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태양은 뜰 것이고, 파도가 무엇을 가져다줄지 누가 알겠는가." -캐스트 어웨이 중-
이 대사를 본 것은 영화에서가 아닙니다. 영상을 길게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영화를 잘 안보거든요. 소설 속에 인용된 한 구절로 캐스트 어웨이의 명대사를 만났습니다. 이 문구를 보고 최근 만남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인연은 대학교 2학년 때 봉사자들로, 시설 장으로 만난 사이입니다. 벌써 20년이 된 사이입니다.
제일 맏언니가 저에게 말합니다. "나는 네가 세계를 누비며 일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살 줄 알았어." , "나도 내가 엄청 멋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살 줄 알았어." 그 날 모인 4명 중, 일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저 한 명입니다. 교사로 간호사로 사회복지사로 각자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무직이었던 저만 전업주부입니다. 학창 시절 제일 호기롭게 살던 저는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20대 초반, 꽤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살 것이라 상상했습니다. 20대 중반에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며 회사에서 아이를 키우며 적당히 회사 생활을 하는 팀장님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지 않을까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2년 차 전업주부입니다.
20대 학생 시절,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줄 알았을까요. 누군가는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비혼을 선언합니다. 누군가는 딩크로 삽니다. 그 시절 우리의 인생이 예상대로 흘러간 사람은 없습니다. 20년 전의 그 누구도 제가 전업주부로 살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 집에만 있는 거 너무 아깝다. 뭐라도 해봐." 언니는 저를 만날 때마다 항상 이런 말을 합니다. 보통 분기에 한 번 만나니 제가 총 4번의 충고와 아깝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날은 가만히 앉아 생각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내일의 태양이 뜨고 새롭게 치는 파도를 호기롭게, 기대감에 차서 기다리고 있을까? 저는 파도가 치기보다 잔잔한 호숫가 인생입니다. 그래서 어제인 것 같은 오늘과 오늘과 비슷한 내일이 펼쳐집니다. 새로운 파도를 만들 때도 신중하고 내가 버틸 수 있는 만큼의 파도만 만듭니다. 어떻게 파도를 예상하고 만드냐 하겠지만 사고가 나거나 갑자기 누군가 아픈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미리 대비할 수 있는게 인생의 파도입니다.
누군가가 재능이 아깝다고 말하고 사회적 손실이라 해주는 제 지금 모습은 꽤 오래 준비한 파도의 하나였습니다. 지금의 삶은 아이 행복도 10000% 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삶입니다. 처음 전업주부를 꿈꿀 때, 아이의 심리상태가 이 정도로 안정감을 갖게 될지 몰랐습니다. 반대로 외벌이로 사는 것이 생각보다 빡빡하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맞벌이할 때와 비교해 무얼 하나 사더라도 신중해집니다.(때론 돈을 팡팡 쓰고 싶습니다!)
그대로 맞벌이로 살았다더라도 잘 살아냈을 거라 믿습니다. 외벌이보다 더 많은 자산을 모았을 테고 아이는 더 많은 학원을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대로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안타깝다'라는 말을 들은 날은 제가 선택한 삶의 모습이지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여전히 아이 때문에 울지라도 누군가에게 아깝다는 이야기는 안 들었겠지.
미국산 소와 호주산 소 앞에서 갈등을 하지는 않았겠지.
삼겹살이냐 앞다리 살이냐가 아니라 삼겹살이냐 목살이냐에서 고민하고 있었겠지.'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툭 잘라냅니다. 그리고 지금 제 삶에 충실히 삽니다. 지금의 제가 새로운 파도를 몰아올 수 있게 말이죠.
새로운 파도가 올 때 제 인생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그 파도가 밀물이든 썰물이든 제 것이 망가지지 않게 튼튼하고 안전하게 준비하여 제 삶을 단단히 쌓아 올린 다는 것, 꽤 많은 준비를 해놓았을 것,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