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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사는 마케터 Z Nov 25. 2023

허리디스크가 터져도 워홀을 갈 수 있나요?

퇴사 D-1, 허리디스크가 터졌다

   

아, 그는 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스크가 터져도 워킹 홀리데이를 갈 수 있다.

(워킹 홀리데이 준비과정에는 건강 검진이 있고, 나의 경우 모든 서류를 제출한 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건강검진 전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떨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 표가 뽑힌 상황에서, 워홀을 취소할 거나 미룰 것이 아니라면 결정을 내려야했다.

환자지만, 갈 것인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좀 더 기다려볼 것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나마 내가 아직 회복력이 괜찮은 수준의 나이(!)라는 것었다. 완치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원래 디스크라는게 완치되는 병이 아니란다. 이럴수가.

"디스크가 터져서 그 안의 액체가 흘러나왔다는데, 그게 낫는 증상이 아니면 계속 흘러나와서 온몸에 퍼지는 건가요?! 그러면 허리는 그냥 죽어버리는 건가요!"

라는 당황스러운 내 말에 웃어버린 의사 선생님 가라사대, 터진 내용물이 줄줄 흘러 흩어져버렸다면 그건 수술을 해야하는 거지만, 기본적으로는 젤 같은 거라서 줄줄 흘러나오지도 않는데다, 터진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겉이 굳는단다.

그러면 이제 그 상태로 정착하면서 아프던 것도 좀 정리가 되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그리고 덧붙이시길, 그 안정기가 오기까지 한 두달은 봐야한다고 하셨다. 뭐라고요!


이 쯤 되자 스스로 정신 승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유없이 억울하긴한데, 매일 야근하다 피곤에 쪄들어서 허리를 터트린 게 누구 잘못이겠나. 다시 생각해보면 한국을 뜨기 전에 디스크가 터진 건 오히려 행운이었다.

디스크가 터진 직후 약 2주간은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한 달 넘게 지팡이 신세였으니. 캐나다에서 갑자기 터졌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찔하니까.


갤럭시 워치로 자동 측정된 기록.표시 없는 날은 대부분 빠진 날이 아니라 워치를 안차고 간 날.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매일 재활 치료를 받았다. 사람이 아프니까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줄이야. 걸어서 5분 거리에 허리전문 병원이 있는 것도 다행이었고, 내가 보험을 들어 뒀던 것도 다행이었다. 집에 나를 도와줄 가족들이 있다는 것도 얼마나 다행인지.

재활 치료를 해주시는 선생님들이 내 이름을 물어보지 않고도 예약을 잡아주시게 됐을 즈음, 매일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불편과 통증이 남아있는 상태인데 하루라도 빨리 허리 근육을 키워야했으므로 부력으로 허리를 받치는 수영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퇴사 당일, 지팡이를 짚고 출근한 나를 보고 동료들이 얼마나 놀랐던가. 워킹 홀리데이를 가고야 말겠다는 집념때문인지 현대사회의 의학기술 덕분인지, 몸이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회사에 다닐때는 운동할 시간과 체력이 없어서 디스크가 터졌는데, 디스크가 터진 후에는 시간이 많아서 운동을 할 수 있다니. 매일매일이 아이러니였다.


환자는 짐이 많다

한국에서 살 때는, 약 무게와 부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한 번에 섭취하는 약이 많은 지병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 이상, 병원에 가는게 자유로운 편인 한국에서 약이 많을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약 2~3개월치의 약을 챙기면서 동시에 근육통을 위한 파스도 대량, 진통제도 대량, 거기에 캐나다 입국처에서 약 때문에 짐이 검사당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진단서(처방약의 내용물과 함량이 적힌)를 동봉했다. 생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허리 보호대까지 야무지게 착용하고나니, 그제야 좀 현실감이 들었다. 아, 진짜로 가는 구나. 그것도 허리디스크와 함께.

그리고 동시에, 떠올리게 된 것이다.

환자가 외국으로 나가기 위해서 드는 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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