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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MNI Jun 22. 2020

아프지 말자, 전부 다 돈이다

작년  나를 괴롭히던 독감은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낫지 않는 생채기를 냈다. 그때 떨어진 면역력이 도통 돌아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 코로나19 점차 무서워진다. 젊고 건강한 사람은 면역력이 좋아서 괜찮아, 라는 말이 내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도 자도 풀리지 않는 피로에 이상함을 느끼던 차였다. 오른쪽 가슴에 멍울이 생겨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문득 8년 전 왼쪽 가슴에 멍울이 생겨 방문했던 유방외과가 생각났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갔던 곳이라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곳. 기억을 더듬어 근처 역을 떠올렸고 포털 사이트를 뒤져 비슷해 보이는 곳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가슴에 멍울이 생겨 통증이 있는데 진료를 받고 싶어서요.”


이름과 연락처를 남긴 후 이전 진료 기록이 남아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기록은 남아있었다. 오래 전인 데다가 워낙 기억력이 좋지 않은 터라 잘 생각나진 않지만, 왼쪽 가슴 멍울은 큰 문제가 아니었고 오히려 갑상선에 혹이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


진료를 예약한 날, 걱정을 가득 안고 병원을 방문했다. 8년 전 그날처럼 오른쪽 가슴의 멍울도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생활습관이나 컨디션 때문에 가슴 지방이 뭉칠 수 있다고 했다. 의사는 생리를 앞두고 있어 더욱더 그랬을 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갑상선이었다.


8년 전 자그마했던 갑상선의 혹은 꽤나 커진 상태였다. 그동안 꾸준히 검진을 받았어야 했는데 불행스럽게도 병원에 남겨진 내 휴대폰 번호는 잘못 기재돼 있었고, 덕분에 난 한 번도 검진 관련 문자를 받아보지 못했다. 크기도 크고 모양도 좋지 않아 세포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유방 초음파만으로도 14만 원이 훌쩍 넘었는데 갑상선 세포 검사가 더해지니 30만 원에 육박했다. 현재 내게 유동 가능한 현금은 20만 원가량. 잠깐 고민을 하다가 일주일 뒤로 예약을 잡고 병원을 나섰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진료를 기다렸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병원에 환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진료실 침대에 누워 차가운 젤을 바르고 목에 초음파 기계를 댔다. 마취 주사는 따끔했다. 이윽고 기다란 주삿바늘이 내 목을 쑤셨다. 난 목이 잘 보이는 자세로 한껏 턱을 치켜들고 있었으므로, 실제 주삿바늘이 얼마나 굵고 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 기다란 주사 바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진 않았지만 고통스럽기는 했다. 목에 바늘이 꽂힌 채 왔다 갔다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5분여 남짓한 시간, 딱 두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프지 말자’ 그리고 ‘15만 원이면 되겠지?’


돈을 물 쓰듯 펑펑, 아까운 줄 모르고 쓰던 내가 이제 돈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 꼬라지라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고까운 마음도 함께였다. 신기하기도 했다.


목에 자그마한 밴드를 하나 붙이고 진료비를 치르고 나오는 길이 참 씁쓸했다. 유난히 따듯했던 겨울이었건만 그날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얼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내 마음과 잘 맞아떨어졌다.


아침부터 목을 쑤신 하루는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 채 끝이 났다. 그렇게 맞은 내 생일은 유난히 차분했고 결국엔 이유 없이 슬펐다. 알 수 없는 눈물을 한참을 흘리다 코인노래방에서 홀로 8곡을 부르며 막을 내렸다. 요 근래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이 이틀간 나를 감쌌다. 아프지 말자, 전부 다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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