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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사는 마케터 Z Nov 16. 2023

퇴사 D-1, 허리디스크가 터졌다

요즘 저주는 허리디스크도 터트리나요?

   

생은 계획과 날벼락으로 이루어진다

오랜 공방 끝에 퇴사일이 정해지고 인수인계만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회사의 사정으로 내 업무를 인수인계받을 사람이 없어, 임시로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출근할 때까지 연차를 소모하여 기다려주기로 했다. 

(사실 사람을 뽑아달라는 요청만 몇 개월, 인수인계 서류는 다 만들어놓았으니 회사 사정을 이렇게까지 봐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3년 간 가족보다 많이 보며 같이 고생한 팀원들을 위해 이 정도 희생쯤이야.)

완벽한 계획이었다.

연차에 황금연휴를 연결해서 쉬면 회사 다니면서 휴가 낸 기분이겠지.

마지막 날 출근하면 금요일이니까 깔끔하게 인수인계하고, 동료들과 한 잔 하면서 굿바이 해야지.

오, 그러나 날벼락은 예고하고 떨어지지 않는 법이었다.

마지막 출근을 하루 앞둔 황금연휴, 문제가 터졌다.


황금연휴를 침대에서만 보내기

"연휴 내내 침대에 있었어"

야근에 시달리던 직장인에게 연휴에 뭐 했어?라고 물어보면 들을만한 대답.

누구보다 푹 쉬었다는 관용적 표현일 텐데, 나는 정말로 내내 침대에 있었다.

외국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쌓이고 쌓여 허리에서 터져버린 걸까?

그토록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자고 일어났더니, 디스크가 터져있었습니다?

 

저주를 받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평소에도 허리는 아팠다. 자고 일어났을 때, 오래 앉아있다가 일어날 때.

거북목과 위장병과 안구건조증이 직장인의 3대 고질병이라지만, 필자가 생각할 때는 허리통증을 합해서 4대 고질병 정도로 불러야 옳다고 생각한다.

고3이면 누구나 한 번쯤 스쳐간다는 척추측만증 없었고, 거북목 없었고, 야근과 함께 몸무게는 (급격하게) 늘었지만 주말의 하루쯤은 자전거를 두세 시간씩 타는 사람이었다.

단언컨대, 팀 내에서 운동 안 하는 사람 중에는 필자가 운동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니까.


공포의 시작

처음 디스크가 터진 순간을 기억한다.

첫 번째로는 어라? 하고 욱신한 감각을 느꼈다. 두 번째로 뭔가 이상한데...?라고 생각한 순간 허리에 힘이 풀려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아파서가 아니라 뒷골이 싸해서 식은땀이 났다.

어찌저찌 몸을 굴려 일어나긴 했다.

평소에는 의식하지도 않았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생리현상을 침대 위에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했다.

뇌에서 긍정 호르몬이 마구 발산되어 이 통증은 담일 것이라고 긍정회로를 돌렸는데, 아뿔싸.

누가 전원 스위치라도 내린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길 여러 번.

긍정회로가 다 타버렸다. 잘 모르겠지만, 뭔가 망했다.


내 인생계획은 어떡하냐고

당장 출근도 하루 남았고, 나는 워킹홀리데이도 가야 하는데.

그것뿐인가? 자리에 앉거나 상체를 일으켜 세워서 어디에 기대어있기조차 힘들어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할 수 도 없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서 음식의 섭취조차 최소한으로 줄였다.

심지어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라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갈 수도 없는 상황.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머리가 타도록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얼마나 누워있어야 하지?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회사는 어떻게 하지?

이대로 하반신 마비가 되면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했어야 할 일 위에 덧칠해진 해야 할 일까지.

퇴사 하루 전, 워킹홀리데이 인비테이션 마감 5개월 전.

일단, 병원부터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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