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사는 마케터 Z Dec 18. 2023

일단 퇴직금을 전부 때려 넣어 보겠습니다.

퇴사한 허리디스크 환자가 캐나다 워홀을 갈 때 드는 돈

  

직금의 10%는 병원 다니는 데 든 돈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출국 한 달 전에 터져버린 내 디스크였다. 최소한 23kg짜리 캐리어 두 개. 지팡이를 짚은 채로는 짐을 옮길 수 없으니 어떻게든 회복을 해야 했다.


회복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약 1.5개월간 매일 물리치료를 다녔다. 허리 전문 병원이라 물리치료비도 저렴하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내게 보험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앞으로도 보험은 절대 끊지 않고 특약까지 꼭꼭 챙기기로 했다.

세금으로 내는 건강보험? 말해 뭐 해.

병원에 매일 출근하며 얼굴도장을 찍으면 간호사분들이나 안내원분들이 내 이름 없이도 서류처리를 해주시기 시작한다.

물리치료는 어쩔 수 없더라도 1,2주에 한 번은 경과를 보기 위해 진료도 봐야 했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주 아찔했다.

 


돈으로 해결되면 다행이지

물리치료를 시작한 지 3주쯤 지나니 슬슬 움직일 만 해지기 시작했다.

종종 지팡이를 짚고 걸었지만, 의사 선생님도 물리치료사 선생님도 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면 운동을 시작해서 근육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허리디스크가 처음이라(!) 대체 어느 정도를 참아가며 운동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게다가 출국 날짜가 코앞인데 맨 몸 운동을 하다가 더 아프게 되면 어떻게 한 단말인가.

그리하여 수영을 시작한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수영이 코어를 강화시켜 준다는 것을 배제하고도, 허리가 아파 부담스러울 때는 물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또한 내가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고 할 수 있는데, 동네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큰 수영장이 있는 복지관이 있었던 것. 그나마 한 시간 정도지만 매일 수영장에서 운동을 한 후에는 눈에 띄게 증상이 호전되었다.

출국하던 날에는 기내용 짐(약 8kg)을 들고 옮길 수 있었으니 회복이 얼마나 빨라졌는지 알 수 있을까?



환자는 짐이 많다 2

* '환자는 짐이 많다 1'은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ziaewithaz/48


이곳저곳 아프고 불편하다고 해도 한국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

아프면 곧바로 병원에 가면 되고, 검사도 기한 맞춰 받으면 됐으니까.

'만약의 사태'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라서 안 맞던 예방접종도 모두 맞았다.

그런데 아픈 것만이 문제가 아니더라.

나는 눈이 나쁜 사람이고, 안경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초고도근시다.

안경을 벗고서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정도라면 그냥 나갔을 텐데. '만약의 경우' 캐나다에서 안경이 고장 나거나 안경을 잃어버린 후 맨 눈으로 안경이 만들어질 것을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여분 콘택트렌즈와 안경까지 들어간 돈이 약 30만 원.

디스크 환자용 허리 벨트와 방석을 샀다.

줄어가는 통장잔고를 보며 약간 자신이 없어졌다.



통장이 겪은 고비들

사실 표를 예약하는 순간부터 계속 고민이 많았는데, 일단은 직항을 탈 것이냐 경유를 할 것이냐부터 문제였다.

앉아있는 전체 시간이 짧은 대신 휴식시간이 없는 직항 VS 앉아있는 시간이 짧게 두 번으로 나눠진 대신 허리 디스크 상태로 짐을 끌고 다녀야 하는 경유.

결국 경유 과정에서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가방을 들고 입출국 과정을 다시 겪을 자신이 없었던 필자는 직항을 선택했다. 내 통장이 경유보다 60만 원 비싼 시련을 맞았다는 뜻이다.

그 와중에 차마 좌석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었던 필자는 익스텐션 레그룸(다리를 뻗을 수 있는 좌석)을 예약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자는 마음을 먹고, 통장은 돈을 뱉어야 해서 결과적으로 남들보다 약 75만 원 더 비싼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내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내가 남들의 평균만 되었어도"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말했던 말이다. 더 건강할 때, 남들과 비슷한 환경이었다면 지불하지 않아도 되었을 비용을 지불하면서.

왜 더 건강할 때 움직이지 않았는지, 아픈 상태로 움직이는 것이 맞는지 매일 고민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 때 유행했던 게임이 떠올랐다. 승패가 있는 것은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게임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아, 아마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다.

"여기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니게 해주는 약이 있는데 이 중에 뭘 먹을래?"

SNS 같은 곳에 그런 선택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나면, 사람들의 선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선택을 받지 않은 능력 중엔 보통 "지금 몸 상태 그대로 죽을 때까지 살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내 기억엔 다들 비슷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아마 그 대답은,

"지금 몸으로 고정하긴 좀..."

 

적응이 빠른 게 장점입니다

마치 내 인생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은 누군가가 끊임없이 저주를 걸고 있는 것 같다.

늘 롤러코스터를 탄다. 아주 애매하고 불편하고 미묘하게 거슬릴 정도의 강도로, 인생의 절묘한 순간에 불운과 행운 사이의 랜덤 뽑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몇 번의 사건 사고를 함께 겪은 내 친구들은 진지하게 내가 저주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10년 만에 대답했다. 이런 사건 사고 끝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남는 거라면, 저주받은 운명도 거부하는 엄청난 축복의 소유자인 게 분명하다고.

그러니까 바로 지금이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에 가장 완벽한 순간일 것이다.

지팡이를 짚었지만 '걸을 수 있는 순간'

허리디스크가 있지만 '호전이 빠를 가능성이 높은 30대'

어쩔 수 없는 워킹홀리데이 '막차'

통장을 보면서 살짝 눈물을 훔치고 또 내일을 준비한다. 아, 어쩔 수 없지. 이미 일어난 일인 것을.

이전 03화 허리디스크가 터져도 워홀을 갈 수 있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