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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Mar 21. 2021

모든 mbti는 평등하다

Love myself

가뭄에 콩 나듯이 연애한다. 워낙 숫기도 없고 자존감도 낮은 편이라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제일 어렵다. 어차피 연애도 인간관계의 일종인데 연애라고 잘 될 리 없다. 항상 문턱에서 좌절하며 아쉬워한다. 반면 연애이론은 나날이 쌓여 양자역학 뺨치는 이론체계를 만들고 있다.


그런 내가 몇 해 전, 운이 좋아 2년 연속 연애를 한 적이 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설명 생략하고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자 기적같은 사건이다. 소개팅을 받고 동호회에서 만나고 하다보니 상황 자체가 가까워지기 편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좋아했고, 감정이 주는 흔치 않은 기회를 꼭 잡고 싶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친구    달을 채우지  하고 헤어졌다. 아니, 그냥 일방적으로 차였다. 그중  친구는 생전 평일에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는 법이 없었는데, 어느갑자기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지만 그때 우리 둘은 싸운 적도 없고, 서로에게 실망할 만한 사건도 없었다. 관계의 운명을 결정할 만한 계기가 있기에는 만난 시간이 너무 짧았다.




갓 나온 따뜻한 커피에서는 커피향이 진하게 났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차를 시켰다. 한 모금 마셨고, 그녀는 커피잔을 꼭 쥐고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길을 피하지 않고 그녀가 말했다.


"오빠는....사람이 너무 차분해"


이것이 그녀가 말한 일방적인 이별통보의 이유였다. 자기는 남친이랑 통화하면서 별일 아니라도 서로 깔깔거리고 싶고, 놀이동산이나 콘서트장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공간에서 같이 데이트도 하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주 여행도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 할 것 같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지도 않았다. 마치 양해를 구하듯 말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머지 한 명의 친구도 비슷한 이유를 들며 나에게 이별을 알렸었다.




그렇다. 나는 정적인 사람이다. 시간이 나면 책 보고, 영화 보고, 카페에서 음악 듣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 가끔 집에서 새로운 메뉴로 요리를 하는 것도 정말 좋고, 극도로 하이텐션일 때는 쇼핑을 한 다음 산책을 하는 정도다. 나는 그렇게 타고났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ISFJ형 인간이다.


2년 연속의 관계를 그렇게 '처분' 당하고서 나는 자기혐오 비슷한 것에 빠졌던 것 같다. 내가 타고난 성격과 취향이 다 싫었고, 액티브한 것을 요구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잘못된 성격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완전히 고칠 수 없다면 최소한 정반대 쪽의 취향까지 섭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제일 처음으로 실행한 것이 여행 자주 가기였다.


해외는 자주 못 가도 최소한 계절마다 국내여행은 한번씩 하자는 여행할당제(?) 비슷할 걸 시도했다. 여름에 여수 갔다오고, 가을에 통영 가고, 겨울에 부산을 가는 식이었다. 별로 필요도 없는 비싼 카메라와 삼각대를 사서 사진을 최대한 많이 찍어  sns에 실시간으로 올렸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바쁜 와중에도 여행을 꼬박꼬박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액티브한 사람이다.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나는 안달이 나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낯이 화끈거리지만, 그때는 그만큼 내가 싫었다.




결국 1년 반쯤 하다가 그만뒀다. 돈과 시간도 아까웠지만, 무엇보다 남들에게 진열된 내 자아가 민망해서 계속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사진을 올려도 친한 사람들 몇몇만 좋아요를 눌러주고 그만이었다. 만인이 나를 액티브한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이자 망상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무엇으로 살든 세상은 무관심으로 인정해주었고, 때문에 나에게는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도 될 자유가 있었다. 그걸 아는 순간 이별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냥 서로 안 맞았던 것이다.


가끔씩 두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결혼한 것까지는 알고 있는데, 그후 소식은 모른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잘살고 있을 테니까. 잠깐 스쳐간 인연이지만 덕분에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정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이고, 매우 높은 확률로 그런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 그런 사람으로 살아오고 있는 또 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액티브한 척하지 않아도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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