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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사는 마케터 Z Nov 08. 2023

퇴사를 못해서 냅다 워홀을 갑니다

저주받으며 퇴사하는 법


   

사를 못해서 티켓을 끊었다

그날이었을 것이다.

딱 1년 전,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세팅하느라 새벽 1시 퇴근을 밥먹 듯하던 어느 11월, 토요일.

그러니까 금요일 업무가 끝나지 않아서 토요일 새벽에 퇴근하기를 한 달쯤 반복하던 퇴근길.

새벽 택시를 타고도 집까지 1시간은 걸리는 한강 위에서 결심했다.

한국을 떠야겠다.


워킹홀리데이가 운명처럼 찾아왔다

워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어렸을 때야 교환 학생도 하고 싶고, 워킹홀리데이도 가고 싶고, 어학연수도 가고 싶었다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로 쉼 없이 일만 해왔는데. 다시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어디 쉬운가?

이미 회사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였고, 나는 온라인 총괄 담당자였다.

그러니 처음 23년도 워킹 홀리데이 인원 모집 예정 글에 대해 보았을 때는... 글쎄.

그저 부러웠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지.


사람이 잦은 야근으로 피폐해지면

하필 주말이었다.

1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도로 위, 핸드폰으로 뭔가를 찾아보기에 딱 좋은― 택시 안.

CIC(캐나다 이민국) 계정을 만들기엔 더없이 충분한 시간.

며칠 동안(사실 몇 달 동안) 하루 서너 시간도 채 못 잔 뇌가 몽롱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버튼 하나를 누를 때마다 심장이 뇌에게 물었다. 이게 맞아? 진짜 이게 맞아?

워킹홀리데이에 아는 거라곤 호주와 캐나다, 일본으로 많이 간다는 것뿐. 그중에서도 캐나다를 선택했던 건, '랜덤 선발'이라는 조건 때문이었다. 운이 나쁘면 영원히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조건.

내 미래를 운에 걸어보고 싶어졌다.

―그야말로 아드레날린 과다 상태였다.


그러니까 사람 뽑아달라고 했잖아요

맨 처음, 아니, 내가 맡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의 발전을 위해서 제발! 사람을 뽑아달라고 한지 몇 개월. 이 상태로는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으니 업무 방식을 개선해 달라고 요청한 지 또 몇 개월.

나는 네 번째, 맨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었던 네 번째 퇴사 선언을 했다.

오, 그 뒤의 이야기는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다.

말하자면 들을 수 있는 저주는 다 들었다는 뜻이랄까.


걱정인지 저주인지

"네 나이에 취직(Work permit)도 아니고, 네가 거기 워홀로 다녀오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돈 많은가 봐? 그거 시간(과 돈)만 버리는 거야."

"너 거기 1년 다녀오면 커리어만 망하는 거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겠다고 선언한 뒤, 회사와 주변 상관없이 들은 걱정(?) Top3 되시겠다.

여기서 사이다를 터트리려면 멋있게 한마디 해줬어야겠지.

나도 되게 멋지게 반박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반박을 못했다.

말이야 사실이지, 나는 아직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와본 적이 없으니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다.

나는 워크퍼밋도 아니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나가고, 구체적인 목표도 (아직) 없고, 돈도 없고, 시간도 없으니까.


안녕하세요, 저주 콜렉터입니다.

그런데 이 청개구리 정신을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나의 이성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허세를 부리면 안 된다고 속삭이고, 나의 청개구리 감성은 아무튼 잘하고 오면 되겠네! 하고 반항심(혹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보인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 그 결과는 성공과 경험으로 나뉜다.

입시 미술을 한 적 없던 내가 미대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디자이너가 되고 나서 마케터로 전향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똑같은 저주를 했다.

"생각 잘해. 그게 정말 되겠어?"


청개구리 일기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쓰기로 했다.

1년의 워홀은 나에게 무엇을 줄까 모두의 저주처럼 인생의 내리막길을 달려가게 되려나?

저주받은 개구리 마케터는 공주도 왕자도 없이 저주를 풀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낼 수 있을까?

에세이를 쓸 때마다 마무리하는 이야기가 있다.

잘 보고 있다가, 잘되면 교사 삼고 못되면 반면교사 삼으라고.

어쩌면 이 여행의 끝에 개구리는 사람보다 그냥 개구리인 채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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