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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MNI Jun 22. 2020

갑과 을

한때 갑이었던 내가, 갑이라며 자만하는 너에게

연인 관계에서 늘 을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갑의 위치에 있는 이도 있을 터. 스무살 남짓한 그 시기, 사랑을 앞에 둔 나는 대개 ‘갑’이었다. 연애가 시작되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곧잘 ‘을’이 되곤 했지만, 그러니까 감정의 무게가 나를 질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기 전의 나는 자신감과 자존감,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애정과 사랑을 받고 자랐음에도 약간의 애정 결핍이 있었다. 양가 조부모에게는 큰딸 큰아들의 자식이었기에 오냐오냐 자란 것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부여한다고 자위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늘 단호했다. 여하튼 갓 성인이 된 나는 그랬다. 좌절이라던가, 실패라는 걸 경험하지 못한 아이였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는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거나 혹은 스스로의 선택이었기에 딱히 상실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난 갖고 싶은 건 어떻게든 가져야 하고,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성미를 지닌 아이였다.


연애 또한 그러했다. 내가 관심이 있는 사람과는 어떻게든 연인이 되고야 말았다. 특별히 빼어난 외모를 지닌 건 아니지만, 내가 좋다고 생각한 이들 역시 내게 호감을 가져준 덕분에 운이 좋게도 남부럽지 않은 연애를 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당돌한 자신감 덕분 아니었을까. “내가 널 만나야겠어” 사랑을 앞에 두고 ‘갑’으로 시작했던 나는 그렇게 ‘을’이 되어 실연을 경험하곤 했다. 시발.


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솔직히 멋있었다. 잘은 기억 안 나지만, 한 예닐곱 살쯤 차이 났던 것 같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어린 여자애 눈에는 연애해 볼 만큼 해보고 여자에 대해서도 알 만큼 아는, 서른을 목전에 둔 남자가 근사해 보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나는 대학생, 그는 직장인. 와씨, 반하지 않으려야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사내 커플이었고, 임자 있는 남자에게는 마음을 품지 않겠다는 내 신념으로 그와의 연은 끊어졌다.


그리고 다음 해, 다른 이와 함께한 내 연애가 끝난 시점에서 그의 연애도 끝난 상태라는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기회다! 나는 그에게 꾸준히 연락을 하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셨다. 이제는 누가 돈이라도 쥐여 주면서 종용해도 절대 하지 못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심지어 여자친구가 되어 달라는 그의 말에 ‘싫어, 네가 내 남자친구 해’라는 당돌한 멘트를 날렸다. 미쳤던 걸까?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난 일인데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굉장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그와의 연애는 채 한 달이 되기 전에 끝이 났다. 불타던 내 감정이 파스스 가라앉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착각이었다. 그를 마음에 품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홀로 그 사람이라는 캐릭터를 정형화한 것이다. 어른스럽고 근사하고 차분하고 노련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20대 후반에 갓 직장인이 된 그가 어른스러우면 얼마나 어른스럽고, 근사하면 얼마나 근사했겠는가. 감정에 휘둘리는 철부지가 당연했다. 그런데 내가 만든 허상에 그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이 사람이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괴리감이 솔솔 피어올랐다. 약간의 당황도 섞였다.


이별을 이야기하던 술집에서 그가 말했다. “ 다들 내가 어떤 사람일지 마음대로 상상해놓고, 그렇지 않다헤어지자고 하는 거지?” , 대답할 만한 말이 없었다. 나만 그런  아니었나 보다. 이별을 고하는 나는  말이 없었다. “미안해요. 내가 보자고  거니까 이건 내가 살게.” 빌지를 들고 먼저 일어섰다. 어휴, 재수 없고 오만하기 짝이 없던 나의 스물셋. 어린 치기에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부끄럽다. 그와  관계에서 내가 무조건 ‘이었던  아니겠지만, 스스로 ‘이라 생각했기에   있던 말이고 행동이었다. 오만방자했다.


그 이후로 연애하면서 을이 될 때마다 나는 그날을 종종 떠올린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던가. 그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았기에 지금 내가 이런 멸시를 받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갑질’을 하는 상대를 바라본다. 너도 언젠가는 오늘을 떠올리게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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