腐敗한 煤煙을 토해 내면서

야자수 우거진 海岸(해안)을 향해

나의 渴求(갈구)를 이끌고

부대끼는 권태를, 고독을 안고

검푸른 물이랑을 헤치며 運航(운항)할 것이다.

생애에서 가장 좋은 곳을,

永遠(영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찾아가는

나의 푸른 航海(항해)를 위하여

포세이돈의 三枝槍(삼지창)을 들고

나의 출발을 저 아득한 水平線(수평선) 너머에 둔다.





(동아일보, 1971년 신춘문예 당선작; 전후신춘문예당선시집·하, 실천문학사, 1982)


*荷物船(하물선): 荷物(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챙기거나 꾸려 놓은 물건)이란 단어는 있어도, 荷物船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貨物船(화물선)이라고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


화물선을 하물선으로 표기하게 되면, 화물이라고 했을 때의 경제적 재화의 의미에서 이동이 필요한 짐이라는 생활적 의미가 강화된다. 시인은 이러한 삶에 부착하고자 함과 동시에 새로운 조어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하였을 것이다.


荷物이란 한자어가 三好達治의 詩 「牛」에도 있다. (2020. 8. 3.)



*바람벽: 방이나 칸살의 옆을 둘러막은 벽. 현대 국어 ‘바람벽’은 ‘바람’과 ‘벽’의 합성어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바람벽은 바람을 막는 벽이라는 뜻이 아니다. 바람벽은 그저 벽이라는 뜻이다. 중세한국어로 '바람'은 벽을 뜻했다. 예컨대 <훈몽자회>는 壁(벽)의 새김을 '바람'이라 적고 있다. 그러니까 바람벽은 '벽벽'이자 '바람바람'인 셈이다. 뜻을 또렷이 하기 위한 겹침말이라 할 수 있다. 새김과 소리의 순서를 뒤바꾸긴 했지만, '족발'이라는 말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현대한국어 '바람'과 마찬가지로, 중세한국어 '바람' 역시 바람(風)을 뜻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중세한국어에서 바람은 風과 壁의 뜻을 함께 지닌 동음이의어였다. (한국일보, 고종석, 2008. 5. 13.)


‘벽’은 15세기에도 현대 국어와 같은 형태로 쓰였으나 의미는 현대 국어의 ‘벽돌’ 등 벽을 쌓은 부재의 의미로 쓰였다. (네이버 국어사전)


이러한 사전적 의미와 달리 이 시에서는 바람벽을 (부두에 있을 수도 있는) '바람을 막는 벽'의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水平線(수평선): 이것이 실천문학사의 책에는 永平線(영평선)으로 표기되어 있다. 영원으로 향하는 수평선을 뜻하는 것일까, 단지 수평선의 잘못된 표기일까? 예전에 수평선이라 씌여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책을 보니, 영평선으로 분명히 인쇄되어 있다. 당시 당선작 게재신문이나, 시인의 출간 시집을 직접 확인하여야 할 사안이다.


Note:

관념어로 선박을 표현한 마술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