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쉽지 않다
대학생 때 자취하는 친구집에 놀러가면 항상 입구부터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얼룩덜룩 음식물이 묻어 있는 치킨박스와 피자박스였다. 그 옆엔 반쯤 마신 삼다수가 있었고, 아마도 먹고 남았으나 다시 먹을 일이 없다는 확신 하에 봉지에 둘둘 말아 버린 남은 치킨과 피자였다. "너는 배달 음식을 뭐 이렇게 자주 먹냐"고 물으면 친구의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너도 자취해봐"라는 대답이나, 아니면 그 모든 시니컬함을 무언의 언어로 응축한 친구의 표정이었다. 그 모두엔 '너도 내 입장 되면 똑같을 거다'라는 확신이 들어있었다.
자취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신경쓴 부분이 바로 먹는 것이었다. 주중에야 회사 음식을 먹으니 그렇다 치지만, 주말 만큼은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끼니를 해서 먹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요리를 해본 적이 있느냐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요리란 계란후라이와 라면이었다.
자취생이 가장 쉽게 도전할 수 있다는 파스타를 제일 먼저 해봤다. 난 크림파스타를 좋아하니까 까르보나라로 하자. 반조리 식품? 놉! 내 요리의 철칙은 최대한 손으로 만드는 것(언제부터??) 그래서 우유와 생크림을 사고 베이컨, 마늘, 건면 등등 모든 재료를 준비했다. 레시피야 여기저기 떠도는 것을 짬뽕해서 크림파스타를 만들었다.
마늘을 볶고, 베이컨을 대충 썰어 넣은 다음, 생크림과 우유의 혼합물에 간을 하고서 중간불에 조리한다. 면을 넣고 같이 익힌 다음 소금, 후추 등으로 간을 하고.....레시피에서 말하는 대로 충실히 따라갔다.
그러나 그때 처음 느꼈다. 요리라는 것이 아무리 간단해도 해본 '감'이 있어야 한다. 면이야 설명대로 8분 삶았지만, 우유와 생크림을 어느정도 배합해야 내 입에 맞는지, 소금간은 어느정도로 해야 짠맛이 적당한지, 조리시간이 몇 분이 돼야 면과 소스의 어울림이 적당한지 등등. 레시피에 나와있는 기본적인 순서 이외에는 모든 것이 감에 의존한 판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 감이라 것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결과는 망이었다. 집 주변에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를 잠깐 떠올렸다가 그건 할 짓이 아니다 싶어 그냥 내 입에 다 넣었다. 굳이 맛을 표현하자면 진득한 밀가루 반죽과 졸인 우유의 뒤섞임이 적당할 거 같다. 첫 요리인데 사진도 안 찍었다. 아무튼 입에 다 털어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옛날, 나를 시니컬하게 쳐다보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지나갔다.
친구들아, 미안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내 경험도 늘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감'이라는 것도 조금씩 생겨났다. 결국 '맛있다'라고 느끼는 것은 모든 재료의 맛이 어울림의 영역에 들어와 있을 때 나타나는 감각의 반응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요리 실력이 한층 늘기 시작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나도 배달 음식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음식을 하는 것보단 정리하는 것이 일이다. 그 프로세스를 생각했을 때, 감당할 의지가 없으면 배달하는 종족을 부른다. 그게 몸과 마음에 이득이다. 그렇더라도 '내가 먹을 것을 스스로 할 줄 아는 멋진 자취인'의 이미지는 계속 가져가려 한다. 그게 멋있기도 하지만, 모든 재료가 합당한 영역에 들어와 당초 원하던 맛을 낼 때의 그 희열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난 잘 어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