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빗자루 아세요?
바닥에 머리카락이 뭉쳐져 있습니다. 간간히 아이가 흘린 음식 잔해물들을 있습니다. 가정주부이면서 집안일이 제일 귀찮은 제가 그 앞에 멍하니 서있습니다. 로봇청소기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년 된 빨간 로봇청소기의 시작 버튼을 누릅니다. 로봇청소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청소합니다. 요새 청소기는 소리도 안 나고 알아서 가구 등을 피해 청소한다던데 7년 된 청소기는 가구와의 사투를 버립니다. 그럼 저는 가서 청소기를 구해줍니다.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다."다정하게 말해줍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번에 또 싸움을 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똑똑한 청소기를 살 지갑 사정이 아니니 로봇청소기가 괴팍하게 굴 때마다 다정하게 로봇 청소기를 빼줄 생각입니다. 로봇 청소기를 달랠 때마다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청소는 참으로 귀찮다.'
그러다 청소 잇템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빗자루입니다. 빗자루의 솔에 머리카락이 끼어 지저분한 자태를 종종 보았고 그걸 또 손으로 뽑아내다 내 성질머리까지 뽑힐 것 같아 집에서 빗자루를 멀리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최첨단 청소 도구들을 돌고 돌아 다시 빗자루에게 마음이 갔습니다. 그러나 잇템인 빗자루는 제가 알던 빗자루와 달라도 무지하게 다릅니다. 일단 솔이 없습니다. 그러니 끼여 이는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어떻게 머리카락이 끼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바로 솔 부분이 실리콘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가 실리콘 빗자루를 알게 된 곳은 바로 개인 온라인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습니다. 실밥들이 많은 곳이다 보니 일을 하고 나면 바닥을 쓸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실리콘 빗자루를 만났습니다. 빗자루질을 거의 하지 않았던 저의 어색한 빗자루 질의 시작되었습니다. 어색했던 빗자루 질이 적응되면서 잘 쓸리고 먼지 한 톨 끼지 않는 실리콘 빗자루에게 기여코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몇 달을 살지 말지 망설이다 사기로 마음먹고 구매하였습니다. 드디어 배송된다는 문자를 받은 날, 저는 아르바이트에서 해고 아닌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일거리가 많지 않아 2명의 아르바이트를 쓰는 것이 무리라고 했습니다. 일거리가 많아지면 다시 부르겠다 했습니다. 고작 일주일에 9시간만 하는 아르바이트였지만 아쉬웠습니다. 2명 중 빗자루질도 더 잘하고 실밥도 잘 처리하던 동료만 남고 저는 아르바이트 휴식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빗자루를 받았습니다. 빗자루질을 하면 신기하게 걱정과 고민이 툭툭 털어집니다. 툭툭 털어진 걱정과 고민을 쓰레받기에 잘 담아 버리면 끝입니다.
'휴남동서점' 책에 나온 정서가 회사에서 당한 불평등으로 인해 쌓인 화를 명상하듯 뜨개질하며 내면의 화를 흘려보내 듯 저는 빗자루 질로 마음속에 쌓인 것을 툭툭 털어 쓰레받기에 담아 버립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저만의 의식을 치르듯 창문을 열어 환기하며 실리콘 빗자루질을 합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깨끗하게 차분하게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어떤 날은 모두가 잠든 밤에 빗자루질을 하며 하루의 근심을 쓸어버리기도 합니다.
38,900원에 저만의 명상 도구를 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