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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MNI Feb 01. 2019

도망일까, 도전일까

인정하기 힘든 현실을 마주했을 때.

견디기 힘든 일을 맞닥뜨렸을 때.

내 능력 밖의 업무가 주어졌을 때.

답답해서 돌아버릴 것 같을 때.

이러다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때.


난 그때마다 도망쳤다.

사랑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어차피 나의 도망은 내가 사는 자그마한 테두리 안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늘 도망을 쳤다.

글을 쓰게 된 이유도 현실 도피의 일부였다.


이전 직장에서 도망치던 그 계절은 초겨울이었다. 올해 11월.

퇴사하던 날, 마지막 인사를 남기기 전 메신저의 지난 대화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11월 초에 휴대폰을 새로 바꾸면서 카카오톡 대화가 모두 사라졌고, 11월 한 달간의 단체 대화만이 남아있던 상태였다.

7명이 참여한 단체 대화에 채팅이 올라오지 않은 날은 2~3일 남짓. 물론 주말까지 포함해서.

새벽 5시 반에 알림이 울리던 날도 있었고, 채팅은 자정에도 끊이지 않았다.

그 대화에 참여했던 다른 이들은 괜찮았을까.


나는 공황장애를 얻었다. 심장은 시도 때도 없이 빠르게 뛰었다.

이렇게 빨리 뛰다가 어느 순간 탁하고 멈춰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만큼.

깊게 호흡을 해도 가쁜 숨은 꽤 오랜 시간 나아지지 않았고, 손과 발이 저릿했다. 덜덜 떨리던 날도 있었다.

아마 스트레스 때문일 거야,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기곤 했다.

오전 내내 상태가 호전되지 않던 어느 날, 신경정신과를 예약했고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제야 카톡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도 가끔 심장이 빠르게 뛴다.

가쁜 호흡을 숨기려고 숨을 참은 적도 많다.

안정제를 받기 전까지는 매일 소주 한 병씩 마시고 잠들었는데 적어도 이제는 약을 먹으면 잠을 잘 수 있다.

병원에서는 금세 나아지지 않을 거라며 빨리 나아져야 한다는 부담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혹시나 약 없이 잠들 수 없게 될까 걱정스럽다.


어찌 되었건 공황장애를 핑계 삼아 나는 직장에서, 카톡 지옥에서 도망쳤다.

다시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다녀야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녀야지. 마음을 다스리지만, 겁나고 무섭다.


오랜 친구에게 나는 도망쳤다고 고백했다.

‘도망친 거야, 나는.'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아냐, 너는 도망친 게 아니야. 퇴사에 도전한 거고 성공한 거야. 난 퇴사할 자신이 없는데?’


도망일까, 도전일까.

응, 그래. 나는 도전한 거야.

날 갉아먹던 우울과 강박적으로 확인하던 카톡, 존재의 이유를 반문하게 되던 업무로부터 도망친 게 아니라,

매일 출퇴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과 월급을 버리고 조금 더 사람다운 삶에 도전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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