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관계 맺기는 목적 기반으로 형성된 수많은 인간관계에 각종 색인을 뗐다 붙였다 하며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관계 관리'에 가깝다. 선망하는 '인친'-함께 덕질하는 '트친'- 최신 뉴스를 알려주는 '폐친'-동네에서 만나는 '실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김난도 외 9인, 트렌드코리아 2023 (2022,10, 미래의 창)
나는 트친이 없다. 트위터를 안 하니까. 페친도 없다. 페이스북도 없으니까. 그런데 실친도 없다. 동네친구도 없다. 아이친구엄마도 없다.
정말 아이 친구 엄마들하고 안 만나?
라고 진심으로 놀란 듯 누군가가 물었다. 친구 인덱스에는 '아이 친구 엄마'는 없다. 물론 아이와 다니면서 안면을 트고 인사하는 분들은 있다. 초품아 아파트에 살며 8살, 각자 자신의 아이 손을 잡고 함께 등교한다. 덕분에 누가 누구의 엄마인지는 서로 안다. 눈인사를 하거나 알지만 모르는 척 지나간다. 그렇게 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 관계는 형성되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많은 관계들이 형성되었고 나는 늦게 이사 왔다고 핑계를 되어 본다. 사실 적극적이지 않았고 관심이 없었다. 아이 친구 엄마 모임에 끼어 나눌 소재도 없었다. 어색하게 앉아있다 반쯤 못 알아듣는 학원이야기를 들으며 속에서 멍 때리다 집에 오니 그다음부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결국 동네 실친을 만들지 못했다. 여전히 동네 이방인 같다. 편하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다르다. 내가 목적하는 모임에 들어간다. 최선을 다한다. 함께 잘해보자고 으쌰으쌰 한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용기를 북돋느다. 성과를 내보자고 소리친다. 오프로도 만나자고 제안한다. 만나면 적극 경청하고 기어이 다음 모임 약속도 잡는다. 현실 친구가 없으니까 온라인의 내 지인은 현실 친구까지 해줘야 한다. 내가 친 인덱스의 색이 극명하게 다르다.
아이 학교 가면 뭐해요?
아이 친구 엄마가 묻는다. "아이 학교 가면 청소하고 빨래하고 어영부영하면 아이 집에 오던데요."라고 뻥을 친다. 말 그대로 뻥이다. 아이가 학교 가면 나는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 신문을 읽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SNS를 한다. 그런데 아이 친구 엄마에게 무엇을 , 왜, 얼마나 하는지 이야기하기 복잡하다. 내세울 성과도 없다. 그러니까 그냥 '집안일하다 보면 시간이 간다'라고 뻥을 친다.
카카오 단톡방에 사람들에게 어제, 오늘 무슨 책을 읽었는지, 어떤 신문기사가 인상 깊었는지, 어떤 글을 썼는지 나눈다. 서로 힘이 좀 빠진 것 같으면 동기부여 영상도 보내준다. 채찍질을 한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보자고 한다. 곧 성과가 날 거라고 서로를 토닥인다.
온라인의 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의 나의 인덱스 색은 정열적인 빨강이다. 동네에서의 인덱스 색은 무채색인 회색이다. 인덱스의 색이 명확히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