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02학번 산소 학번이다.
그때 '과'보다는 대학을 네임밸류가 중요하다는 아빠의 제안에 따라 꽤 이름 있는 대학의 꽤나 난해한 태국어과에 입학했다.
꼭 상형문자 같은 글자를 보자니 앞길이 막막했다.
대학교때 섰던 메모글자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성조도 있었다.
나는 그냥 포기했다.
그땐 포기가 빠른 편이었나 보다.
대학 4년 동안 그냥 껍데기인 채 다녔다.
수업을 주 3일에 맞춰 대충 들었고 과활동은 앗싸였다.
외국어 수업답게 인터뷰가 있었는데 교수님이
넌 공부 잘하게 생겼는데 왜 그러냐
라는 말도 들었다.
졸업 시험도 교수님께 "태국어는 저랑 안 맞아요"라고 하고
졸업했었다.
그래도 2달간 태국 대학에서 지내며 수업도 듣고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그때는 대략적으로 소통은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벌써 15년도 더 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그래도 졸업 후, 친구와 방콕 자유 여행을 하며 제법 현지인들과의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친구에게 멋있다는 말도 들었다.
유일하게 살면서 전공을 써먹었었다.
그런데 태국어 공부가 하고 싶었다.
이유는 아이와 태국 여행을 하고 싶어서이다.
엄마의 멋짐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생기면 공부하겠다는 다짐에 책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그 꿈은 유효하다. 아이와 태국여행을 하며
외국인과의 소통의 자유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태국어 책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비우는 게 좋더라도 내 꿈은 비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 꿈은 비우지 말아요.
우리 꿈은 맥시멀 리스트로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