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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Mar 17. 2021

"엄마는 제일 후회되는 게 뭐야?"

어느날 엄마에게 물었다

한창 야근을 하는 어느날, 휴게실에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현타가 올 때 하는 행동이다. 무엇을 위해 회사에 12시간을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 나는 보통 그렇게 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엄마 자나?"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통 9시쯤 잠자리에 드는 엄마는 내가 이 시간에 전화를 하면 야근하다 전화한 것을 바로 알아차린다. "우리 아들 또 야근하나?"하면서 전화를 받는 목소리에서 나의 평생을 지켜본 자의 친근함이 묻어있다.


"그렇지 뭐"

"뭘 그렇게 시키냐. 월급도 조금 주면서 하하하"


이 시간 엄마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나는 힘들다고 징징거리면 엄마는 본인 나름의 블랙유머를 던지고서 혼자 깔깔 웃은 뒤, 부드럽게 위로를 시작한다.


"다 그런 거야. 그래도 너는 직장이 있는 거잖니. 요즘 길에 나 앉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봐. 그것도 그때 뿐이지 곧 지나갈 거야"


구구절절 위로가 하나도 되지 않는다. 이 시국에 목에 밥 넘어가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나처럼 별 재주 없는 사람에게 자리 하나 내준 것도 참 감사할 일이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진짜'를 강요한다. '너 지금 힘들잖아' 마음의 질문에 나는 굴복하고 만다.


이럴 때면 평생 일만해온 우리 엄마가 존경스럽다. 남편이라고는 가장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평생 마트일을 하면서 우리 남매를 이렇게 키워낸 엄마가 난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생계의 사선에 서서 바라본 엄마의 일생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러다 문득 인간으로서의 엄마가 궁금해졌다. 그동안 생활인으로서의 엄마의 대단한 업적만 생각해왔지 한 인간으로서 엄마를 궁금해한 적이 별로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엄마는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야?"


아들의 처음 묻는 질문에 엄마는 살짝 당황한다. "후회?"하면서 뜸을 들인다. 그것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알고는 있으나 차마 아들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 망설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엄마는 약간 뜸을 들인 뒤,


"너희 아빠랑 이혼 안 한 거"

라면서 민망한 듯 크게 웃어버렸다. 엉뚱해 보이지만 진심임을 알 수 있는 파안대소였다.


아빠는 가장 노릇을 거의 안 한, 아니 못 한 사람이다. 성격이 워낙 소심하고 인간관계에 서툴다보니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한 적이 거의 없고, 항상 밖으로만 돈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특히 우리 엄마에게 풀었다. 자신이 제일 의지하는 사람에게 가장 해서는 안 될 일을 평생 해온 것이다. 물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경우는 없었지만, 정서적 학대도 엄연히 폭력이다.


엄마는 그런 시간을 뚫고 지금 자식들이 사회생활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노인이 되어 있다. 정말 가정에 대한 책임감 하나로 버텨온 사람이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왜 안 했겠나.


"헤어질래도 손에 쥔 돈이 하나도 없더라.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그냥 산거지. 조금 일찍 나 스스로 벌 수 있는 공부나 자격증 같은 거 만들어 놓지 않은 게 후회되지"


엄마의 인생을 쫓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명의 여성이 느꼈을 그 외로움과 고통을 헤아릴 수가 없어서다. 그날도 그랬다. 말은 가볍게 하지만 엄마의 말에는 지난 세월의 지독함과 그 앞에서 어찌할 수 없었던 무기력이 있었다. 시간은 오래 지났어도 회한은 버릴 수 없는 어떤 형태로 엄마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날도 거의 11시가 다 되어 퇴근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엄마 이혼하고 싶었구나...' 엄마는 돈이 없어 못 했다고 하지만, 그것과 비견될 만한 이유로는 우리 남매가 있었을 것이다. 엄마도 어찌할 수 없는 옛날 사람이라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최후의 방어선 같은 게 있어서, 너희를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엄마도 참...그냥 힘들면 이혼하지. 당장이라도 달려가 엄마를 토닥여주고 싶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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