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건 시간의 성과랍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때로는 친밀했다가 또 때로는 소원해지죠. 하지만 역시나 만나고 싶어지고 만나면 즐겁죠. 그렇게 어중간한 상태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소중한 관계로 여겨지는 거예요. 그런 상대가 진짜 친구겠죠.*기토겐 지음, 양지윤 옮김,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필름출판사, 2022)
'친구'라는 단어가 인생에 중요한 순간을 지나 이제 '아이의 친구'가 중요해지는 나이가 왔습니다. 아이의 친구관계에 촉각을 두고 있는 저의 어린 시절 교우관계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두루두루 잘 사귀지 못했고 혼자인 시간이 편했던 아이였지요. 친구가 가장 좋은 나이라는 중학생 때조차 집에만 있어 엄마의 "친구도 좀 만나지. 맨날 집에만 있니?"라고 걱정과 타박을 듣기도 했습니다.
관계에 요령도 없어 초등학교에서 왕따를 주동하던 아이가 "OO 이와 놀지 마."라고 말했을 때도 "싫은데. 내가 왜 그래야 해?"라고 해서 왕따의 타깃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이야 그런 때도 있었네... 하고 말지만 그때 저도 속으로 '나는 왜 친구가 없지?', '소풍 때, 아무도 나랑 짝 안 해주면 어떡하지?'라고 전전긍긍했습니다. 사실 책에서 말하는 친구라는 건 '시간의 성과'라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반 친구들은 그저 같이 일 년을 한 반에서 지내는 동료였고, 동료에서 친구가 되는 과정 속에 단지 몇명만 속해 있었다고 말이죠. 누군가는 졸업하고 결혼하고도 만나고 누군가는 '그때 OO이 기억나?'라고 말하는 추억 속의 인물이 됩니다. 그리고 인생에 '친구'라는 게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적다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죠. 하지만 소풍에 같이 앉을 짝꿍이 없을까 걱정하던 저에게 돌아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나는 왜 친구가 없지?'라는 고민이 해결될 리 만무합니다.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아이가 '교우관계'에 대해 고민할 때도 '그저 반 동료일 뿐이야. 서로 괜찮을 때도 있고 안 괜찮을 때도 있는 거지. 그러다 진짜 나랑 맞는 친구를 만나면 관계를 지속해. 사실 다른 아이들은 다른 반이 되면서 헤어지는 거지'라고 쿨하게 말해주지 못합니다. '친구는 시간과 개인의 역사를 함께 하며 위로와 응원을 해주는 몇 명만 있으면 된다고' 첨언을 달지도 못하죠.
아이의 귀엽고 심각한 친구 관계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걱정하고 우리 아이에게 못된 말 하는 아이를 같이 미워하기도 했다가 다시 관계가 좋아졌다고 하면 같이 좋아하며 함께 일희일비합니다.
제가 마흔을 살며 얻은 교훈 보다 오늘 우리 아이의 하루가 훨씬 중요하게 와닿습니다. 초등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이다 보니다 친구와 있었던 일을 많이 듣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놀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시절의 저처럼 수동적이지만은 않아 위로가 되기도 하고, 기가 약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는 것을 볼 때면 속상하기도 하고, 제법 잘 지내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친구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녀석에게 '친구란 말이야...'라고 말해봤자 와닿을 리 만무합니다.
그저 아이가 저처럼 시간이 지나 자신만의 '친구'의 정의가 생기고 시간을 함께한 친구가 옆에 있을 것이라고 믿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