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싫지만 그것은 알고 싶어!

- 오늘의 질문

by 지안

배달앱이 나오기 한참 전에도 음식 배달은 있었다. 중국 음식, 피자, 족발 등 메뉴는 비슷했다. 가게로 전화를 걸어 원하는 음식과 집 주소를 부른다. 끝. 이 간단한 일도 처음 할 때는 버벅거렸다. 종이에 메뉴와 집주소를 적고 가열차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야 수화기를 들곤 했다. 상대가 낯선 질문을 하거나(짬뽕은 얼마나 맵게 해 드릴까요? 탕수육 소스는 부먹으로 할까요, 찍먹으로 하나요, 같은?) 못 알아듣는 법은 없는데도 주문을 할 때가 되면 긴장되곤 했다. 독립한 이후에야 배달음식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할 수도 있겠으나(즉 주문이 낯설었다는 소리다), 실상은 내가 쫄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딸의 마음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 말이다.


빈둥대며 유튜브 창을 켰다 닫았다 하는 내 옆에서 딸이 노트북을 응시하다 묻는다.


"결제하면 수업 시간을 알려주나? 아니면 시간표가 있는데 내가 못 찾는 걸까?"


운전 학원 등록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화면에는 수강료와 전체 수업 시간만 적혀 있을 뿐 시간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열된 탭들을 눌러봤지만 관련 설명을 찾을 수는 없었다. 간단하게 포기를 선언하며 내가 말했다.


"전화해 봐."


"싫은데." 딸은 화면에 눈길을 둔 채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운전학원 성수기라며...... 알아야 등록할 것 아냐? 우물쭈물하다가는 그냥 시간은 가버린다고."


"전화하기 무섭단 말이야. 가서 물어보고 등록해야겠지?"


"그거 물어보러 학원까지 간다고? 가는 게 편하겠냐, 전화가 빠르겠냐?"


"싫다고...... 아 " 짜증을 내던 딸이 갑자기 들뜬 목소리를 냈다. 곧이어 자판을 토독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게시판이라는 것이 있지."


눈까지 반짝이는 딸을 바라보다 나는 한숨을 쉬고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상냥한 목소리의 남자가 짧고 간결하게 대답해주었다. 19시 이전 결제의 경우 당일 수업 예약을 위한 전화가 갈 것이고, 그 시간 이후의 결제는 다음날 상담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제를 하고 30여분 후 통화하는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전화는 무서워서 어떻게 받아?" 싱글대며 달력에 시간 표시를 하는 딸을 보며 내가 물었다.


"오는 전화는 안 무서워." 표정까지 밝아진 딸이 대답했다.


"뭐가 다른데?"


"아, 몰라. 전화 거는 건 무섭단 말이야. 나도 40살 넘으면 막 아무 데나 전화하고 물어보고 할 수 있겠지, 뭐. 흥"



소심했던 나의 과거를 떠올려보자면 딸의 말이 정답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상이 좀 변한 것도 사실이다.


근래 어지간한 매장은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는다. 기계를 상대로 메뉴를 선택해 결제하면, 주문번호가 생성된다. 토핑이 복잡할수록 기교가 필요해지고 시간도 걸린다. 대중소나 세트까지는 그래도 할 만한데 단맛 강도를 조절하고 얼음 양까지 선택하는 수준까지 가면 그야말로 힘겨운 사투다. 깐깐한 표정의 고든 램지가 '이걸 제대로 못하면 아무것도 먹지 못할 거야.'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중간에 살짝 헤매기 시작하면 식욕도 슬그머니 사라진다.


유니폼을 맞춰 입고 '솔'로 맞춰진 톤으로 억지로 웃어가며 감정노동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주문받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느낀다. 아마도 내가 오래전 '구세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무인 주문이 어려워 식사를 포기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내 눈이나 귀가 언제까지 역할을 해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곧 시야가 흐릿하기 때문에, 기계의 설명이 너무 빨라서 무인 기계를 이용하기 곤란할 때가 올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조금 더 비싼 요금을 지불하더라도 직접 주문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를 찾게 되지 않을까? 유행이 세월을 따라 돌고 도는 것처럼, 무인과 대면 서비스도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때가 오면 내 딸은 제대로 주문할 수 있을까? 40세가 넘어도, 낯선 것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내버려 둬도 혼자 잘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별 걱정을 다하는 밤이다.


오늘의 질문 : 전화 문의, 잘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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