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3월, 중고거래 플랫폼 시장이 들썩였다. COVID-19를 계기로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거래 인구 폭발적으로 증가해, 대형 유통기업들까지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 가운데 대형 유통기업 중 하나인 ‘롯데쇼핑’이 국내 중고거래 시장의 대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중고나라’를 인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중고나라’는 국내 최대 볼륨으로 손꼽히는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단순 회원수만 따져도 국내 빅 3 중고거래 플랫폼 중 최대 유저인 2330만 명을 기록한다. 2003년 손꼽을 만한 플랫폼 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중고거래 매물들을 네이버 카페로 한데 모아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온라인 카페 특성상 사업체보다는 커뮤니티 적인 특성이 강했다.
2014년 법인을 설립하고 2016년에는 모바일 앱까지 선보였으나, 중고나라는 여전히 카페 커뮤니티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중고나라’가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으로서 중고거래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은 ‘롯데쇼핑’의 ‘중고나라’ 인수 사실이 뉴스를 타면서 중고거래 플랫폼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기대를 보였다. 그러나 ‘롯데쇼핑’의 인수가 ‘중고나라’의 경영방향보다 자금지원에 가깝다는 뉴스가 새롭게 떠오르면서, ‘중고나라’가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않는 이상 ‘롯데쇼핑’의 투자도 새로운 바람의 마중물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평이다.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중고거래 플랫폼 하면 당연하게 ‘중고나라’를 떠올렸던 시기,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휩쓸었던 웃지 못할 밈(MEME)이다. 온라인 카페 ‘중고나라’가 커져 유입자가 늘어나면서 당연하게 어뷰저(Abuser : 영단어 ‘Abuse’에서 파생된 단어. 버그, 핵, 불법 프로그램, 계정 도용, 다중 계정 접속, 거래 사기 등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거나 사이트 등의 품질을 떨어트리는 사람들을 통칭함)들도 늘어났다. 여기에는 소위 사기꾼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포함되어 다른 사람들의 사진이나 물건 정보, 계정 등을 도용해서 없는 물건을 팔기도 하고, 법망과는 관계없이 단순한 재미를 위한 장난전화, 모욕, 가격경쟁 유도, 비상식적인 가격협상 등도 발생했다. 그러나 빈번한 어뷰징에도 불구하고 유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유저들은 “중고나라에서 이 정도 어뷰징은 애교지”라는 조롱의 의미로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반어법인 셈.
출처: 당근마켓 공식 사이트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뜻의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2015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론칭했다. 초기에는 ‘중고나라’의 철옹성을 무너트리기엔 역부족일 것으로 보였으나 35-55세의 중, 장년 층 사이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크게 타면서 성장세를 로켓처럼 쏘아 올렸다. ‘당근마켓’은 2019년 9월 벤처캐피털(VC)로부터 400억 원을 투자받을 당시 기업가치를 2000억 원으로 평가받았다. 최근에는 중고마켓 시장의 성장과 관심에 따라 몸값이 2조 원 가까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근마켓’의 가장 큰 특징은 유저 간의 중고거래가 대면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당근이세요?”는 판매자 인증이 필요하지 않은 당근마켓에서 실 유저들이 직접 만났을 때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떠보는 인사말이다. COVID-19가 유행하는 시기에 인기의 이유 중 하나가 대면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인증 지역 기준 6km 이내)’의 ‘대면’ 마켓이라는 특성은 ‘당근마켓’의 거래 신뢰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실제로 ‘당근마켓’의 대다수 유저들의 평에 의하면 ‘당근마켓’은 “직거래 위주이다 보니 사기가 거의 없다, 거래가 깔끔하다”는 평.
그러나 실제는 어떨까? 금융사기 방지 서비스 앱 인 ‘더치트’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중고거래 사이트 피해사례를 집계한 결과 당근마켓에서 4,006건, 중고나라에서 5,061건이 발생했다.(「4천만 원 명품백까지 등장” 청담동 ‘당근마켓’ 들여다보니…」, 『헤럴드 경제』, 2021년 5월 6일,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0503001159) 단순 수치로 비교한다고 해도 고작 1,000건 정도의 차이이고, 유저 수 비율로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당근마켓이 많은 수준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당근마켓 사기’라고 검색해도 수많은 사례들이 줄줄이 뜨는 데, 블로그나 카페 등 커뮤니티를 통한 ‘당근마켓’의 평은 여전히 호가다.
그렇다면 ‘당근마켓’과 ‘중고나라’의 평은 어디서 갈리는 걸까?
앞서 이야기했듯 ‘당근마켓’과 ‘중고나라’는 애플리케이션과 온라인 카페로 플랫폼의 형태가 달라 비교가 쉽지 않다. 다만 두 플랫폼은 근본적으로 ‘중고거래 플랫폼’으로서 ‘어뷰저 관리’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다. “온라인상 유저의 평가에 의하면” ‘당근마켓’은 이에 대해 ‘매너 온도’ 시스템(당근마켓의 판매자 신뢰도를 평가하는 수치. 가입 시 36.5도의 온도에서 시작하여 유저들 간의 평가로 온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며 낮을수록 비 매너임을 나타낸다)등으로 유저 관리를 하기 때문에 더 믿을 만하다고 한다. 그러나 ‘중고나라’ 거래 시스템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유저라면 알고 있다. 그 형태와 UI만 다를 뿐 판매자의 평가는 ‘당근마켓’만의 유일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당근마켓’은 이미지 관리를 잘했다. 단순히 중고거래 플랫폼으로서 마켓 셰어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은 것이다. 기존의 중고시장에서 소비자가 신경 쓰던 부분, 예를 들어 어뷰저를 관리하는 증거(매너 온도)를 시각적으로 내보이고, 소비자의 경험을 통해 얻은 스토리도 놓치지 않는다.
'당근마켓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 물품 모음집'에서부터 TV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소개된 ‘당근마켓’의 낚시꾼 이야기까지, 모두가 흥미로워할 만한 ‘온기’였다. 똑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같은 중고거래가 일어나고도 한쪽은 우스갯소리가, 한쪽은 감동스토리가 된다. '중고나라'와 '당근마켓'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그들이 쌓아온 평판은 브랜드의 노력 없이 이루어진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다. 이런 브랜드 마케팅을 통한 이미지는 곧 팬 층을 만들고, 팬 층은 스스로 ‘당근마켓’이 ‘중고나라’보다 괜찮은 이유를 기억시킨다. ‘당근마켓’에는 있는데 ‘중고나라’에는 없는 ‘평판’. 작은 틈이 브랜드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