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1월의 어느 토요일, 신년 음악회에 갔다.
큰 극장이기 때문인지 이른 시각부터 입장을 시켜 주었다. 허겁지겁 자리를 찾아 들어가 ‘방음이 잘 되어 있구먼’, ‘이래 봬도 문화회관이잖아.’ ‘다른 곳이 아니라, 조용한 곳이 천국이야’ 같은 의미 없는 소리를 일행과 두런거리며 키득거렸다. 공연이 30분이나 남았는데도 객석이 다 찰 정도로 극장 밖의 소음이 대단한 날이었다.
‘주변 집회로 교통이 혼잡하니 가급적 지하철을 이용하라’는 예약사의 문자에 조금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한 말들은 내 추측을 훨씬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확성기 소리와 함성, 가사만 바꾼 것이 분명하지만 원곡도 알 수 없는 노랫소리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어서 도망치듯 극장 안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뒷줄에는 50대 부부로 추정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워낙 바깥의 소음에 시달린 탓에 객석에서 조금 크게 떠드는 소리에도 화가 치밀 정도였는데, 여자분의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이 작년에 본 음악회들과 페스티벌에 관해 반강제로 의견청취를 해야 했다. 하여간 클래식 음악회의 질이 계속 떨어지는 와 중에도 2019년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훌륭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어느 공연에도 참가하지 않아 견해를 밝힐 수는 없었지만.
잠시 후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의자를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일행은 한숨을 쉬고 사이좋게 이어폰을 나눠 끼고 유튜브 동영상을 재생했다.
“죄송한데요, 제가 뒤에서 프로그램을 떨어뜨렸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뒤에서 나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서 있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정리해보니, 1. 돈을 주고 구입한 프로그램을 그녀가 뒤적거리다 2.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앞 좌석 쪽으로 떨어뜨렸고 3. 당신들 의자 아래 떨어졌을 것이니 주워달라는 것이었다.
나와 일행은 이어폰을 빼고 야단맞는 학생들처럼 우물쭈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의자 아래에 떨어진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음악회가 끝난 다음에 천천히 찾자”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여자는 ‘어쩌면 좋아’를 연발하고 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눈에도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그만 자리로 돌아오라고 채근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혼자 중얼거렸다(중얼거리는 소리도 상당히 컸다).
“나니아의 옷장도 아닌데, 도대체 그게 어디로 없어졌을까?”
나와 일행의 눈이 마주치고, 일행은 ‘풋’하는 웃음과 함께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핸드폰 불까지 켜가며 없어진 프로그램을 찾아 모험을 떠났다. 일행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처음 보는 남성도 모험에 동참했다. 잠시 후 옆자리 남성의 등받이 뒤에 삐딱하게 걸린 프로그램이 발견되었다.
“나니아라니, 대단하잖아?”
여자가 돌아간 뒤 일행이 자리에 앉아 구겨진 남방을 펴면서 속삭였다.
“그러게. 밖에는 ‘폭도’, ‘처 죽이자’, ‘독재 타도’ 이런 말이 넘쳐흐르는데 말이지. 같은 ㄱ,ㄴ 으로 만드는 문장이 맞나 싶구먼.”
뒷자리 부부에 대해 들었던 뾰족한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와 일행은 기분 좋게 음악회를 감상할 수 있었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