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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사는 마케터 Z Apr 16. 2024

한국 직장인은 이해못하는 캐나다 관공서

[D+12] 캐나다 관공서에서 걸리는 시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12일차]


집나가면 개고생이다

임시숙소살이도 얼마남지 않았다.

빗 속에서 고생고생하며 계약한 집에서 문제없는 워홀생활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

아주 아주 소박한 꿈인데, 그 꿈 뒤에서 (도착 후 이 주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사건 사고들이 투명도 50%쯤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다행이었던 소식 하나. 엊그제 저녁즈음에 TD뱅크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내!

ATM이 내 카드와 생활비를 다 먹어버린 그 날, 내가 너무 당황하고있으니 나를 담당했던 텔러가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지켜 연락을 준 것.

문제가 해결되는데 영업일 기준 1주 이상 걸릴 거라고 하더니 생각보다 빨리 돌려받아서 다행이긴 한데... 그러니 한국인은 ATM이 돈을 먹는다는 것부터 잘 모르겠다니까요.


* 캐나다 TD뱅크 ATM이 내 돈을 먹었던 이야기는 아래 링크 참고.

https://blog.naver.com/marketer_urneighbor/223332209861


이게 흔한 사건은 아니었는지 혹은 어린 여자 동양인이 밤 중에 놀라 뛰쳐들어온 것이 특이한 사건이었는지 다음에 이 은행 지점에 가니 텔러들이 나를 알아보더라.

"우리 ATM기 새것으로 바꿔서 이제 그런 일 없을거야~"

라는데, 글쎄.

"나 트라우마 생겨서 이제 ATM안 쓰려고...그냥 네가 입금해줘. please."

물론, 다시 은행에 찾아갔던 일도 텔러에게 직접 예금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외국인이 된 한국인 

아무튼 이사와 동시에 어학원 생활도 시작이므로 이제 나에게 남은 여유시간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계속된 감기에 비까지 계속 내려서 피곤하지만, 정말 귀찮지만.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신분증을 만들 시간이 없을테니까 신분증을 만들긴 해야겠지?

여기서 지내는 동안 생각보다 여권을 제시해야하는 순간을 많이 만났는데, 그 때마다 여권을 들고다녀야 하는게 좀 불안했다. (길거리에서 검문을 당하는 것은 아니고, 술을 사거나 여행을 다녀서 국경이나 주 경계선을 넘는 경우)


서비스 온타리오라는 캐나다 관공서에서 외국인 등록증 비슷한 온타리오 신분증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서비스 온타리오에 대한 악명이 워낙 높아야지. 잘 못 걸리면 예약을 하고가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냥 기다려야 한단다. 가장 좋은 건 오픈런을 하는 거라는데, 그 와중에 내일은 이삿날이라 시간조정이 힘들었다. 적어도 다행인점은 은행에 가서 주소지증명서류를 미리 떼어놨다는 것 뿐.

친절한 새 집주인 분께서 이사를 도와준다고 하셨다. 며칠 살지도 않았는데 하루 전날에 맞춰 짐을 싸다보니 시간이 훌쩍, 결국 이사전날까지 서비스 온타리오의 S자도 생각하질 못했다.




임시 숙소를 벗어나 새 집으로

그리고 마침내 이사날.

말했듯 집 주인분의 도움을 받아 당일에는 작은 짐만 옮기면 되었는데... 이럴수가, 눈이 이렇게 내릴 건 뭐람.

사실 캐나다에 도착할 후로 맑은 날을 일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며칠 맑다가 이사 당일이 되니 진눈깨비가 질척질척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가는 날이 장날일 필요가 있냐구요.


여권이나 중요 서류들, 마지막 날의 수영을 위한 수영 물품 등, 그리고 허리 보호대와 입고갈 몇개의 무거운 겨울 옷과 입고 잔 잠옷은 전 날 보내질 못해 내가 끌고가야했다. 물건들이 생각보다 더 무겁고 부피가 커서 좀 좌절스러웠지만, 아 맞다, 나 저주받았지. 내가 재수가 없는 것 아니라ㅡ 이게 다 내가 너무 귀엽고 깜찍한 탓에 저주를 받아서 벌어진 일이다! 하고 마음을 다잡고 나서 씩씩한 발걸음으로 새 집으로 향했다.
...아, 날에는 집주인분이 차를 태워주셔서 몰랐는데, 임시숙소와 사이는 애매하게 와중에 사이를 지나가는 대중교통이 없었다.

비를 맞으며 꽤 오랜 시간 헤맨 것 같지만 아무튼 씩씩하긴했다, 아무튼.




서비스 온타리오를 향하여

빗줄기를 뚫고 새로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1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퇴실시간이 오전 11시였으니 꽤 일찍 출발한 것 같은데 시간이 왜 이렇게 됐지? 게다가 오후 1시에 서비스 온타리오에 간다는 건 악명높은 대기 시간을 그대로 감수하겠다는 뜻인데... 그러나 당장 내일부터 어학원에 나가야하기 때문에 신분증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오늘 하루. 지금가면 한 시간이상 기다려야할 거라는 집 주인분의 걱정을 등에 업고,  방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일단 출발했다. 지금 밖에 눈과 비가 많이 내리는데, 많이 추운데. 제발 사람들이 집밖으로 나오기 싫어하기를!


온타리오 주의 신분증, 외국인 등록증의 역할도 겸하는 '포토아이디카드'는 서비스 온타리오(Service Ontario)에서 만들 수 있는데, 여권과 거주지 증명서류, 비자(워크퍼밋)을 가지고 가면 만들어준다. 캐나다의 관공서, 한국과 비교하자면 구청 쯤 되지 않을까? (이름만보면 도청쯤 될 것 같은데, 역할과 위치(나 개수)는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정도 인 느낌이다.)

눈이 많이 내려서 서비스 온타리오까지 가는 길 조차 험난했다. 게다가 관공서면서 왜 건물 외부에 간판이나 사인을 달아놓지 않는 걸까. 비슷한 건물 세 채가 경로에 모여있어서 한참을 헤맸다.



악명이 헛소문인줄 알았잖아요

건물 내부를 빙글빙글돌아 서비스 온타리오 내부로 들어가려고하면 시큐리티가 예약하고 왔냐고 물어보는데,

놉, 이라고 하면 예약없이 온 사람들이 줄 서는 곳을 알려준다. 그러면 사진 속에있는 안내소(좌측 연녹색 박스)로 가서 용건을 말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악명과는 다르게 생각만큼 붐비지도 않고, 줄을 오래서지도 않았다. 한 십오분 정도? 심지어 그 곳에서 안내를 도와주시는 분의 질문도 생각보다는 상세하고 걱정보다는 간편하게 끝나는게 아닌가. 어라? 내가 선입견이 너무 강했나? 민망해하기도 잠시,

"여기 번호표를 받고 코너를 돌아 왼쪽으로 가서 기다리세요."

네?




이제부터가 진짜 기다림의 시작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드디어 번호표를 받는다.

내가 받은 번호는 이렇게 생겼다. 한자리의 알파벳과 3자리 혹은 4자리의 번호.

대기하면서 도대체 번호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에 대해 고찰했는데, 창구가 같거나 한 곳에 몰려있는 것도 아니고, 포토아이디카드를 만드는 사람만 저 알파벳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Photo의 P인 줄), 알파벳 순서대로 부르는 것도 아니고...도대체 규칙을 못찾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 고찰이 끝나도록 약 1시간 반을 대기했다는 뜻이다.


내 순서를 예측할 수 있으면 잠깐 다른 볼 일이라도 보러다녀올텐데, 도대체 이 번호가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으니 화장실도 못하고 그냥 무한정 대기하는 수밖에. 한국의 (구)직장인으로서 이 비효율을 규탄합니다! 번호와 창구를 예측할 있으면 다른 볼일이라도 있을텐데. P010번을 불렀을 때 바로 나를 부를 줄 알았더니 E부터 B까지 다양한 번호를 부르더라.

바로 직전 번호의 호명 후에 나를 부를 때까지 20분을 더 기다렸다. 그냥 마음을 놓아버리는게 편하지만, 두 시간 반동안 아무것도 안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예약을 하고왔으면 좋았을까? 싶긴 한데, 구글맵 후기에 따르면 예약을 하나 안하나 별 차이가 없단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

앞서 말했듯 1시간이 넘도록 할 일이 없어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으려니까, 서류를 확인하고 서류를 찍으면 되는 일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너무 Friendly해! 인사를 하고, 스몰톡을하고, 하루의 가벼운 일과를 묻는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린 사람들이 또 서로 인사를하고, 스몰톡을 하고, 안내를 받는다. 그러는 와중에 (아마 식사시간이 고정되어있지 않은 듯 보이는) 직원들은 느긋하게 들어와서 커피를 한잔하고, 커피 타임이 끝나면 다시 일을 준비한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이고, 직원의 복지(식사시간에 대한 존중)은 그 사람의 것인 것이다. 사실 내가 더 흥미롭게 느낀 부분은 뭐였냐면, 서비스 온타리오의 업무공간은 오픈 데스크라 그 모습이 모두에게 보여지는데도, 나와 함께 오랜시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아무도 그에 대해 항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냥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가 오면? 인사를 하고, 스몰톡을 한다.(뭐, 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이게 선진국의 마인드라는 걸까?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내 번호가 되어서 창구로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사를 나눈다. "Hello, How are you?"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몰톡은 길지 않았다. 번호표와 가져온 서류를 확인하고, 작성할 서류를 건네고 나서는 무한으로 반복되는 "운전면허 진짜 없어요?"에 대답만 잘 하면된다. 한국에서의 운전도 자신없는데, 보험도 없는 여기에서 운전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운전면허를 가져오라고 거절당하므로 (그리고 운전면허를 이용해 ID카드를 만드는 곳은 또 다른 곳이므로) 운전자가 아니라고 열심히 해명하면 서류작업은 끝.

그리고 나면 포토카드에 넣을 사진을 찍는데, 흑백으로 나오는 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이디카드로 내 얼굴을 구분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을 정도로 화질이 나쁘다. 아무리 봐도 사진이 저랑 안닮은 것 같아요!


점심도 굶은 채로 한 시간 반을 기다린 것 치고는 과정자체는 별게 없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 하고나니 상담원분이 "이제 끝이야, 가면 돼~"하고 안내를 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이제 오늘 하루의 반, 아니 반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인데 진이 쏙 빠지더라. 배고프고, 춥고, 졸립고... ID카드는 우편으로 발송되니 이제 기다리면 된단다. 당장 내일 학원에 가서 신분증을 제출해야하는데, 얼마나 기다려야하지? 그래서 물었다.

"얼마나 걸리나요?"

그리고 마지막 대답까지 (구)한국 직장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 2~3주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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