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소한’에 태어났다.
생일을 챙기는 것은 양력이고, 절기는 태양의 각도로 따지는 것이라 아주 가끔 하루쯤 틀리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내 생일은 소한 절기와 겹친다. 평생 가장 많이 들은 속담이 “대한이가 소한이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것이었다. ‘대한’보다 ‘소한’의 추위가 더 매섭다는 옛 어르신들 말씀인데, 대부분 ‘그 정도로 추울 때 널 낳아서 네 모친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를 주장하고 싶은 외가 쪽 친척들의 단골 레퍼토리였기 때문이다. 내게도 물론 할 말은 있다. 내가 그러고 싶어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살림이라면 라면조차 끓이지 못했던 부친도 “네가 태어나고는 너무 추워서 기저귀를 빨 물조차 없어 애를 먹었다”라고 말씀하셨었다. 수도가 얼어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내 탓이 아니다!). 얼마나 추웠는지 달랑 며칠 누워있는 것조차 힘겨웠다는 모친의 말씀은 귀에 박힐 지경이었다.
내가 태어난 해에 얼마나 추웠는지는 기억도 못할뿐더러 알 바도 아니다(거듭 말하지만 내 탓이 아니다!). 문제는 같은 시기에 생일이 돌아오다 보니 해마다 이맘때의 기억은 생생하다는 것이다.
생일이라고 친구들과 모인 적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이 정도로 추운데 밖에 돌아다니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심각한 추위나 지나면 만나자’로 압축되곤 했었다. 요즘처럼 택배로 물건을 보내는 시대가 아니고, 얼굴을 보고 선물을 나누던 때임에도 그랬다. 영하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거나 조금 덜 춥더라도 적설량이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한 적이 많아서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말이 양해가 되었다. 생일이랍시고 과음이라도 했다가는 객사할 확률이 후끈 올라가 버리는 것이다. 살아남아야 생일잔치도 한다.
그랬던 과거를 지나, 2020년. 비가 왔다.
출근길 내리는 비를 보며 ‘설마’했다. 진눈깨비도 아닌 순도 100%의 비였다. 와, 이거 뭐야……. 기후 변화 문제(아, 요즘에는 ‘기후 변화’라는 말 대신 ‘기후 악화’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하던데……)가 피부를 뚫고 뼈 속까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온난화’, ‘탄소배출’ 기타 등등의 단어들이 생일을 맞은 내 머릿속을 하루 종일 헤엄쳐 다녔다.
생태계와 지구 환경에 대해 민감하지 못했던 점은 인정한다. ‘지금 현재 내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기도 힘든데 범 지구적 문제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이건 내 탓이다).
비행기는 기회가 되면 잘 타고 다녔고, 대중교통이 안 다니는 시간에 출퇴근하는 빈도가 많다는 이유로 굳이 승용차를 탈 필요가 없는 시간에도 내 차를 이용했었다. 분리수거에 대해 신경을 쓰자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막상 귀찮은 경우가 닥치면 몽땅 쓸어 모아 쓰레기로 보내 버린 경우도 많다. 굳이 강이나 바다에 쓰레기를 던져 넣지는 않았지만, 1회용 페트병이나 컵을 이용하면서 심각하게 마음이 아팠던 적은 없다. 평소 장바구니를 이용하긴 하지만 흙 묻은 야채나 물 고인 냉동식품은 비닐로 둘러줘야 맘이 편했다. 말하자면 ‘내가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환경을 생각’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그렇다, 모두 다 내 탓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내 생일에 비가 오다니. 1월 최대 강수량을 기록했다는 뉴스에는 할 말을 잃는다. 뭔가 크게 잘못된다는 느낌이 든다.
택배로 도착한 선물들을 개봉하면서 또 한번 생각했다. 고정을 위해 구겨 넣은 종이 속 비닐에 쌓인 딱딱한 상자 안에 든 ‘화장품’과 종이 포장 후 비닐봉지 안에 담고 그것 채로 다시 비닐 코팅이 된 종이 안에 어여쁘게 담긴 ‘먹거리’ 선물들은 보내 준 사람의 성의와 애정이 담뿍 담겨 있음에 틀림없고(그리고 예쁘기도 하다!), 그것들을 푸는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긴 했다.
그런데 나 하나 기분 좋자고 이 모든 포장을 감수하라고 지구에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는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다.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매서운 생일 한파를 맞자면,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나는 지구를 적어도 내 딸에게는 넘기고 가야 한다. 바깥의 영상 기온과는 달리 내 마음에 찬바람이 휭휭 부는 요즘이다.
-오늘의 질문 : 지구 온난화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