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여유
알람 소리가 사라진 아침, 고요만이 남았다. 정확히는 이제는 기상 알람 밖에 없다. 매시간 울려대던 각종 회의와 미팅 알람이 사라졌다. 퇴직 일주일. 나의 세상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다. 그동안 내 아침을 지배했던 것은 다정한 새소리가 아니라, 쉼 없이 울려대던 일정 알람과 '이번 주 주간 보고'를 재촉하는 캘린더의 묵직한 진동이었다. 회의와 오찬, 미팅, 회식으로 빼곡했던 캘린더 역시 이제 '텅 빈 캔버스'가 되었다. 스마트폰 첫 화면에서 캘린더 위젯을 지워야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휴대전화의 침묵, 일정의 공백만큼이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한 없는 휴가'의 배신이다. 직장인에게 휴가가 달콤한 이유는 '복귀일'이라는 마감 기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 휴가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월요일 아침 지하철 5호선의 지옥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는 며칠 만에 기묘한 불안으로 변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칭얼거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26년 만에 처음으로 '사회적 나'를 걷어내고, '진짜 나'와 대면하는 법을 독학 중일뿐이다.
요즘 알람 없이 눈을 떴다. 행동을 강요하는 일정은 없지만, 스스로 빈 일정표를 채우는 중이다. 일어나자마자 달리고, 커피를 내리고, 창밖을 본다. 여전히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내 스마트폰은 평온하다.
이 지독한 고요함에 익숙해지는 것. 이것이 나의 새로운 출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