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회사의 연결고리
노트북은 반납하고 나섰는데, 법인카드와 사원증도 반납하라는 안내 메일을 받았습니다. 택배로 보내겠습니다. 주소와 담당자 알려주세요.
사실 몇 번 사용하지도 않은 법인카드였다. 회삿돈을 거의 쓴 적이 없어서 업무 중에 전표 처리가 제일 어려웠다. 그냥 주머니 속에만 있던 법인카드였는데, 막상 반납하라고 하니 희망퇴직이라는 것이 이렇게 하나씩 매정하게 나와 회사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은 모든 데이터를 포맷하고 반납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내가 이십 년 넘게 밤을 지새우며 작성했던 전략 기획서, 수 많은 기획서, 그리고 직원과 주고 받은 각종 업무 메일들. 모두 복구 불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디지털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나에게는 법인카드도 없고, 노트북 속 데이터도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제 내 인생의 권한을 내가 오롯이 갖게 되었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작가의 말)
IT 대기업 8년의 팀장과 7년의 최연소 상무보 타이틀을 뒤로하고, 어느 날 갑자기 '희망퇴직'이라는 낯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누구나 예상하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기 퇴직' 이후의 미지 세계를 매일 한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 기록합니다. 화려한 커리어를 내려놓은 중년 남성의 담백한 일상을 웹툰 '마음의 소리' 같은 해학으로 풀어내며, 상실의 시대를 걷는 이들에게 격식 없는 위로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