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6일째) 딸의 입학식

세대교체

by 미정
로봇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오감과 호기심이 여러분의 무기입니다.


딸의 미래도 활짝 피어나길


삶은 쳇바퀴 도는 일상의 반복인 듯하면서도 가끔씩 놀랄만한 사건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것이 무료한 삶에 리듬과 활력을 준다. 이번에는 딸과 내가 마치 바통을 교환하기라도 하듯이 4월에 한 명은 은퇴를, 한 명은 진학을 했다.

어제 딸아이의 전문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안 하기로 했다. 대학에는 본인이 배우고 싶은 것이 없다고 했다. 제과제빵은 반 친구들보다 잘할 수 있고, 본인이 만든 빵을 친구들에게 나눠줄 때 행복하다고 했다. 중간고사 때 반 친구들이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딸은 친구들에게 나눠줄 빵을 만들어 하나씩 포장하기도 했다.

공부만 했던 부모가 모르는 진로를 선택한 딸의 선택을 응원하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AI의 부상으로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의 취업이 어려워지고, 주요 IT기업의 개발자가 퇴직하는 요즘이라, 딸의 졸업할 즈음에는 최선의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입학식에서 교장 선생님은 강조했다. "로봇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오감과 호기심이 여러분의 무기입니다." 그렇다. 알고리즘이 분석할 수 없는 갓 구운 빵의 냄새, 그리고 그것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인간의 마음. 내가 평생 숫자로 증명해 왔던 '가치'를, 내 딸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증명하려 한다.

원래대로였다면 조직개편 이후 한창 회사에서 업무보고 등으로 정신없이 보내야 할 시기다. 매년 반복하던 중요한 업무였지만, 딸의 새 출발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할까 싶다. 원래 일정이었던 것처럼 딸의 월세 집 빈 공간을 채울 책상, 장식장을 조립하고, 입학식도 참석할 수 있었다. 한 달 아니 이 주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행운이다.

다만, 이 급격한 변화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아내의 미세한 미간 주름을 관리하는 것은 이제 퇴직한 나의 가장 시급한 KPI(핵심성과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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